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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모임] 손없는 소녀를 함께 읽고...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옛이야기 모임] 손없는 소녀를 함께 읽고...

고래의노래 2024. 4. 18. 22:28

* 옛이야기와 꿈이라는 환상적인 이야기 속의 상징성을 우리 삶과 연결해보는 모임, [옛이야기와 꿈 그리고 나의 이야기] 네번째 모임 후기입니다.

 

후끈한 주말을 지나고 한바탕 비가 오더니 다시 봄이 되었네요.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 봄을 잘 만나고 보내줘야겠다 싶습니다. 

'손없는 소녀'와의 만남은 여러분 마음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남았나요? 
기독교적 메세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이 이야기가 어떤 면에선 조금 불편하기도하고, 어떤 부분에선 명확해서 좋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달래가 짚어주신 것처럼 '아버지 뜻대로 하세요.'라는 문장은 이 이야기의 주제를 관통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었어요.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손을 잘리고 남편에게 의지했다가 하느님 아버지의 은총 안에서 다시 손이 자라납니다. 저에게 이 여정은 지난 주 이야기였던 '흰눈이와 빨간장미'를 떠올리게 했는데요, 한없이 안락한 '어머니의 세계'와 쓸모로서 다뤄지는 '아버지의 세계'가 극명하게 대립되어 보이는 것 같았어요. 
흰눈이와 빨간장미가 숲에서 시작하여 마을까지 나아갈 때, 거꾸로 손없는 소녀는 마을(방앗간)에서 시작하여 숲으로 갑니다. 어쩌면 두 이야기를 이어서, 숲을 떠나 마을까지 나아갔던 소녀들이 다시 숲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존재 그 자체로 환영받던 유아기를 지나 쓸모로 재단되는 성인기를 거치고 다시 무쓸모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노년기로 이어지는 흐름말이죠. 주인공의 수동성을 바라볼 때 답답하고 불편했던 것도 어쩌면 '아버지의 시각'(가부장제의 시각)은 아닐까싶기도 했습니다. 

주체적으로 내 삶을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삶을 선택할 때 나에게 다가오는 악마의 유혹은 어떤 것이 있을지 곰곰히 생각해보고 싶네요. 

 

우리가 읽은 번역본에서는 손없는 소녀의 아이 이름이 '괴로움 많은'이었잖아요. 그런데 다른 번역본을 보니 '설움덩이'라고 해놓았네요. '눈햐얀'과 '장미붉은'도 그랬지만 전영애 선생님 번역본은 독어 자체에 충실한 듯 한데, 우리말로의 의역이 확 와닿기는 합니다. 그 '확 와닿는' 게 혹시나 원본이 담은 것과 다른 감성일까 싶기도하나 그래도 마음이 끌립니다. ㅎㅎ

 

저는 사실 손없는 소녀가 괴롭고 한많은 자신의 삶을 아이 이름에 담는 게 조금 이기적으로 보였거든요. 그러면서 만약에 내가 손없는 소녀였다면 아이 이름을 뭐라고 지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설움덩이'라고 이름 지어진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분명 내 서러움이 변모되고 승화되는 걸 목격하는 듯 하겠죠. 그래도...아들낳고자 하는 염원담아 막내딸 이름을 짓는 것처럼 내 존재가 뭔가 저당잡힌 느낌일듯요. 
어쩌면 손없는 소녀는 본인의 이름을 지어야할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싶네요. 손없는 소녀에게 딱 맞는 이름은 뭘까 한 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읽을 옛이야기는 '홀레 할머니'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제까지 읽었던 이야기들과 겹쳐지는 모티브들이 많고, 분량이 비교적 짧지만 인간의 내면 성장에 대한 주요한 테마를 담고 있습니다. 함께 읽은 이야기들 중에 주인공이 아닌 캐릭터를 제목으로 한 유일한 이야기이기도 하네요. 
주인공을 따라 홀레 할머니를 만나러 떠나볼까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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