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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딧기] 오로지 하느님께 속한 자유롭고 복된 여인

고래의노래 2022. 2. 12. 16:24

0212 [유딧기]

유딧기 또한 토빗기처럼 개신교 성경에는 들어가 있지 않다. 하지만 너무도 유명해서 아마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과부 유딧이 이스라엘을 치려는 아시리아의 장수 홀로페네스의 목을 베는 이야기이다. 다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원본을 읽으니 새롭게 알게되는 부분이 많았다. 단순히 아름다운 여인이 적장을 유혹하여 죽이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 아시리아의 임금이 복수를 결심하다.


배경은 유다인들이 유배생활 뒤 다시 이스라엘에 모여 성벽과 성전을 재건해서 살던 때였다. 아시리아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엑바타나의 아르팍삿 임금과 전쟁을 벌이기 전, 페르시아와 서쪽 지방의 모든 주민들에게 사절을 보내 이 전쟁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나 거부당한다. 이에 네부카드네자르는 서쪽 지방에 보복할 것을 다짐하고, 전쟁이 끝난 후 홀로페네스 장군을 보내며 그 영토를 다 점령하라고 명령한다. 그 군대의 기세가 엄청나서 가는 곳마다 그들에게 항복하였다. 홀로페르네스는 점령한 지역의 신전들을 모두 부수고 네부카드네자르를 신으로 받들게 한다. 홀로페르네스의 소식은 예루살렘에도 전해지고 유다인들은 모두 하느님께 그들을 보호해주십사 간절히 기도한다.

서쪽 지방 주민들 중 유다인들만이 항복하러 나오지 않자, 홀로페르네스는 가나안의 장수들과 총독을 불러놓고 유다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물어본다. 이 때 암몬인의 수령인 아키오르가 유다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아브라함 이전부터 유배 뒤 다시 돌아온 때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쫙~ 정리하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몰락의 원인이 되는 죄를 찾아낸다면 올라가서 싸울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하느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니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말에 홀로페르네스는 격분하며 아키오르를 묶어 유다진영 쪽에 던져둔다. 그리고 배툴리아 주변에 진을 쳐서 전쟁을 준비한다. 이 때 에사우의 자손들이 홀로페르네스에게 베툴리아로 흘러드는 샘길을 막아 유다인들을 목마르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한다. 에사우의 자손이라니, 이사악의 큰 아들 에사우? 이 전에도 그들의 자손이 유다인들의 가는 길을 막은 이야기를 읽었던 것 같은데, 그 에사우가 맞다면 어짜피 한 핏줄인 터인데 여러 부분에서 반목하는 사이가 된 게 안타깝다.

:: 하느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란


물이 끊긴 유다인들은 괴로워하며 민족 수장들에게 차라리 항복하자고 성토한다. 그러자 수장 우찌야는 닷새만 기다려보자고 그들을 달랜다. 유딧은 이 말을 전해듣고 "여러분이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시험하냐"며 "하느님은 닷새 안에 우리를 도우실 뜻이 없으시더라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에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계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협박하고 부추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면서 다만 간청하자고 이야기한다. 하느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유딧이 보여주는 듯 했다. 나약한 마음에서만 오로지 신을 부르짖는 인간들이 이러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간절하게 바라되 그것이 바로 내 눈 앞에서 이루어지길 기대하지 않는 것, 하느님의 섭리는 사람의 시간으로 이해할 수도 없고 사람의 이성으로 가늠할 수도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믿음으로의 고비가 아닐까.

그러한 믿음 아래 유딧은 아무에게도 계획을 말하지 않고 시녀와 둘이서 헬로페르네스의 진영으로 간다. 그리고 유다인들이 망할 것을 예감했기에 도망쳐왔노라며 그들에게 유다를 칠 시기를 알려주겠노라 이야기한다. 양식과 물이 떨어진 유다인들이 결국 율법으로 금지된 먹거리들(집짐승, 사제를 위한 곡식과 포도주 등)을 먹을 계획을 세우고 있고, 그러한 불경으로 곧 하느님이 유다인들을 멸망시킬 거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유딧이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이 모든 일을 해내는 것이었다. 즉, 유다가 망하는 것은 홀로페르네스 군대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거역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암몬인 수령 아키오르가 한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유딧은 하느님을 섬기며 매일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신심생활도 지켜낸다. 매일 밤 골짜기로 하느님께 기도드리러 갈 것인데 멸망의 때를 자신이 기도 중에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을 칭찬하며 요리를 차려주고 포도주도 내어주지만 유딧은 율법을 어길 수 없다며 가져온 것들을 먹겠다고 한다. 준비해온 양식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는 홀로페르네스의 걱정에는 그 전에 주님이 뜻하신 바(유다의 멸망)를 이루실 꺼라며 안심시킨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 아래 율법과 기도생활까지 지키면서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의 진영에서 사흘을 머문다. 그리고 나흘때 되는 날 홀로페르네스는 성대한 연회를 열고 유딧을 초대한다. 유딧과 함께 있으며 포도주를 무척 많이 마시고 그는 뻗어버린다. 홀로페르네스의 종들은 천막에 유딧만 남겨두고 물러간다. 이 때 유딧은 홀로 그의 머리를 '두번 내리쳐' 베어버린다.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녀의 자루에 적장의 목을 넣고 배툴리아로 돌아간다. 유다인들은 자신들과 함께 지내던 아키오르를 불러 그 머리가 홀로페르네스의 것인 걸 확인한다. 아침이 되어 홀로페르네스의 시체를 본 아시리아인들은 놀라 달아났고 유다인들은 그들을 향해 돌진해 그들을 쳐부수었다. 유딧은 유다인들의 칭송을 받았다. 특히 모든 여자들이 달려와 그를 축복하고 춤을 추었다. 유딧은 올리브나무 가지로 함께 있는 여성들과 관을 만들어 쓰고 춤추는 여성들을 앞에서 인도하며 축하 행진을 했다. 그 뒤를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이 따랐다. 말년까지 유딧은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은 채 존경받으며 살았다. 자기 시녀에게는 자유를 주었다고 한다.

::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고 다만 하느님께 속한 복된 여인


이제까지 나는 유딧이 적장을 적극적으로 유혹하여 침대 위에서 그를 살해했다고 단순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 이야기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는 적장에 있는 나흘간 한 순간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기도 시간을 보장받으며 적들을 속일 수 있었다. 율법을 지키며 적들의 음식을 먹지 않은 덕분에 홀로페르네스가 진탕 취할 때도 함께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유딧은 자신이 부정하거나 수치스럽게 되지 않은 채 적장을 베었다는 것을 유다인들에게 분명히 전한다. 우찌야는 유딧에게 "딸이며, 그대는 이 세상 모든 여인 가운데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가장 큰 복을 받은 이요."라고 말한다. 신약에서 성모님에 대해 이야기되기 전에 '가장 복된 여인'으로 언급된 유일한 여인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여인들과 올리브관을 쓰고 유딧이 행진하며 찬미가를 부르는 모습은 다윗의 행진을 연상케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의 저자는 처녀를 '어떤 남성에게도 속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완전하고 충실한 여성'으로 새롭게 정의내린다. 유딧이 적장을 어떤 방식으로 유혹했는지 그리고 둘 사이에 육체적인 관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성경 속에서 유딧과 유다인들이 그 점을 중요시하는 부분들이 보이지만,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건 유딧이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고 다만 하느님께 속한 '자유로운 여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정신적으로 귀속되지 않았으며 영향을 받지도 않았다. 하느님을 시험한다며 유대인들의 수장을 꾸짖을만큼 생각과 믿음에 강단이 있었다. 그러한 믿음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복된 여인'이 되게 한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딧]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딧 이야기는 많은 그림으로도 그려졌고 이 그림들이 여인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된 것도 많다. 그 중 여인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기 보다, 여인들의 연대와 힘찬 처단이라는 주제에 집중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이 유명하다. 화가 자신이 성폭행 희생자였고 그 당시로서는 드물게(17세기 초반) 법적 공방을 겪게 되는데 이 때의 상처들이 그녀의 그림에 진취적인 여성상으로 반영되어 나오게 된다. 그의 유딧 그림에서는 홀로페르네스가 움직이지 못하게 시녀가 누르고 있다. 성경에는 유딧이 홀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었다고 하니 실제 내용과는 다른 장면이지만, 유딧기 마지막에 유딧이 '시녀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하는 걸 보면 둘 사이의 각별한 유대감이 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하느님에게 온전히 속한 자유로움, 하느님을 믿고 그래서 스스로를 믿은 용기, 그들의 단단한 믿음과 용감한 행동을 칭송하는 여인들의 행진...유딧기는 나에게 하느님을 믿었기에 스스로를 믿은 강인한 여인의 이야기로 남았다.
(유딧기는 가톨릭 성경에만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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