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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모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본문

존중과 스며듦/존재를 향한 태도

<존재모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고래의노래 2019. 3. 8. 09:53

 <존재를 향한 태도> 세번째 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이상한 정상가족'을 마무리하면서 우리사회의 배타적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더 나은 '함께 살기'로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저자는 체벌금지법을 최로로 법제화한 스웨덴의 예를 들면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스웨덴은 1950년대만 해도 체벌이 법으로 허용되었지만 긴 사회적 논의를 거쳐 1979년 모든 체벌을 법으로 전면 금지하게 됩니다. 유엔아동권리협학이 발효되기 10년 전에 이미 이러한 제도가 마련되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법제화 이후 이를 알리기 위한 스웨덴 정부의 노력이었습니다. 우유병에 체벌금지법에 대해 알리는 스티커를 붙이고 아동병원과 산부인과를 통해서도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갑니다. 또한 체벌 대신 아이를 훈육하는 방법에 대한 지도서를 제작해 배포하지요. 정부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법 제정 뒤 2년 후에는 국민 대다수가 체벌금지법에 대해 알게되었고 이것이 '문화'로 자리메김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가치관에 기반하여 우리가 부러워하는 복지제도들이 줄줄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함께 잘 살기'위해서 '공감'이라는 추상적인 마음보다 '제도'라는 현실적인 해법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법이 문화를 이끈 스웨덴의 예와 함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니편 내편을 가르는 것은 인간의 생존본능이며 낯선 이에게 친구를 대하듯 공감한다는 것은 최악의 유토피아적 이상이라는 것, 그래서 '사랑하지 않더라도 죽이지마라.'라는 것이 우리가 닿을 수 있는 이상적 현실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즉 인간능력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외부적 시스템을 설정하자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스웨덴식으로 체벌금지와 차별금지를 법제화하면 모두가 행복해질까요? 우리는 저자가 이상적으로 제시한 스웨덴의 현실과 역사적 배경을 좀 더 살펴보고 이것을 우리가 배워올 때 유념해야 할 점은 없을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스웨덴은 현재 우울증약 처방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나라라고 합니다. 일부는 스웨덴의 기후 탓이라고 하나 쉽게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사귀지 않는 개인주의적 문화의 영향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완벽한 행복의 조건(복지제도) 속에서 행복하지 않을 때 느껴지는 자괴감이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각자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한 완벽한 복지제도가 행복을 강요하는 또 다른 억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새로웠습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걸까요? 인간 행복의 근원인 혼자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감과 내 삶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효용감이 모두 가능하려면 어찌해야하는 걸까요? 우리는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적당한 거리감을 지키며 서로를 경험하는 과정을 통과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슷한 취미, 비슷한 관심사로 함께 모였다 흩어지는 모임들을 통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가는 연습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마치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모임처럼 말이지요. ^^

 

 

 위 그림은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입니다. 김환기는 한국적 정서를 서양화법으로 표현하며 전통과 근대의 융합을 제시했다는 평을 듣는 근대 서양화가입니다. 많은 작품들 중 화면 가득히 찍은 무수한 점을 찍은 점화 시리즈가 유명한데요, 이 그림은 화가가 뉴욕에서 생활할 당시 그린 그림으로 그림 속 점들은 화가가 그리워한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스웨덴식 법제도를 우리나라로 들여온다고 생각했을 때 그리고 저자가 '자율적 개인이 열린 공동체 안에서 느슨한 연대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을 꿈으로 이야기했을 때 저는 이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의 융합이란 면에서도 그랬지만 많은 점들이 또렷하게 보이면서도 한 그림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마치 '자율적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를 보는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계를 넘지 않는 존중 속에서 수용되는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차별'없는 '절대적 환대' 안에서 가능한 것이지요. 우리는 절대적 환대의 반대인 '존재에 대한 차별과 거부'를 이야기하면서 '노키즈존'을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행동에 대한 '처벌로서의 거부'가 아니라 내 생각 속에서 이미 그렇게 여겨지는 '존재에 대한 거부'입니다. 그래서 점점 아이들의 공간과 어른들만의 공간은 분리되고 서로를 경험할 기회는 줄어들고 있지요. 경계를 세우고 떨어지기 전에 서로를 겪으며 그 경계를 '함께'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존중이 무언지 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아이들이 답답한 현실을 바꿔줄 수 있는 주역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이 있기에 어른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행복을 위해서는 우리가 먼 미래로 이어지는 생명 흐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이라는 존재를 통해 가능한 연대감이지요.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와서 책모임을 하고 더 나은 미래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에 귀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여러 사람에게 추천하며 함께 읽자고 권유하기도 했지요. 이것은 세상이라는 캔버스 위에 나와 너라는 또렷한 점을 찍으며 함께 모여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가는 일,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다정한 한 '점'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모임부터 4주동안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습니다. 다음 주에는 1장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까지 읽고 만납니다. 가족에서 좀 더 시야를 넓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살펴보고 우리의 몸이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함께 살펴보아요.

 

* <존재를 향한 태도>는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 대안문화공간에서 진행되는 11주간의 책읽기 모임입니다. '이상한 정상가족', '아픔이 길이 되려면',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고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봅니다. 구글 링크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https://goo.gl/forms/cagFpAyxjQ42aaa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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