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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모임> 경계짓던 마음들이 연결되는 부서진 틈새 본문

존중과 스며듦/존재를 향한 태도

<존재모임> 경계짓던 마음들이 연결되는 부서진 틈새

고래의노래 2019. 4. 4. 13:06

 <존재를 향한 태도> 여덟번째 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이번 모임부터 우리는 모임의 마지막 책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앞서 함께 읽었던 두 권의 책들과 결이 많이 다릅니다. '이상한 정상가족'과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사회현상과 구체적인 사례들, 각종 통계치로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비통한~'은 우리 자신에게로 눈을 돌려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마음'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별 고민없이 써왔던 많은 단어들을 다시 정의내리는데 그 중에서도 '민주주의'와 '마음'은 여러 번 중요하게 언급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민주주의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행사되는 정치제도로, 마음은 감정이나 욕구와 같은 뜻으로 단순하게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마음을 모든 앎의 방식들이 수렴되는 중심부, 즉 '근원적인 자아의 핵심'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여러 마음들 사이의 긴장을 끌어안기 위해 고안된 제도로 바라보지요. 그 긴장은 분명 편안한 상태는 아니지만 변화를 품은 에너지임에는 분명하며 우리는 그 에너지가 공동체에 유익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치문제는 개인이 어찌하기에는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다 내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했다가는 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들지요.

 

 저자는 이 무력감과 두려움 안에서 당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품고 견디는 우리들을 '마음이 부서진 이들, 비통한 자들'로 지칭합니다. 그리고 비통한 자들에게 민주주의의 찬란함을 꽃피울 힘이 있다고 격려하면서 '마음이 부서져 흩어지게' 하지말고 '마음이 부서져 열리게' 하라고 이야기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조급함을 벗어나 기다릴 수 있어야하고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차이의 가치를 인정해야합니다.

 

 우리는 차이의 가치를 느끼며 긴장을 끌어안는 경험을 모임 안에서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여러 의견이 다양하게 펼쳐질 것으로 기대되는 논쟁거리를 정하여 이야기를 나누되  나의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그 생각이 어떠한 경험에 기반하는지 개인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나누어보기로 했어요. 즉 생각에 대한 생각, 논리를 위한 논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하는 것이지요. 처음에 우리는 찬반의 입장을 밝히지 않은채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당황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점점 방향을 잡아갔습니다. 곁에서 지켜본 친구의 경험, 공동체가 품어주지 못한 아픔에 대한 목격, '나라면..'으로 이어진 상상들, 그리고 본인의 경험들이 나누어졌어요.

 

 위 이미지는 '24주'라는 영화의 포스터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하고 평탄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코메디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인기가 많은데다가 배려심 깊은 파트너와 건강하고 귀여운 아이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둘째를 임신하고 그 행복이 절정이 이르렀을 무렵 주인공은 뱃속 아이에게 유전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황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주인공은 아이를 맞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해당 증후군 사람들을 만나고 그렇게 특별한 아이를 키우려면 어떠한 준비가 필요하고 제도적으로는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차근차근 알아보지요. 하지만 그렇게 알아갈수록 점점 아이의 특별함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오랜 고민과 갈등 끝에 주인공은 임신중절을 선택하죠. 영화의 배경은 독일입니다. 임신중절이 합법이고 장애인에 대한 복지제도도 탄탄한 편이지요 그리고 주인공의 경제상황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선택했고 그 선택은 존중됩니다. 24주는 아기가 그와 함께 있던 시간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임신중절을 위해 주인공이 병원에 갔을 때 병원이 보여준 심리적인 지원과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였습니다. 조산사는 수술 직전 죄책감으로 경직된 주인공을 어루만지며 수술 직후 아기를 안아볼 수 있으며 발프린팅도 만들어주겠다고 이야기해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다는 주인공에게 함께 했던 아기를 마주하고 보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며 부드럽게 설득합니다. 우리는 임신중절 하면 폭력적인 생명경시를 떠올리지만 영화 내내 아기는 묵직한 존재로 함께 하며 조심스럽게 배려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임신중절은 불법이고 그 근간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 명시되지요. 하지만 임신과 출산, 임신중절 선택과 진행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경험한 것은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고 대상으로 다뤄지는 분위기였습니다. 떠나보내지만 존재로 존중되는 것과 붙잡아두지만 배려되지 않는 이 아이러니한 비교는 임신중절의 찬반 논의를 넘어 다함께 집중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임신중절에 대한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들은 어느 것 하나 쉬운 선택이었던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경험이 무겁고 힘들었으며 아기와의 만남은 우리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지요. 때로 그것은 내 존재와 관련된 경험이기도 했고 내 곁의 아이와 연결된 이야기이도 했어요. 삶은 복잡하고 여러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습니다. 단순하게 어떤 선택이나 행동이 나쁘다 옳다를 판단할 수 있는 선을 넘어가지요. 때로 우리는 같은 이유로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상황에서도 같은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삶이 이렇게 복잡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생각이 다른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고 이분법적인 판단을 넘어 그렇게 둘로 갈라세운 프레임이 무엇이고 어떤 힘이 그 구조를 만들었는지 꼬리를 물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단순히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받아들여야할 차이의 '가치'는 이렇게 서로 경계짓던 마음들이 연결되고 함께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부분일 것입니다.

 

 실체로 와닿지 않는 형이상학적 수사가 이어지다보니 책이 쉽게 읽히지가 않았고 기대했던 바와 다른 내용 전개에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같은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 듯한 루즈함도 있었지요. 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고른 단어와 문장들은 매우 섬세했고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에서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품었던 사회적 모순에 대한 의문과 그에 따른 좌절감과 분노를 저자는 모두 이해하는것 같았고 그래서 마치 인자하고 지혜로운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비통함이라는 숙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력감을 넘어 나의 효능감을 되돌리는 일이고 두려움을 넘어 낯선 이를 환대하는 일이며 차이때문에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기도 했어요. 생각과 의지만으로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책 내용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 또한 비통함의 가운데에서 이 책을 완성하는데 6년이나 걸렸다고 이야기하며 마음에게 기다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마음이 내어질 때까지의 기다림 속에서 무기력을 넘어 변화를 꾀하는 움직임은 어떻게 가능할지 계속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해요. 다음 모임에서는 4장 (~p153)까지 읽고 만납니다.

 

 이번 모임에서도 다른 생각과 신념이 '따뜻한 긴장' 속에서 품어지는 경험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임에서의 이 경험들이 쌓여 '부서져서 열리는' 마음의 습관으로 단단해지리라 믿습니다.

 

* <존재를 향한 태도>는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 라는 대안문화공간에서 진행되는 11주간의 책읽기 모임입니다. '이상한 정상가족', '아픔이 길이 되려면',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고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봅니다. 구글 링크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https://goo.gl/forms/cagFpAyxjQ42aaa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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