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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모임> 당신의 아이들은 잘 있나요? 본문

존중과 스며듦/존재를 향한 태도

<존재모임> 당신의 아이들은 잘 있나요?

고래의노래 2019. 3. 8. 09:44

<존재를 향한 태도> 첫번째 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이번 달에는 3주동안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으며 함께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당연시하고 있는 가족의 모습들을 여러 시점으로 되짚어 보게 되는데요 이번 주에는 가족 안에서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가족은 가장 가깝고 그래서 가장 많이 상처입고 입히는 관계이죠. 특히나 아이와의 관계는 필터없는 날 것의 모습으로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돌보는 어른과 돌봄의 대상이라는 기울어진 힘의 관계는 건강한 의식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을 때가 많지요.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체벌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곤 합니다. 인권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이후 훈육, 체벌, 학대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어 왔습니다. 지구촌 여기저기에서도 이 논의는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가벼운 체벌도 법으로 금지한 나라부터 체벌의 경계를 명확하게 규정해놓은 나라, 아직도 체벌이 공공연한 나라까지 다양했지요.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적당한' 체벌이라는 것은 없다고. 어느 수준이든 체벌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존재에 물리적 힘을 가하는 권리'에 대해 용인한 것이라고 말이죠. 체벌을 받으며 자라왔고 '사랑의 매'라는 개념을 아직은 떨쳐버리지 못한 우리에게 이것은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현실'이었습니다.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당장 아이와 함께 하는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를 꾸려야할지 난감했습니다. 그 난감함은 개인적인 변화의 어려움이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 우리의 환경이 그것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똑같이 체벌이 용인되는 사회여도 그 배경은 달랐습니다. 일본, 프랑스와 우리나라는 체벌을 대하는 데 있어 비슷하면서도 결이 달랐지요. 우리나라에서 체벌이 공공연한 이유는 이웃에 폐를 끼치면 안되어서나 올바른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아이는 나의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의 아동학대가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는 이유도, '가족동반자살'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수 있는 것도 아이가 부모의 권한 안에 있다는 소유의 개념이 강하기 때문이었지요. 그것은 아이의 돌봄이 모두 가족, 특히나 엄마에게 집중되는 현실과도 연결되어 있었고 아이에 대한 평가가 곧바로 부모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는 분위기와도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아이의 불편한 행동에 여유있는 대처를 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여유있는 대처란 아직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어른들이 읽어주고 살펴주는 것이지요. 그러한 안정된 관계 속에서 아이는 어른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어른을 믿기 때문에 따르게 됩니다. 어른들에게 '권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위 그림은 메리 커셋의 '어린 토마스와 엄마'라는 그림입니다. 메리는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었지만 엄마와 아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그림에서 아이들은 '모델'처럼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아이답게 늘어져 있거나 행동하고 있지요. 이 그림에서 어린 토마스의 모습은 천사처럼 방실거리는 여느 그림 속의 아이들과 다릅니다. 바로 우리 옆의 그 아이들같지요? 뭔가 잔뜩 속상한 일이 있었나봅니다. 엄마 눈을 보지 못하는 걸 보니 무언가 잘못을 한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토마스를 엄마가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작은 어깨에 뽀뽀를 하며 무슨 일인지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것 같습니다.

 

 체벌없는 아이 훈육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알아주고 욕구를 읽어주는 '공감훈육'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은 우리 안의 죄책감이었습니다. 알면서 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자괴감이죠. 하지만 이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의 결심이 내면화되어 실현되려면 든든한 버팀목도 필요합니다. 아이와 우리 사이에는 '건강한 틈'이 있어야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들 마음에 이러한 틈을 생기게 하려면 돌봄의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게 사회, 국가, 마을이 함께하는 공동체 돌봄이 있어야하지요.

 

 '공동체 속의 나'에 대한 주제로 만난 모임이니만큼 나를 바깥으로부터 설명하고 소개하며 시작했었습니다. 내가 속한 환경, 내가 맺는 관계 중에서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추려 나를 돌아보는 작업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 질문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어요. 우리는 저 그림 속 엄마같은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현실 속 우리는 한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지지요. 그렇기에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성장하려 합니다. 그 부족한 느낌이 죄책감이 되지 않도록, 무엇이 부족한 건지 진짜로 알 수 있게 말이지요.

 

 아프리카의 '위대한 마사이' 부족은 '카세리안 잉게라'라고 인사하는데 이는 '당신의 아이들은 잘 있나요?'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자녀가 없는 사람이라도  저 인사에는 '아이들은 모두 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고 하네요. 아이들이 잘 있어야 우리가 안녕하다는 인식이 있다면 과연 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가 매일 저렇게 인사를 나눈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날까요? 가장 취약한 존재를 존중하는 사회라면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상상 속에서 우리 가족, 우리 이웃, 우리 사회의 '작은 존재'들을 향한 다짐들을 해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이렇게 인사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잘 있나요? 그리고 여러분도 진정 안녕하신지요?"

 

마음을 열어 모임 안으로 들어와주신 모임벗들께 감사드립니다. ^^ 함께 하는 따뜻한 성장이 기대됩니다. 다음 주에는 199페이지까지 읽고 만납니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진짜 가족의 모습을 찾아보아요~ 다음 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 <존재를 향한 태도>는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 대안문화공간에서 진행되는 11주간의 책읽기 모임입니다. '이상한 정상가족', '아픔이 길이 되려면',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고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봅니다. 구글 링크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https://goo.gl/forms/cagFpAyxjQ42aaa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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