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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예언서] 맡겨진 말씀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다. 본문
성경에는 많은 예언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꿈을 해석하여 하느님의 계시를 이해하고, 환시를 보기도 하며, 직접 하느님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전한다. 인간에게 미래는 언제나 알 수 없는 두려움이기에 예나 지금이나 앞일을 미리 알아 안심하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일일꺼다. 시대 상황이 불안하고 생존에 위협이 느껴진다면 더더욱.
정치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주변국들은 위협하는 가운데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는 결국 멸망하고 만다. 그리고 유다인들 일부는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한다. 세월이 흘러 이들이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땅에 머물렀던 동족은 물론 이민족들과도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했다.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하는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여러 예언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예언은 유다인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주는데, 이 예언들이 묶인 예언서들이 구약의 마지막 부분이다.
놀라운 것은 예언서의 '예언'은 다가올 일을 미리 짐작하여 말하는 豫言이 아니라 말씀이 맡겨졌다는 뜻의 預言이라는 점이다. 성경 예언자들의 예언은 미래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좋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지금의 잘못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안정을 바라는 유다인들에게 이것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살해의 위협을 감수하며 예언을 하였는데, 예레미아의 고백에는 이런 처지에 대한 애통함이 잘 나타나있다.
[예레미야]
15:10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빚을 놓을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는 데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
20: 18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와 고난과 슬픔을 겪으며 내 일생을 수치 속에서 마감해야 하는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다른 많은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보호하시는 장밋빛 미래를 떠벌렸고 희망에 의지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흔들렸던 것 같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통로로 여겨졌던 꿈은 개인적인 열망으로 기울어져 해석되기 시작했다. 이에 하느님은 아예 개인이 꾼 꿈들을 풀이하지 말라고 명하기에 이른다.
[예레미야]
23:27 그들은 자기네 조상들이 바알때문에 내 이름을 잊었듯이 서로 주고받는 꿈 이야기들로 내 백성이 내 이름을 잊도록 흉계를 꾸미고 있다.
29:8 너희 가운데에 있는 예언자들과 점쟁이들이 너희를 속이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너희가 꾼 꿈을 풀이하려고 하지마라.
이러한 분위기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성경 예언자들에게 개인적인 책임감을 넘어선 일이었으며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예레미아 20:9]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계약이 내려진다. 구약과 신약이 갈리는 순간이며,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변화하는 시점이었다.
[예레미아 31:29-32] 그날에 그들은 더 이상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자식들의 이가 시다" 오히려 인간은 저마다 자기가 지은 죄로 말미암아 죽고, 신 포도를 먹은 사람은 모두 제 이만 실 것이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새로운 계약 아래서 하느님은 집안, 민족과 관계맺지 않으시고, 개개인과 1:1의 개별적인 관계를 맺으신다. 선택된 민족이라는 유다인들의 선민의식은 옛 계약이 되고 말았다.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시대에는 개인적인 책임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에제키엘]
18:13 그가 죽은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18:17 불의에서 손을 떼고 변리도 이자도 받지 않으면서, 나의 법규들을 지키고 나의 규정을 따르면, 그는 자기 아버지의 죄 때문에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19:19-22 그런데 너희는 '왜 그 아들이 아버지가 지은 죗값을 짊어지지 않는가?'하고 묻는다. 그 아들이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고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여 지켰으므로 그는 반드시 살 것이다.
죄지은 자만 죽는다. 아들은 아버지의 죗값을 짊어지지 않고, 아버지는 아들의 죗값을 짊어지지 않는다. 의인의 의로움은 그 자신에게만 돌아가고, 악인의 죄악도 그 자신에게만 돌아간다.
그러나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심지어 죄를 지은 민족들이 반성하고 마음을 돌릴 경우 쉽게 용서하시고 벌을 물리시기도 한다. 요나는 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해한다.
[요나 3:10-4:1]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요나는 이 일이 매우 언짢아서 화가 났다.
그리하여 새로 오시는 구세주는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 바라던 그 모습이 아닐 것임을 드러낸다. 그 삶은 멸시받고 천대받은 자이며 우리의 죄악 때문에 징벌을 받고 우리를 구할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스스로 속죄제물이 될 것이고 그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사야서 53장]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위의 악행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러가는 어린 양처럼 덜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가?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자가고 내 백성의 악행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 그는 죽어서 부자들과 함꼐 묻혔다.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구약은 단순히 유다인들의 역사를 기록한 글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유다인들과 하느님 사이의 옛 계약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계약 내용은 변화했다. 이집트에서 빠져나오며 맺었던 하느님과의 계약은 바빌론 유배지에서 돌아오며 세롭게 갱신된다. 구약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언자들은 새로운 계약의 포문이 열릴 것임을 알리는데, 이는 신약성서로 이어진다. 읽기가 고통스러운 정도로 잔인하고 성차별적이던 구약의 내용은 인간 의식의 변화, 진화라는 과정을 알리기 위한 기록이었다. 결국 누구의 혈육인지, 어디 출신인지, 어떤 성인지의 구분에 따라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내가 한 행동과 말과 지향에 대해서만 책임지고 개인과 개인이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는 그런 시대가...온다.
[하바쿡 2:3]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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