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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모임> 노동이 다시 신성해지기 위해서 본문

존중과 스며듦/존재를 향한 태도

<존재모임> 노동이 다시 신성해지기 위해서

고래의노래 2019. 3. 15. 11:01

 <존재를 향한 태도> 다섯번째 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우리는 일터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와 함께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저자는 일터가 사람들의 건강에(심하게는 생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수련의와 소방공무원의 건강 상태와 사회현실, 근무환경의 연관성을 살피며 설명합니다. 구조조정의 폭풍 속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휩쓸려버린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재고용과 취업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심지어 파업과정에서 손해배상소송까지 당해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수련의들은 살인적인 근무 시간을 소화하며 스스로와 환자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었지요. 소방공무원들은 항상 위험한 상황에서 근무할 수 밖에 없는데도 안전과 보상에 대한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도 법으로 막혀있었기에 이런 상황의 개선을 요구할 수도 없었지요.

 

 특정 회사, 특정 업무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례로 보여지지만 결국 우리 사회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였습니다. 이제까지 회사들은 경영난을 인건비 감소로 쉽게 해결하고는 했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과도하게 일할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은 결국 많은 안전사고로 이어졌습니다. 발전소, 제철소, 지하철 업무 현장에서 연이어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성과에 대한 압박때문에, 일터에서의 괴롭힘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지요. 일터는 노동자들을 존중하지 않는데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는 막혀있습니다. 사회가 노동조합과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가 않지요. 게다가 해고와 실직에 대한 고용안전망은 커녕 기업과 국가는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합니다. 일터가 내 손을 놓으면 나에게는 대안이 없습니다. 을은 갑에게 무조건 복종할 수 밖에 없고 갑의 갑질은 개인의 습관을 넘어 문화가 되버렸습니다.

 

 게다가 지난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지침'을 통해 기업이 노동자들을 해고할 권리를 더 쥐어 주었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폐기되었지만 우리는 '저성과자'라는 단어 속에서 '공정한 평가'란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성과'라는 정량적 기준이 모든 업무에 다 적용될 수 있는지, 능력을 업적과 역량으로 나누었을 때 개인의 역량은 어떻게 증명될 수 있으며 어떠한 기준이든 기준을 벗어난 사람들을 어떻게 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위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라는 작품입니다. 고흐는 생전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장 많이 사랑받는 화가이지요. 고흐를 보면 성공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사회적 기준과 요구에 부합된 누군가가 얻게 되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고흐는 산업혁명의 시기에 활동했습니다. 인간이 점점 더 일터의 부품이 되어가고 노동이 신성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 했지요. 그래서 시골로 내려가 자연과 정직한 노동으로 대면하는 농부들의 일상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그 자신이 성실한 '예술노동자'이기도 했습니다. '하루에 선 하나라도!'라고 하며 매일매일 그림을 그렸지요. 고흐는 구두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이는 마치 그 구두 주인의 초상화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 구두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이든 구두의 주인은 고단한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와 막 구두끈을 풀어헤친 것 같습니다. 고흐는 어쩌면 구두를 통해 구두주인의 하루를 이야기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모든 사람들은 각자 다른 재능이 있습니다. 이 업무에서 힘들어했던 사람도 다른 업무에서는 능력을 발휘하고 두각을 나타낼 수 있지요. 우리는 일터의 평가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일을 찾는 과정에서 일터가 사람들에게 도움과 기회를 준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했습니다. 사람을 도구적, 경제적 수단으로 대상화하는 것이 아닌 존재로 대할 때 우리가 얼마나 충만할지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노동의 가치가 노동에 대한 보상(돈)으로 쉽게 치환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이미 직업에 따른 계급화를 느꼈습니다.  하나의 기준이 모두에게 목표로 내면화될 때 누군가를 상처를 받습니다. 게다가 그 상처는 돌봐지고 있지 않지요.

 

이번 장을 읽으며 우리는 일터 속에서 겪은 우리의 경험을 돌아보았습니다. 정의로움이 고단하고 궁핍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을 계속 목격하면서 현실적으로 변해가기도 했고 평가제도 속에서 내가 이득을 보았었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지요. 파견직 업무를 계속 이어가는 청년들을 만나며 요즘 시대의 취업상황이 우리가 구직하던 시대랑 많이 달라졌음을 직접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쌍용차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잘 알게된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책이 나온 지 어느 정도 지났기 때문에 책 속의 내용들은 현재 다른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쌍용자 해고노동자분들은 복직이 모두 확정되었고 여러 사건들을 계기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지요. 전국공무원노조도 다시 합법화되었고 해고되었던 분들도 복직이 결정되었습니다. 소방공무원분들도 노조를 결성할 수 있는 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상태입니다. 우리나라의 노동권은 이렇게 아픈 과정을 거치며 그래도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나를 존중해주지 않고 심지어 나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 일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채용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우리는 '고용'만을 이야기해왔지만 이제 '건강한 일터' 그것을 위한 '일을 거부할 파업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지요. 고흐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 '요즈음은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의 뿌리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적었습니다. 노동이 다시 신성해지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아직 많은 숙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그 숙제에 대해 알아가고 이야기나누는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일터에서 돌아온 우리와 누군가의 신발을 한 번 바라보면 어떨까요. 신발이 이야기하는 일터에서의 하루를 상상하면서 말이지요.

 

다음 주에는 4장 (~p249)까지 읽고 만납니다.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들이 이어지지만 함께 모여 이야기하며 희망을 발견해보아요.

 

* <존재를 향한 태도>는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 대안문화공간에서 진행되는 11주간의 책읽기 모임입니다. '이상한 정상가족', '아픔이 길이 되려면',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고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봅니다. 구글 링크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https://goo.gl/forms/cagFpAyxjQ42aaa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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