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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 상하] 목줄을 당겨줄 주인을 찾는 나약함, 인간 임금의 탄생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

[사무엘기 상하] 목줄을 당겨줄 주인을 찾는 나약함, 인간 임금의 탄생

고래의노래 2021. 5. 6. 11:11

* [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는 가톨릭, 불교, 비신자 등 다양한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 3명이 모여 '성경'과 '여성을 위한 성서주석'을 온라인으로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속도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느낌과 생각, 깨달음과 질문들을 각자의 블로그에 남기고 톡과 밴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인간 임금이 추대되고, 권력이 한 사람과 가문에 집중되기 시작한다. 남성으로 이어지는 가부장적 권력 관계가 공고해지는 시기이다. <여성들을 위한 성서주석>에서는 사무엘기가 그 당시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고 이야기한다. 여성 등장인물이 주요하게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많기 때문이다. 공적 위치에서 간간히 등장하던 여성들이 사라지고 여사제는 여자 무당이 되어 주변부로 물러난다. 여성은 여전히 아들을 낳음으로서만이 역할과 위치가 탄탄해지며, 민족 간의 화해와 중재의 수단으로(권력의 유지와 조정의 수단) 결혼이 이용되면서 여성은 이제 공적인 대상이 된다.
이전의 성경 부분에서 외부의 힘에 이리저리 휘두리고 가차없이 수단화되는 여성들의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아서인지, 사무엘기를 읽으면서는 오히려 그 부분에는 집중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이 섬기는 힘이 보이지 않는 신성함에서 보이는 인물로 변하는 시대적 과정과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치밀한 권력정당화의 모습들에 눈길이 갔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나타나는 인간 임금의 한계와 나약함, 사람들 사이의 오묘한 관계성까지...바깥으로 돌렸던 권위를 다시 내 안으로 돌리기까지 이제 20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언제까지 이어질까...

[사무엘기 상]

- 0309 사무엘상 6장까지
'각자가 하고 싶던대로 살았던' 시대를 통과하며 사무엘이라는 지도자가 태어난다. 영웅서사가 그렇듯이 어렵고도 신비롭게 하느님의 힘으로 잉태되어 하느님께 바쳐지는 사무엘.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안인들과의 싸움에서 지고 하느님의 궤까지 빼앗기며 혼란의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근데 필리스티안인들이 하느님의 궤를 돌려줄 때 이를 받아낸 벳 세메스인들은 부락사람들이 많이 죽는 시련을 겪는다. 궤를 보았다는 이유라는데...이스라엘에게서 하느님의 신성함과 위엄을 되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 0312 사무엘상 12장까지
불안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잠식하여 하느님이 아니라 눈 앞의 임금을 원하게 한다. 아비멜렉이 임금이었던 시대를 잊고, 목줄로 스스로를 결박하고 그 줄을 당겨줄 주인을 찾는 나약함.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답'을 찾으려하고 '혼돈'을 참지못하는 시대.

- 0316 사무엘상 19장까지
"나는 사울을 임금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다."
후회하는 하느님이라니. 구약의 하느님은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번엔 자신의 선택까지 후회한다. 신이라기보다 '인간적'이며 임금의 모습처럼 보인다.

- 0319 사무엘상 26장까지
유명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동굴에서 뒤를 보는 사울을 그냥 보내주는 다윗. 요나탄과 다윗의 믿음의 맹세.
그 중 눈에 들어온 단어는 '분별력'이었다. 다윗을 무시한 남편 대신 다윗에게 먹을 것을 바치며 용서를 구하는 아비가엘에게 다윗이 한 말.
'그대와 그대 분별력에 축복을 드리오.'
이건 다윗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고 느껴졌다.

하느님에 의해 임금이 추대되었으니 그 권력을 내치는 것 또한 하느님에 의해서라는 증거가 필요했던 듯 하다.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루어지는 정당한(운명에 의한, 즉 하느님에 의한)정권교체를 향한 인간들의 노력이 다윗의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분별력은 그 정당성을 향해, 인간의 뜻과 하느님의 뜻을 구별해 깨닫는 것이다.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삶의 소명이 무엇인가?'라는 영원한 질문 앞에서 꼭 필요한 능력.

[사무엘기 하]

- 0401 사무엘하 3장까지
다윗은 사울을 피해 필리스티안으로 망명하고 그 곳 임금을 위해 싸운다. 이스라엘과의 전투에도
나서려했으나 필리스티안 제후들의 반대로 참여하지 못한다. 사울이 전쟁 중에 죽고 사울의 부탁으로 그를 마지막으로 찌른 자가 자백해오자 '기름부음 받은 자'를 죽였다며 그를 처단한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갈라지는데, 이스라엘의 장수 아브네르는 사울의 후궁을 건드린 것에 대해 추궁받자 이스라엘을 배신하고 다윗의 편에 선다. 아브네르가 자신을 만나러 왔다가 요압의 손에 죽자, 자신은 죄가 없다며 단식한다.

사무엘기에서 다윗의 행동은 일관되 보이면서도 모순되는데, 특정인물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속한 그룹과 싸우는 것에는 거침이 없다. 그들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없음을 계속 강조하는데 이것때문에 오히려 그가 철저히 계산적이라고 느껴진다.

사울의 딸이며 다윗의 아내였던 미칼이 인상적이다. 미칼은 다윗을 사랑했고 사울은 이를 다윗을 처리하는데 이용하려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성경 속에서 여성이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이야기가 명확하게 드러난 첫 인물이 아닌가싶다. 다윗이 도망친 후에는 다른 남자랑 결혼하게 되는데, 다윗이 아브네르의 진심에 대한 증거로 미칼을 데려오라고 해서 남편과 헤어지게 된다. 미칼이 가는동안 남편이 울면서 따라왔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 시대의 여성들이 그러했듯 재산처럼 다뤄지며 남자들 사이의 거래대상이 되지만 어느 곳, 어느 상황에서든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행복을 찾아간 여인이 아닐까싶다,

- 0408 사무엘하 10장까지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은 레캅과 바아나 손에 죽고, 다윗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서 들어올려져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었다. 10장까지의 이야기는 다윗이 주님의 돌봄으로 주변을 정복하고 세를 확장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이 과정의 여러 에피소드에서는 다윗의 단순하고 순수한 성정이 잘 드러난다.
주님의 궤를 다윗의 성으로 옮기는 중에 덜컹거리는 주님궤를 손으로 잡았다는 이유로 우짜가 죽는다. 예전에도 주님의 궤를 적들에게서 되찾아 모셨을 때 그 지역민들이 죽었던 내용이 나왔었는데, 악한 마음이 없는 불경함에 내리꽂히는 맥락없는 저주가 참 어이가 없었었다. 그런데 다윗도 "이래서야 어떻게 주님의 궤를 내가 있는 곳으로 옮겨갈 수 있겠는가?"라며 화를 냈다고 나온다. 성경에서 내 마음같은 구절을 만나면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뒤 잠시 주님의 궤를 모신 사람 집안이 복이 내리자, 다윗은 하느님의 '맥락없는 저주'가 사라졌음에 기뻐하며 궤를 성으로 옮긴다. 그는 너무 기뻐 뛰며 춤추었는데, 품위없었다며 비웃는 미칼에게 '나는 더 천하게 될 것이나 존경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받아친다.
게다가 그는 요나탄의 아들에게 사울의 재산을 되돌려주고 사람들이 그를 귀히 대하도록 한다.
다윗이 겉치레, 형식, 개인적 원한 등에 얽메이지 않고 행동의 중심에 주님을 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 0420 사무엘하 24장까지
다윗이 임금이 되고 전성기를 누리다 타락하여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와의 하룻밤을 보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우리야를 어려운 전장에 내보내 죽인 일, 암논이 누이 타마르에게 못된 짓을 한 것을 알았으면서도 눈감은 일 등을 거치며 주님의 노여움을 산다. 그 일로 타마르의 오빠인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고 도망다니다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지만 다윗과 사이를 풀지 못하고 등을 져 반란을 일으킨다.
압살롬은 전장에서 향엽나무에 머리가 엉켜 매달려있다가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는데, 이 과정에서 결정적 포인트마다 현실적인 직언을 내리는 것은 요압 장군이다. 다윗이 반란군의 진압보다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자 요압은 이에 화를 내며 임금으로서 해야할 행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다윗의 세력이 꺾였을 때 조롱하고 무시했던 사울의 혈육과 다시 화해하는 과정이 이어지고 그러다 기근이 이어지자 결국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사울의 후손을 상징적으로 처단한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다윗은 성정이 착하고 신의를 중요시하며 매우 유약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그런 사람인만큼 옆에서 그를 도와주는 사람도 많았으며 그래서 그의 지도자로서의 빈 틈이 채워진다. 인간을 임금으로 세웠을 때 국민이 겪을 억압에 대해 앞서 경고되었지만 아직까지 보여지는 것은 임금이 얼마나 '한낱 인간'인가 하는 부분이다.
그런 것들을 깨닫고 내가 포기했던 내 자리를 다시 찾는 것. 그것이 성경의 주요 스토리 줄기가 아닐까 싶다. 나와 일치된, 또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던 귄위가 바깥으로 빠져나와 집약되면서 벌어지는 폐해들을 거쳐 인간은 다시 주님과의 화해, 연결로 나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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