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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모임> 우산 속에서 울고 있는 마음들에게 본문

존중과 스며듦/존재를 향한 태도

<존재모임> 우산 속에서 울고 있는 마음들에게

고래의노래 2019. 3. 22. 02:13

<존재를 향한 태도> 여섯번째 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우리는 사회의 배려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과 성소수자들, 우리 사회의 소수 인종과 제소자들을 예로 들며 우리 사회가 취약한 상태에 놓인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회적 태도가 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여러 부분에서 우리 나라의 문제점들이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안전에 예민하지 못했던 사회 분위기와 재난 구조 시스템의 허술함, 이후 피해가족에 대한 보상과 지원문제부터 미궁으로 빠지기만 하는 사고 원인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 세월호 유가족들은 계속되는 트라우마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국가의 회복 지원은 세심한 배려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아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 오히려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지요. 저자는 사건의 의미가 해석되고 재생산되는 사회적 환경이 트라우마의 핵심요소라고 말하며 개인적 차원의 치유를 넘어 '사회적 치유'가 일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영국에서 30년 전 일어났던 힐스보로 참사를 알게되었습니다. 힐스보로 참사는 축구 경기장에 정원을 훨씬 넘는 인원이 통제없이 입장하면서 96명이 질식사한 사건입니다. 명백한 인재사고였던 점, 사고원인에 대한 은폐가 이루어지고 언론의 왜곡 보도가 있었던 점,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점 등이 세월호와 매우 닮아 있었죠. 다만 명백히 달랐던 것은 이 사건이 공동체의 변함없고 뜨거운 지지 속에서 결국 최근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에 성공했다는 사실입니다. 지역 공동체와 축구구단들은 왜곡 보도 일간지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했고 구장 근처에 추모 기념물을 세우고 해마다 희생자들을 추모했습니다. 영국 총리는 이 참사에 대해 사과하며 '희생자 가족과 정의를 향한 그들의 오랜 여정을 지지해준 공동체의 힘과 위엄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이야기했지요.

 

이렇듯 공동체의 지지는 험난한 여정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지만 반대로 공동체의 혐오와 배제는 그 대상들을 병들게 합니다.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은 의학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습니다. 개인의 성애지향과 성적 정체성은 개인적 정신질환이 아니라, 그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로 인해 '심인장애가 유발되기 쉬운 상태'일 뿐이라는 의학계의 공식적 입장표명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들을 치료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병율이 높은 현상을 동성애가 HIV/AIDS의 원인이라고 잘못 판단하고 낙인찍으면서 오히려 동성애자들의 의료지원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는 그 분야에 대한 의학전문가가 부족한 현실에다가 생물학적 성만을 인정하는 제도 안에서 고통받고 있지요.

 

 

위 그림은 에이나르 베게너의 '이탈리아의 카프리'라는 그림입니다. 에이나르는 주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 중 사람이 들어간 것은 게르다의 초상화 한 점과 이 그림이 거의 유일합니다. 이 그림 속 두 여인은 이후 아내 게르다의 그림들로 유추하건데 분명 자기 자신과 게르다입니다. 그에게는 참으로 '특별한 두 사람'이지요.

에이나르 베게너는 세계 최초의 성전환 수술 트랜스젠더로 유명한 덴마크의 화가입니다. 결혼한 남성이었지만 여성정체성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역시 화가였던 아내의 예술적 뮤즈가 되기도 했어요. 이 둘의 이야기는 최근 '대니쉬 걸(Danish Girl)'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다른 성소수자 이야기와 달리 놀라운 것은 에이나르가 남자에서 여자가 되는 과정 내내 그의 아내인 게르다가 함께 했다는 사실때문입니다. 그의 아내는 '남자'였던 남편이 되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면서도 이혼하지 않은 채 그의 곁을 지킵니다. 트랜스젠더라는 용어조차 없던 그 시절, 그가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명백히 게르다가 '놓지 않았던 손'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동성애에 대한 반대 진영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보고자했습니다. 실제로 동성애 전환친료를 하는 사람들과 그 '전환'의 경험자들의 이야기도 읽어보았습니다. HIV/AIDS의 확산에 대한 두려움과 동성애적 행위로 인한 질병 취약성에 대한 염려, 우리 아이들이 동성애자가 될꺼라는 두려움, 문란한 성관계의 허무함, 전환 이후 다시 찾은 행복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현상을 원인으로 잘못 유추하거나 일부의 이야기를 전체로 확장해 묶어버리고 있었지요.

 

하지만 우리 안에도 왠지 모를 불편함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성소수자들이 사회제도적으로 차별받고 배려받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성애를 내 삶의 가치관 안으로 포용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기도 했지요. 사회적 수용주장과 개인적 거부감 사이의 갭이 불편하고 힘들었습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그들을 편견이나 차별없이 대한다해도 위선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한 생각을 하니 너무 괴롭고 미안했지요.

 

저자는 비를 멈출 수 없다면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충분히 비를 맞고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노동조합을 나온 것이, 내가 제도의 수혜자였던 것이, 드러내놓고 세월호 리본을 달지 못했던 것이, 극한 상황을 상상해봤을 때 포용이 아닌 거부감이 드는 것이 비겁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모임 이후 이 점이 내내 서글펐습니다. 혐오의 비를 내리는 사람들은 성찰하지 않는데 빗 속에서 나만 우산을 든 것 같다고 모임벗들은 괴로워하고 있었어요.

 

<존재를 위한 태도> 모임을 시작하게 된 것은 모두가 이상적인 투쟁가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우산을 든 사람들이 비를 맞는 사람 주위에 모여 커다란 우산을 만들고 "이 사람은 우산이 없어요!'라고 함께 우산가게에 소리치는 건 어떨까요. 우산 속에서 눈물짓는 그 마음조차 저는 '놓지 않은 손'이라고 생각합니다. 간절한 기도를 허공 속에 흩어지는 말 뿐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지금 당장 완벽한 도움이 되지 못해서 괴로운 그 마음 또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재미와 즐거움이 넘치는 세상에서 힘겹고 슬픈 이야기를 읽고 생각하는 괴로움을 모임벗들은 기꺼이 감당하였습니다. 괴로움에 머무는 용기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에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마무리합니다. 아픔과 슬픔이 그리고 우리의 괴로움이 웅덩이가 아닌 길이 되어 흐르게 하기 위해 우리가 어찌 할 수 있을지 함께 읽고 이야기해보아요.

 

* <존재를 향한 태도>는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 대안문화공간에서 진행되는 11주간의 책읽기 모임입니다. '이상한 정상가족', '아픔이 길이 되려면',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고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봅니다. 구글 링크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https://goo.gl/forms/cagFpAyxjQ42aaa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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