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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차별에서 구별로 : 헤로데와 포도밭 일꾼들 그리고 마태오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

[마태오복음] 차별에서 구별로 : 헤로데와 포도밭 일꾼들 그리고 마태오

고래의노래 2023. 8. 25. 16:17

* [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는 가톨릭, 개신교, 불교, 비신자 등 다양한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 4명이 모여 성경을 온라인으로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속도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느낌과 생각, 깨달음과 질문들을 각자의 블로그에 남기고 톡과 밴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혐오, 억압, 차별의 잔혹사이기도 한 구약을 어렵사리 통과했다.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들에 이르러서는 그시대에 인간의 영성과 도덕적 인식의 변화를 감지하고 구약의 의미를 어렵사리 정리하였더랬다. 

신약이 시작되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고개가 끄덕여지고 마음이 움직이는 말씀들이 이어진다. 새로운 계약의 시대가 왔다! 차별에서 구별로!

 

복음서 4권을 쭈욱 읽었는데 복음서들 각자의 고유한 텍스트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각 복음서에만 나오는 내용들을 정리하였다. 그 중 나에게 매우 의미있는 부분들을 추렸다. 마르코복음에는 고유의 텍스트들이 많지 않고 그 중 내 마음에 유의미하게 남은 것이 없어서 제외했다. 그렇게 보면 마르코복음서야말로 복음교집합이라고도 볼 수 있으려나.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들 중 인상깊은 부분.

- 동방박사들의 방문

- 헤로데가 아기들을 학살

- 산상설교

-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동방박사가 마태복음에만 나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들이 도대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동방박사의 가장 큰 역할은 헤로데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굿간으로 새로운 메시아를 경배하러 온 사람은 동방박사 외에도 더 있었는데, 루카복음에 나오는 목자들이다. 목자들만 예수님의 탄생을 알았다면 이 소식이 헤로데 왕에게 알려지는데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동방박사는 로얄한 위치이기에 바로 왕을 알현할 수 있었고 메시아의 탄생을 전할 수 있었다. 

 

 헤로데는 메시아의 탄생 소식에 불안해하며 베들레헴 아기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다. 메시아의 탄생을 기뻐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 ‘힘’을 잃을까 두려워 내놓은 그의 서툰 책략들 그리고 소란스러운 마음이 안쓰러웠다. 모두가 기쁠 때 기뻐할 수 없는 사람이라니. 

 나도 ‘힘’을 잃을까봐 경계한다. 세상이 인정하는 힘, 권위, 인정을 갈망한다. 중년 이후 내 공부의 목적은 ‘힘’을 새롭게 정의내리고 ‘힘’이 어디에 있는가 다시 발견하고 거기에 순명하는 것이다. 헤로데에게서 세상의 힘을 얻고 싶어 안달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 그대로라면 세상에 기쁨이 가득할 때 헤로데처럼 혼자 두려움에 떨겠지. 그거야말로 두려운 미래다. 

 

 선한 포도밭 주인 이야기는 그야말로 속쓰린 말씀이다. 포도밭 주인은 아침 일찍부터 일한 일꾼들과, 아홉시쯤부터 일하기 시작한 사람들, 열두시, 세시, 다섯시에 합류한 이들에게 모두 한데나리온씩 준다. 맨 먼저 온 이들이 한시간만 일한 이들과 뙤약볕에서 온종일 고생한 자신들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에 대해 투덜대자 포도밭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낸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고.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요즈음 시대 공정함의 기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를 하느님께서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들에게 은총과 구원을 내리시는 거라고 해석하면 어떻게 되나? 일찍 하느님을 알게 된 이들도 있고 죽음의 경계에 이르러서야 하느님께 다가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모두 같은 은총을 받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후하다. 인간이 감히 그 사랑의 공정성을 따질 수 있는가? 

 나는 [베네딕도 수도 규칙]을 읽으며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다만 구별하신다.’라고 하신부분에 강한 반감을 느꼈었다. 나의 선행과 인내와 정의를 향한 노력을 보상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이러한 외침이 내 안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차별이 아닌 구별!' 차별은 판단,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이고 구별은 나누어 구분하는 것이다. 차별이 기준에 집중한다면 구별은 당사자의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반대한다. 그리고 여성으로서 구별되어진 것을 존중받고 싶다. 이는 여성의 경험, 몸과 진화, 내면 영성의 여성적 특이성을 파고들어가면서 내가 계속 균형잡기 하고 있는 점이다. 여성이라는 것은 ‘구별’의 관점에서 그것은 어떤 의미이고, 어떠한 은총인가? 

 

 마태오는 세리였다. 마태오 복음 9장 9절에는 마태오가 예수님을 따르게 된 장면이 나온다. 아주 심플하다.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한 말씀뿐이었다. ‘나를 따라라.’ 베드로에게 하셨던 것처럼 ’사람 낚는 어부‘라는 미래를 건네지도 않으셨다. 마태오가 세리로서 가지고 있던 내면의 부대낌을 알고 계셨던 것일까? 마태오는 어떻게 저 한마디에 붙잡고있던 모든 가치들을 던져버릴 수 있었을까? 여전히 사회적 힘을 갈구하고 다른 이보다 더 대접받기 위해 애쓰는, 헤로데같고 포도밭 일꾼들같은 나에게는 아직 경이롭기만 한 장면이다. 

 

 마태복음의 핵심은 산상설교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셨던 말씀이 핵심요약본처럼 정리되어 있다. 9월부터 시작되는 여성영성지도자 심화 과정에서 마태복음을 깊게 살피고 공부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알아가면 좀 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으려나. 아마 내 힘으로는 부족하겠지.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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