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에서 집회서까지] 인간의 영성이 변해가는 과정

* [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는 가톨릭, 개신교, 불교, 비신자 등 다양한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 4명이 모여 성경을 온라인으로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속도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느낌과 생각, 깨달음과 질문들을 각자의 블로그에 남기고 톡과 밴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욥기 이후로 생각이 꽉 막혀버렸었다. 원래 1권 읽으면 후기를 썼었는데 욥기를 읽고는 머리 속이 멍하고 내 안에 어떤 감정도 생각도 올라오지 않았다. 몇주간 고민하다가 일단 후기는 건너 뛰고 계속 읽어가보자 싶어서 시편을 시작했다. 
 성경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 부분 복병이겠다.'싶었던 부분이 시편이었다. 정보성 내용이 아닌 줄줄이 이어지는 찬미와 한탄들. 전혀 공감되지 않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무료해하며 들어주는 것처럼, 견디며 읽어나가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시편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여러 계기들이 몰려왔다. 마치 하느님께서 안타까워 하시며 길을 열어주신 것처럼...

 여성 신비가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에티 힐레숨'에 대한 책을 읽었다. 원래 융심리학과 관련한 인물로 책을 구매해놓았었는데, 여성신비가라는 분류 안에서 읽게 된 것이다. 유대인이었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그는 내면의 공허함을 해소하기 위해 융심리학 상담가에게 상담받고 교류하며 점차 영성에 닿게 된다. 저절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신을 찾게 된 것이다. 때는 2차 세계대전이었고 유대인 학살이 이어지고 있었다. 에티는 도망가라는 주변의 권고에도 운명을 받아들이고 수용열차에 오른다. 그리고 마음 속을 증오가 아니라 사랑으로 가득 채웠다. 이 과정은 에티가 남긴 일기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에티가 신을 느끼고 만나고 대화할 때 자주 읽었던 성경구절이 시편이었다. 나는 에티가 내면의 신을 느끼고 비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삶과 인간을 긍정하게 되는 과정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런 그가 시편에서 무언가 느꼈다면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을 때 시편을 참고하며 개인적인 탄원시를 쓰는 숙제를 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감당하기 버거운 고통에 대한 솔직하게 서술하며 이를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드렸던 것처럼, 내 인생의 고달픔과 아픔을 떠올리며 나만의 시편을 적어보라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막둥이를 보냈을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때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다. 아...그 때의 일기는 마치 시편 글들 같았다. 몸을 웅크리고 토해내는 절망의 외침...고통스러우니 살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이 고통에 머물게 해달라는 기도들...왜 잊고 있었을까. 시편은 대부분 유배 중에 집대성되었다고 한다. 매달리는 심정. 그게 뭔지 나는 안다.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라고만 여겼던 시편은 내 삶과 전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어지는 잠언에서는 지혜가 전면에 드러난다. 여기에서의 지혜가 성령으로서의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혜가 행복의 근원임을 계속 강조한다. 그리고 원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면모가 보여진다. 
"네 원수가 쓰러졌다고 기뻐하지 말고 그가 넘어졌다고 마음속으로 즐거워하지 마라. 주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좋지 않게 여기시어 그에게 내리신 노여움을 돌이키신다."
원수들의 죽음과 고통을 빌던 때랑 너무 다른 온도차다. ㅎㅎ

 코헬렛에서는 잠언에서의 지혜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지혜를 하느님의 지혜와 구분한다. 인간들은 인생의 유한함 앞에서 허무함에 빠져버린다. 
"지혜로운 이의 눈을 제 앞을 보지만 어리석은 자는 어둠 속을 걷는다. 그러나 둘 다 같은 운명을 겪게됨을 나는 또한 알았다...어리석은 자의 운명을 나도 겪을 터인데 그렇다면 나는 무엇때문에 그토록 지혜를 추구했던가?"(코헬 2:14-15)
욥기에서 처음 등장했던 '의인의 불행'이라는 수수께끼가 다시 한번 언급되며 허무함에 빠진다.
"땅 위에서 자행되는 허무한 일이 있다. 악인들의 행동에 마땅한 바를 겪는 의인들이 있고 의인들의 행동에 마땅한 바를 누리는 악인들이 있다는 것이다."(코헬 8:14)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가 허무라고 탄식하던 이는 인간 지혜가 가진 한계에 맞닦드린다.
"나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과 관련하여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인간은 파악할 수 없음을 보았다. 인간은 찾으려 애를 쓰지만 파악하지 못한다."(코헬 8:17)
다행히 코헬렛의 저자는 허무함 끝에 모든 의지를 놓아버리는 대신 하느님 안에서 하루치의 행복을 열심히 누리자는 결론에 이른다.
"태양 아래에서 너의 허무한 모든 날에, 하느님께서 베푸신 네 허무한 인생의 모든 날에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인생을 즐겨라. 이것이 네 인생과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너의 노고에 대한 몫이다."(코헬 9:9)
아...코헬렛의 구절 하나하나가 너무 마음에 와 닿았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고, 그 외에는 하느님께 맡기는 삶.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또 하나 엄청 찔리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던 구절,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몸을 고달프게 한다."(코헬 12:12)
ㅎㅎㅎㅎ 아...진짜 그런 것 같습니다만...

 

 지혜서에서는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다. 인생의 유한함 앞에서 허무함을 느끼며 현생의 감각적 행복에만 몰두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이 나타난다. 악인들이 눈 앞의 환락을 즐기며 의인들을 조롱하는 부분은 마치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바리사이와 군중들의 말과 행동같았다.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보자.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주실 것이다....자기 말로 하느님꼐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지혜 2 :16~20)
보상받지 못하는 의인의 죽음 앞에서 지혜서 저자는 의인이 받을 보상은 죽음 이후에도 이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주님께서는그 영혼이 마음에 들어 그를 악의 한가운데서 서둘러 데려가셨다."(지혜 4:14) 
"그러나 의인들은 영원히 산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보상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그들을 보살피신다."(지혜 5:15)
선악이 지상에서의 징벌을 넘어서서 죽음 이후의 시간으로까지 연결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기위해 지혜를 찾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적극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며 놀라운 문장이 나타난다. 
"임금도 모두 인생을 똑같이 시작한다. 삶의 시작도 끝도 모든 이에게 한가지다."(지혜 7:5-6)
그러면서 솔로몬 임금도 시작은 같았으나 지혜를 구하기 위해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오...인간의 의식이 달라지고 있다. 
자연을 숭배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주님을 따르지않았다는 당위적인 비판에서 한걸음 나아가 자연의 아름다움이 너무나 경이로왔기에 그들이 하느님을 찾고 찾다가 빗나갔을지 모른다며 일부 이해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래도 용서받을 수는 없다고 덧붙이면서)

 집회서에서는 또 한걸음 나아간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언급된다. 
"그 분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셨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있다."(집회 15:14-15)
다만 하느님께서 인간에 그 분의 능력을 해석할 이성을 주셨다고 하면서(집회17:5) '꿈의 환시는 현실의 반영일 뿐'(집회34:3)이라며 비이성적인 것들을 비하하는 면이 드러난다. 꿈쟁이 요셉의 시대처럼 하느님의 계시로 꿈이 차지했던 위상이 사그라지는 모양새다. 
"부끄러움과 수치를 가져오는 것은 여자다."(집회42:14)라면서 여성비하는 여전하지만 "어머니의 배 속에서 나오는 날부터 만물의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날까지"(집회40:1)처럼 하느님을 여성화하여 이야기하기도 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전통적인 의식과 새로운 의식이 공존하는 모양으로 생각되었다.

 이 때쯤 되어 욥기를 다시 살펴보았다. 의인이 고통을 받는다. 삶의 불행, 고난들은 죄의 벌이라는 공식 안에서 있던 인간들은 혼란스러워진다. 친구들은 벌이 주어졌으니 죄가 있었음이 분명하다며 욥을 다그치고, 욥은 자신의 무고함과 억울함을 주장한다. 이 대화는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어서 읽는 내내 그 현장에 있는 느낌이 든다. 친구들의 말에 "참으로 자네들은 유식한 백성이네. 자네들이 죽으면 지혜도 함께 죽겠구려."(욥12:2)라는 욥의 비아냥이 속시원하게 느껴졌다. 세 친구와 욥의 언쟁에 엘리후가 끼어들어 양쪽을 모두 비판하고 이어 하느님께서 직접 등장하신다. 그리고 이 세상을 만든 이가 누구인지에 대해 욥에게 길게 질문을 이어가신다. 결국 이 세상의 주인이 하느님이시며 자신 또한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깨달은 욥은 '죽기까지 나의 흠 없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본인 중심의 선악 개념을 버리고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라며 참회한다.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지, 어떤 일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하느님이 아닌 자신의 관점으로 판단해왔음을 깨닫고 고통이 단순히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과 만나게 하는 은총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구약을 읽고 있다고 하니 세라피나 수녀님께서 [구약성경 통권노트]를 추천해주셨었는데, 그 당시에는 '나는 여성의 관점으로 먼저 읽고 싶다.'며 거절했었다. 하지만 책은 사두었었는데, 이제서야 그 책을 읽으며 욥기, 시편을 포함한 사서, 지혜서들이 성경의 전체 맥락 안에서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요즘 핫한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은 "아,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라며 현실의 정의가 이상적이지 않음을 비꼰다. 드라마에서는 다행히 연진이 권선징악을 맞이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 유배시기에 고달픈 나날을 보내던 유다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느님을 섬기지 않은 징벌로 다른 민족의 땅을 떠돌게 되었다고 이해하고 다시 회심하지만 100년이 안되는 한 인간의 시간 속에서 그 공식은 드러나지 않는다. 나의 무고함에 억울함이 올라오고 삶의 허무를 순간의 쾌락으로 덮어버리고도 싶다. 하지만 삶의 아이러니를 끌어안을 수 있는 지혜를 하느님께 청하며 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로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한다. 삶의 기쁨과 고통을 모두 하느님께서 주시니 그 안에서 하느님과 만나리라 믿으면서. 

"인식이 초조함을 이기고 시간의 흐름을 신뢰로 맞아들일 때에야 운명의 법칙은 인식된다." _ 동화의 지혜 中

 시서와 지혜서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 시작된 멋진 글들이었다. 그리고 나와 무관한 외침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 사이에서 인간의 신앙심(영성)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즉 나의 변화이기도 한 말씀이었다. 구약 안에서 인간 의식의 변화를 발견한다. 반갑고 기쁘다. 이 모든 것도 이끄심이겠지.
(아가서가 내 마음에 깊게 다가오는 때도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그건 아마 하느님을 향한 나의 열망이 더 뜨거워지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