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내 안의 여신찾기

<존재모임> 더 많은 목소리들을 위하여 본문

존중과 스며듦/존재를 향한 태도

<존재모임> 더 많은 목소리들을 위하여

고래의노래 2019. 3. 9. 07:42

 <존재를 향한 태도> 네번째 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부터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조금 생소한 분야인 사회역학을 풍부한 사례들과 친절한 어조로 설명해줍니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강한 사회구조란 어떤 것인지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개개인이 겪는 차별과 고통을 법제화를 통한 사회 시스템의 마련을 통해 '집단적'으로 해결해야한다는 '이상한 정상가족'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상한 정상가족'이 개인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개인에게 어떻게 배제의 힘으로 작용하는지 살핀다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좀 더 시야를 넓혀 사회적, 제도적, 자연적 환경이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파헤칩니다.

 

 어떠한 환경적 상황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스트레스가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정보지요. 하지만 이것을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시도는 많지 않았습니다. 건강은 DNA, 생활습관처럼 개인의 영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고 우리는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의 원인'을 따라들어가자 국가 공동체의 책임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폭염은 에어컨 시설에 접근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고 낙태불법화는 수많은 여성들의 목숨을 위협했으며 공공의료제에 사회적 자본이 얼만큼 투입되는지에 따라 사망률에 차이가 나기도 했지요.

 

 저자는 '원인의 원인'을 찾아들어가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할 때 얼만큼 섬세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개인의 보고만으로 경험을 판단해야 하는 상황일 때 같은 대답도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그런 경우에도 우리 몸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몸의 상태에 따라 보고에 왜 그런 차이가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사회적 권력과 자본을 손에 쥔 사람들은 언론, 정치, 사법 등 모든 경로를 활용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퍼트립니다. 사회구조가 어떻든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에는 문제가 없죠. 하지만 힘겹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목소리는 감춰지고 지워지며 때로는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사실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위 사진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바르다라는 영화감독과 JR이라는 사진예술가가 함께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인데요, 이들은 거대자본의 개입으로 주민이 모두 쫓겨나가 빈 집만 남은 유령마을, 염소뿔을 자르지 않고 자연방목하며 기르는 농장, 폐쇄된 탄광촌 등을 찾아가고 공장의 노동자들, 마을의 우체부와 종치기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진을 커다랗게 찍어 벽에 붙이지요. 위 장면은 폐쇄되어 이제 거의 아무도 살지않는 탄광촌을 찾아가서 마지막 주민을 만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집에 붙여주는 장면입니다. '난 마지막까지 이 마을에 남을 꺼예요!"라고 결연하게 이야기하던 이 사진의 주인공은 벽에 커다랗게 자신의 사진이 붙자 눈물을 흘립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톤을 유지하지만 전하는 메세지는 묵직합니다. 거대한 사회시스템에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려야만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커다랗게 붙여주는 작업은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시각적인 '포효'입니다. 기이하게 커다란 사이즈의 사진이라는 예술을 통해 세상에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낙태죄에 대해 이야기하며 삶에서 그것을 가까이 경험하기 전까지 우리의 판단이 얼마나 공허했던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실제 낙태경험들을 바라보니 그것이 단순히 생명에 대한 살인으로만 판단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것이지요.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어떤 맥락을 타고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모든 경험은 그 사람이 어떠한 상태에서 그것을 경험했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의 결을 가지고 있고 저자는 그것을 세심하게 살피며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그래서 모든 경험은 함께 이야기되어야 마땅합니다. 페미니즘에서도 여성들의 삶 이야기가 더 많이 밖으로 나와야한다고 말하지요. 거시적 역사가 아니라 개개인의 미시적 역사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작업들도 요즈음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글을 배우고 시를 짓는 할머니들에 관한 영화는 여러 편 개봉하기도 했지요.

 

 여러 분야, 다양한 영역에서 목소리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탕에는 SNS와 같은 개인 미디어와 네트워크의 확장이라는 기술적 진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이렇게 질문할 수 있겠지요. 그러한 기술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각자의 삶 안에서 어떻게 그것을 도울 수 있을까요? 책을 읽으며 우리는 사회역학이라는 분야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고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저자의 주장에서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이 책은 이야기합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이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미세먼지라는 사회적 재난에서 공기청정기와 마스크를 구매할 수 없는 누군가는 또 그렇게 소리없이 병들고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함께 건강한 사회라는 이상을 품고 이번에도 우리는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이렇게 전해봅니다. 멀리멀리 퍼지기 바라며.

 

 다음 번 모임에서는 2장 (~p157)까지 읽고 만납니다. 건강한 일터를 위한 변화를 함께 이야기해보아요. 이번 모임에서도 이야기되기 힘들었던 경험들을 기꺼이 들어주시고 공감해주신 모임벗에게 감사드립니다. 모임벗들을 믿고 나누는 이야기들이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되어 돌아오리라고 믿습니다.

 

* <존재를 향한 태도>는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 대안문화공간에서 진행되는 11주간의 책읽기 모임입니다. '이상한 정상가족', '아픔이 길이 되려면',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고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봅니다. 구글 링크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https://goo.gl/forms/cagFpAyxjQ42aaaf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