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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 상하] 하느님의 말씀을 섬기고 거역하며 겪는 역사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

[열왕기 상하] 하느님의 말씀을 섬기고 거역하며 겪는 역사

고래의노래 2021. 8. 3. 11:15

* [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는 가톨릭, 불교, 비신자 등 다양한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 3명이 모여 '성경'과 '여성을 위한 성서주석'을 온라인으로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속도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느낌과 생각, 깨달음과 질문들을 각자의 블로그에 남기고 톡과 밴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임금 이래 민족들은 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뉘어진다. 열왕기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말씀을 섬기고 거역하며 겪는 역사를 보여준다. 아시리아, 하람, 바빌론 등 주변국들과 협정을 맺거나 싸우고 함락당하고 차지하는 이야기들이다. 민족들간의 교류가 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면서 민족의 고유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장 애용된 협정의 방법이었던 국가간 왕족의 결혼은 이민족 문화가 서로에게 스밀 수 밖에 없는 토대가 되었다. 유대민족은 끊임없이 토착 신앙과의 힘겨루기를 했으며, 이를 성경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과 거역하는 것으로 나누고 이어지는 흥망성쇠와 연결지었다. 이것을 누군가는 고대 신앙들의 기괴한 인습을 유대교 신앙이 '문명화'하는 과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이를 재물로 바치거나 성교를 통한 신전 의식 등이 바로잡아지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요아스와 요시야 임금이 다시 성전을 바로 세우고 헌금을 제대로 걷어 그 쓰임과정을 살피며 다시 하느님과 민족들간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는 과정을 보면 그 의견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노여움을 풀지 않으셨고 이스라엘과 유다는 함락되고 백성들은 흩어진다. 인간 임금을 세운 결과는 이렇게 비참하게 결말을 맞는다. 이제 다시 방랑의 시기가 찾아온다.

[열왕기 상]

- 0524 열왕기상 4장까지
다윗이 노쇠해져 왕위를 누가 이을지에 대한 각자의 욕망들이 불꽃튀게 된다. 아도니야는 자기의 무리를 이끌고 스스로왕을 선언하나 밧 세바와 나탄 사제가 다윗에게 간청하여 다윗은 솔로몬을 다음 왕으로 정한다. 아도니야와 솔로몬 사이의 긴장은 아도니야의 당당한 위세에 비해서는 싱겁게 흘러간다. 솔로몬은 아도니야 무리를 처단하고 다윗의 당부로 다윗 시대의 복수도 감행한다. 사무엘기에서 요압 장군은 다윗 몰래 적의 장수들을 처단하는데, 이에 대해 다윗의 책임이 없음을 요압을 죽임으로서 확실히 한다. (스리슬쩍 넘어가나 했는데, 콕 집어내서 놀랐다. 집요하다..) 왕위계승시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들, 전형적인 '라인 청소'와 평화협정을 위한 나라간 결혼이 이어진다.
솔로몬의 유명한 일화들, 꿈을 통해 하느님께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청하는 것과 아이 엄마를 판별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 유명한 재판에서 엄마들이 창녀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 0531 열왕기상 8장까지
솔로몬은 나라를 번성하게하게 주변국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태평성대를 이룬다. 그리고 자신의 궁전과 주님의 성전을 짓는다. 사자, 황소, 석류, 커룹 등 이 건물들은 지금의 성당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와 상징물들로 가득했다. 이 지역의 고대신앙 상징들이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성전을 봉헌하며 하느님께 이 곳에 머물러 자신들의 청을 들어주고 복되게 해달라 간청한다. 인상적이었던 건 아래처럼 솔로몬이 청하는 부분이었다.
"죄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그러나 목숨을 다하여 회개하고...당신을 위해 지은 이 집을 향해서 기도하면...그들을 돌보아주십시오."
게다가 그는 민족주의를 넘어선 박애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방인이라도 그가 당신 이름때문에 먼 고자메서 찾아오거든, 당신께 호소하는 것은 무엇이나 이루어 주십시오. 그렇게하면 이 세상 모든 민족들이...당신을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들은 모두 죄에 취약하다는 자기성찰과 하느님은 민족을 넘어 이를 애처로워하신다는 것은 신약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뿌리로 보인다.

- 0601 열왕기상 12장까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성별하시며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다른 신을 섬기지말고 믿음을 굳건히 할 것을 다짐받는다. 그러면서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도 이스라엘을 보살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솔로몬이 다스리는 동안 이스라엘은 부가 축적되고 번성한다. 특히 티로 임금 히람과의 거래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히람이 바친 공물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땅을 제공하여 히람이 “당신이 나에게 준 성읍들이 이게 뭡니까?”라며 불평하는장면이 나오는데 조금 웃겼다. ㅋㅋㅋ
주변국들과의 거래를 확장하며 솔로몬은 여러 다른 민족의 부인들을 거느리게 되고 이들로 인해 하느님에 대한 신심이 흔들린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의 아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찢어내어 한 지파만 남기고 빼앗겠다고 말씀하신다. 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하브암이 왕이 되었을 때 예로보암이 반기를 들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주님의 집 대신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재앙의 발단이 된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방식으로 다른 이를 섬길 때 마음을 얻을 수 있는데, 힘이 늘어나면 힘으로 다른 이를 억눌러 복종하게 하는 폐단이 이어진다. 흔들리는 믿음과 그로 인한 파멸, 다시 되돌아온 신심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패턴 또한 다시 반복된다.
다른 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다른 민족 또한 하느님의 축복을 청할 수 있다고 한 솔로몬의 그 마음이 ‘주님만을 섬기라’는 중심을 벗어나지 않은 채 유지되려면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내면의 중심에 흔들림이 없으면서 밖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갖는 태도와도 연결되면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 0602 열왕기상 16장까지
유다와 이스라엘로 갈린 유대인들은 하느님께 신실하지 않은 죄로 대대손손 힘든 시기를 보낸다. 특히나 이스라엘은 권력다툼으로 임금이 바뀌며 불안정한 시대를 지나게된다. 사람을 임금으로 섬기면 일어나는 폐단들이 줄지어 일어난다.

- 0608 열왕기상 22장까지
솔로몬이 죽고 이스라엘과 유다로 나뉜 민족들은 하느님을 등지는 시대를 보낸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은 배척당하는데, 그 중 엘리야의 에피소드들은 죽은 이를 살리고, 불과 비를 부르는 등 놀라운 기적들을 보여준다. 마지막에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연합하여 랑못 길앗을 되찾으려 싸우러 가지만 미카야의 패전 예언을 무시했다가 아합은 죽게된다.
예언자들의 말에 귀기울이지않는 세상, 예언자들의 예언이 지닌 힘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러 에피소드가 나오지만, "나를 때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거역했다고 사자를 만나 죽는건..어이가 없었다. 맥락이 있는 예언이어야지, 저렇게 밑도 끝도없는 폭력을 주님의 말씀이라고 따르라니. 맹신과 신심의 차이는 뭘까.

[열왕기 하]

- 0611 열왕기하 8장까지
예언자 엘라야가 하늘로 들어올려지고(말 그대로!) 엘리사는 그 뒤를 이어 '하느님의 사람'이 된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기적을 일으켰다. 물과 음식을 정화하고, 가난한 과부의 기름병을 가득차게 하며 수넴 여인이 아들을 임신하게 된다. 보리빵 스무개로 백명을 먹이고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주었다. 죽은 아이를 살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기적들은 하느님의 힘에 대한 증거로 여겨지는데, 신약의 예수님 기적과 비슷한 내용이 많아 놀랐다. 깨끗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고...살린다. 신약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실 때마다 "당신은 예언자시군요!"라고 했던 이유가 이건가보다.
판관들도 예언자였고 모세도 예언자였지만 엘리야,엘리사에 이르러서는 예언자의 권위가 달라진다. 모세가 하느님의 기적을 예언하고, 판관들은 말씀전달자, 하느님의 지혜로 판단하는 자였다면 엘리야, 엘리사에게는 인간 이상의 신비함이 덧붙여진다. 그런데 이 힘을 엘리사는 사사로이 사용하기도 한다. 자신을 대머리라고 놀리는 아이들을 주님 이름으로 저주하여 죽게 만든 것이다. 엘리사가 주님권위의 대리자라고 하기엔 너무 과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즈음 이스라엘과 유다는 왕족끼리의 결혼으로 유대관계를 맺기도하고 다른 나라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연합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주님을 믿지 않고 예언자들을 핍박하였다.

- 0617 열왕기하 12장까지
타락한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시 주심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겪는 '주님이 허락한' 반역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엘리사는 제자로 하여금 예후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우라고 시킨다. 예후는 이스라엘 임금 요람과 유다임금 아하즈야를 죽이고 이스라엘 왕족들, 즉 일흔명의 왕자를 포함하여 아합집안 모두와 유다임금 아하즈야의 형제들을 다 죽인다. 예후는 바알숭배자들을 성대한 제사를 치르자며 한 자리에 모이게하고 모두 처단한다.
놀라운 것은 아하즈야의 어머니 아탈야가 다른 왕족들을 다 죽이고 자신이 왕에 오른 것이다. 아하즈야의 아들 요아스가 몰래 숨겨졌다가 혈통을 중시하는 자들에 의해 기습적으로 주님의 집에서 임금으로 추대되고 아탈야는 죽임을 당한다. 성경에 이런 인물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권력을 잡기 위해 혈육도 가차없이 쳐버리는 여성 인물이라니! 미실이 떠오른다.
이 기습반역의 중심 인물이었던 여호야다 사제는 주님과 임금, 백성들 사이에 다시 계약을 맺게 하고 바알 제단을 부수고 사제를 처단한다. 요아스는 주님의 집에 들어오는 헌금이 사제들에 의해 제대로 사용되지 않자, 사제들이 헌금을 받게 하지 많고 따로 헌금궤를 마련한다. 그리하여 주님의 집을 수리하는데 헌금을 사용한다. 정직하고 건실한 사람들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 같다. 아람 임금의 공격에 맞서지 않고 예물을 주어 돌려보낸 일화로도 보이듯 그는 지켜야하는 가치를 위해 재물을 사용할 줄 알았고, 재물에 지배되지 않은 임금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신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니 무슨 일이었을까 궁금하다.

- 0618 열왕기하 15장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의 임금들 연대기가 이어진다. 그 사이 엘리사가 죽는데, 그의 뼈는 죽은 이를 살리는 기적을 일으킨다. 확실히 신약의 예수님과 대응되는 이야기가 많은 예언자다. 그 뒤로 이스라엘은 계속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일삼고, 유다는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였으나 신당을 없애지않아 백성들의 의례들이 계속 된다.
이 패턴이 쭉~ 이어지는데, 왠지 이 뒤로 계속 그럴 것 같아서 이거 결론이 어찌나려는지 궁금해지네.

- 0621 열왕기하 18장까지
이스라엘은 호세아 임금 때 아시리아에 함락되었다. 이스라엘은 사마리아에서 아시리아로 유배를 떠나게되고, 사마리아에는 이방인들이 이주하게 된다. 주님을 섬기지 않아 사자가 사람들을 죽이니 이스라엘 사제를 다시 불러다 주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친다. 하지만 민족관습의 신도 함께 섬긴다.
이 당시 유다임금은 하즈키야였고 주님의 눈에 드는 인물이었다. 이스라엘을 삼킨 아시리아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 성벽앞에서 유다의 대신, 서기관 기록관과 마주하는데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너희는 우리에게 대적할 수 없으니 항복하라.' '너희가 믿는 주님께서 이 곳을 멸망시키라 했다.'는 말을 하는 아시리아 장군에게 유다쪽 신하들이 "백성들이 듣고 있으니 유다말로 하지 말아달라."고 청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백성을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은 그들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시리아 장군은 오히려 유다백성들에게 하즈키야가 '주님께서 우리를 구해내신다.'는 말을 해도 믿지 말라며 아시리아로 넘어온다면 '빵과 꿀이 나는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소리친다.
하느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한 유다임금 하즈키야 아래 유다의 운명은 어찌 될지 흥미진진하다.

- 0621 시편 5~8장
오! 그 유명한 구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보잘 것 없는 인간과 무한 자애의 신에 대한 구절로 많이 이야기되지만 지금의 나는 신에게 인간이 필요했던 이유에 집중하고 있다. 그 필요가 인간의 존재 이유이며 그것은 엄청난 특별함인 동시에 막중한 책임이기도 한...그리고 인간으로 인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신의 부족함이기도 하다..

- 0630 열왕기하 25장까지
유다는 아시리아에 위협당하고 히즈키야임금은 예언자 이사야에게 주님의 말씀을 묻는다. 주님은 도성을 보호할꺼라 하셨고 그날밤 주님의 천사가 아시리아 진영의 군대를 쳐 모두 죽게 된다. 이 이야기는 뒤의 역대기에 더 자세히 나오는 것같다.
하즈키야가 병들었을 때 바빌론의 사절단이 오는데 하지키야는 이들을 맞아 궁궐 안의 모든 것들을 보여준다. 이에 이사야 예언자는 궁궐 안의 모든 것들과 백성들이 바빌론으로 옮겨질 것이라 예언한다. 히즈키야는 그 예언을 듣고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히즈키야는 나라에 저수지와 수로 등 치수행정의 기반을 닦은 임금인 것 같다. 뒤를 이은 므나쎄나와 아몬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이어가 주님의 분노를 돋운다.
요시야 임금은 주님을 올바로 섬기겨 많은 것들을 원래 자리로 되돌린다. 이교도 제단을 허물고 사제들을 쫒아냈으며 주님의 집에서 율법서를 발견하고 이를 백성들에게 들려주며 주님과 다시 계약을 맺고 파스카를 지내게한다. 그야말로 종교개혁을 시행했으니 "요시야처럼 모세의 모든 율법에 따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온 임금은, 그 앞에도 없었고 그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았다."(2열왕 23:25)
여호아하즈가 뒤를 이으나 다시 악한 짓들을 저지른다. 그는 이집트 왕에게 붙잡히고 그 아들이 여호아킴으로 이름을 바꾸어 이집트에 의해 임금으로 세워진다. 여호아킴 시대에 바빌론이 이집트의 점령지들을 차지하게된다. 이어진 여호야킨임금 때에는 바빌론에 공격당하고 이사야 예선자의 말처럼 주님의 집에 있는 모든 기물을 가져간다. 여호야킨은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치드키야가 바빌론에 의해 임금으로 세워진다. 이 때 치드키야가 바빌론에 반역을 꾀하다 처단되고 성전은 처참히 파괴된다. 그리고 유다 백성은 유배를 갔다. 그달야가 남겨진 유다백성들의 총독으로 임명되나 왕족출신 이스마엘에게 살해된다.


이렇게 해서 유다와 이스라엘 모두 함락되고 성전은 무너졌으며 백성들은 흩어진다. 신심깊은 요시야의 종교개혁도 주님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 이어지는 구약은 역대 왕들의 행적기록과 왕들의 주님 찬양노래, 예언자들의 예언서들로 이어진다. 이스라엘 역사기록은 끝인 것 같은데,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신약의 로마시대까지 이어지는 거 아닐까싶다. 역사 속에서 주님을 섬기다가 등돌리는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하느님의 나라가 하늘에서가 아니라 땅에서 이뤄지는 것은 지향일 수 밖에 없는 걸까? 휘청거리더라도 그 곳을 향해 나선형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 진리의 법칙은 시간을 신뢰할 때야 인식되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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