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는 가톨릭, 불교, 비신자 등 다양한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 3명이 모여 '성경'과 '여성을 위한 성서주석'을 온라인으로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속도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느낌과 생각, 깨달음과 질문들을 각자의 블로그에 남기고 톡과 밴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1206 [에즈라기]
역대기 이후의 성경은 시대순으로 엮여있지가 않다. 유배 이후의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뉘었을 때의 예언자들 이야기가 한참 뒤에 다시 나온다. 왜 순서를 이렇게 뒤죽박죽 섞어놓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유배를 간다. 에즈라기에서는 유배기간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않고, 곧바로 유배를 끝내고 돌아오게 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허락 덕분이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에 당신의 집을 짓는 일을 나에게 맡기셨다.'면서 유배자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이스라엘 하느님의 집을 지으라고 명령한다.
이집트에서의 해방과 달리, 바빌론에서의 해방은 밑에서부터의 움직임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온 너그러움이었다. 키루스 임금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모든 형태의 노예제와 강제노동을 없애고 노동에 동원된 사람에게는 반드시 임금을 지급하는 등 세계 최초 인권선언문을 남긴 왕이라고 한다. 오! 페르시아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 성전을 짓고 있을 때 이민족들이 다가와 자기들도 하느님을 섬겨왔다면서 성전을 함께 짓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의 일이라며 거절한다. 그 이후 그들은 성전을 짓는 걸 계속 방해한다. 성경에는 그들의 의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을 '유다와 벤야민의 적들'이라고 하며, 의도가 어찌되었듯 성전짓기를 방해한 결론만으로 그들을 나쁜 쪽으로 무리지어 버린다.
키루스 이후의 통치자들이 성전 짓기를 계속 방해하자 유대인들은 키루스의 문서를 확인하라고 요청한다. 그리하여 다리우스 임금이 키루스 칙력을 문서고에서 확인하고 성전 짓기를 다시 후원하기 시작한다.
이 시대의 율법학자인 에즈라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임금의 칙령을 받고 유다와 예루살렘의 상황을 살피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진귀한 예물을 무사히 가지고 올라가 하느님의 집 사제들에게 넘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민족들과 혼인한 것을 한탄하며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슬퍼한다. 그는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뜻에 따르면서 이민족 여성과 그들에게서 난 자식들을 떠나보내라고 말한다. 이 때 반대한 몇명의 이름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신들의 민족적 순수성을 위해서 하느님을 섬기던 이들이 함께 성전을 짓자는 것을 내치는 배타성과 가족처럼 살고 있던 이들을 저버리라는 잔인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을 엮어버리는 믿음이 무섭고 안타까웠다.
0112 [느헤미야기]
에즈라기와 같은 시기의 이야기, 유다백성들이 유배를 끝내고 돌아온 이후 이야기이다.
페르시아의 임금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헌작 시종(포도주를 고르고 맛보는 시종)이었던 느헤미야는 임금이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느헤미야가 고향으로 돌아간 유다백성들의 힘든 소식들을 듣고 우울해하는데 임금이 이를 알아보고 무슨 일인지 묻는다. 도성을 다시 세울 수 있게 자신을 보내달라는 느헤미야의 청을 듣고 아르타크세르크스세스는 그를 유다의 지방관으로 보낸다. 임금과 느헤미야 사이의 믿음이 진정 두터웠던 것 같다.
느헤미야는 각종 조롱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을 불러모아 성벽을 재건한다. 그 과정에서 유다인들 사이의 불의에 개입해 정돈하고 귀환자들의 수를 헤아리며 성문을 지킬 사람들을 세우는 등 역할을 나눠주고 각 고을에 살 후손들을 정한다. 지방관으로서의 이 역할을 녹을 받지 않은 채 수행한다. 그 후 율법학자 에즈라가 사람들에게 율법을 봉독하고 함께 참회 기도를 드리며 다시금 하느님과 맹약을 맺고 서명한다.
그 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임금을 만나러 갔다 와서 하느님의 집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것에 분노하며 백성들을 꾸짖고 다시금 정돈한다. 유배 이후 다시 고향을 세우는 시기에 두 인물, 율법학자 에즈라와 지방관 느헤미야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