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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기] 해방이라는 죽음과 자유로의 재탄생 그리고 페미니즘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

[탈출기] 해방이라는 죽음과 자유로의 재탄생 그리고 페미니즘

고래의노래 2020. 3. 14. 09:14

"탈출기(출애굽기) 이야기는 대가족에서 국가로 변형되어 갔듯이, 무능력함으로부터 자기 결정으로 옮겨가는 백성들의 이동과 관련이 있다." _ <여성을 위한 성서주석>

 

 위 구절처럼 탈출기는 저에게 인간집단이 조직화되어 가는 과정과 피억압자의 해방과 자유를 향한 여정, 이렇게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읽혔습니다. 그것은 모세의 성장과도 연결되어 있는 듯 했어요.

 탈출기에서는 40이라는 숫자가 반복됩니다. 모세가 40살에 이집트인을 죽이고 달아났고, 80살에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이집트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탈출 이후에 40년간 광야를 떠돌게 되구요. 이 숫자는 성경의 다른 부분들에서도 유의미하게 반복됩니다. (노아의 홍수 때 40일간 내린 비, 예수님의 40일 기도 등) 4라는 숫자가 고대로부터 완전성을 상징하는 숫자로 여겨졌다고 하던데, 4가 10번 반복된 것은 완전에 완전을 더한 더블 퍼펙트의 의미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모세의 장인 이트로와 집단의 조직화

 

 탈출한 히브리인들이 조직 체계를 세우는 것은 모세의 장인, 이트로의 공입니다. 이 인물이 저에게는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이트로는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도망온 모세의 성품을 알아보고 자신의 딸과 결혼시킵니다. 미디안의 사제인 이트로는 초반에는 르우엘이라는 이름으로도 쓰여져 있는데, 이트로는 아마도 제사장으로서의 호칭이었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고 하네요. 40년 동안 함께 했던 사위가 하느님의 계시로 갑자기 동족을 구하러 다시 이집트로 가야한다고 하자, 그는 딱 한마디만 합니다.
"평안히 가게" (4:18)
아아..정말 기대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곱의 장인이 야곱이 약속한 7년 이후에 떠나겠다고 하자 어떻게 했는지와 비교하면 이트로가 어떤 사람인지 더 확실히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트로는 광야로 떠난 모세의 소식을 듣고 딸과 손주들을 데리고 모세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모세가 겪은 모든 일들, 하느님께서 하신 일들을 듣고 함께 기뻐하면서 '이제 나는 주님께서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다는 것을 알았네.'라고 이야기해요. 미디안의 사제인 이트로는 히브리인들과는 다른 신을 섬기는 이방인이었다고 저는 이해했어요. 미디안에서 가족과 함께 살 때 아내가 아들을 낳자 모세는 "내가 낯선 땅에서 이방인이 되었구나"라고 말했다고 하잖아요. 만약 그가 다른 신을 섬기는 사제가 맞다면, 이방인 남자를 흔쾌히 부족 안으로 받아들인 것과 그가 자신의 종족과 신을 위해 한 일들에 진심으로 기뻐한 것, 게다가 그 신의 절대적 위대함을 인정하고 찬양한 것은 그가 얼마나 열린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매우 총명하기도 했습니다. 모세의 하루하루를 옆에서 지켜보고 나서 그는 모세에게 조언하지요.
"자네가 일하는 방식은 좋지 않네. 자네뿐만 아니라 자네가 거느린 백성도 아주 지쳐 버리고 말 걸세." (18:17,18)
그러면서 모세는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서 규정과 지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유능하고 진실한 사람들을 뽑아 관리인으로 세우라고 말합니다. 중간관리자 방식을 도입하라는 조언이었죠. 모세가 그렇게 조직화한 모습을 본 후 이트로는 자기 고장으로 돌아갑니다. 올바른 조언 후에 자신의 역할을 고집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또 홀연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초연함이 너무 멋져보였어요. ^^

 

 

- 모세의 성장

 

 모세는 멋진 조언자들 사이에서 성장해나갑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집트라는 거대한 조직사회에서의 경험과 미디안이라는 황야에서의 경험이 그를 히브리인들의 탈출을 이끌 적임자로 만듭니다. 광야에서의 40년 떠돌이 생활을 견디면서 조직사회를 이루도록 이끄는 거지요. 모세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매우 불안해하며 하느님에게 "이러면 어쩌죠? 저러면요?"하며 아이같이 의지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라는 부분에서는 감정이입되서 반갑기까지 했어요. 하느님의 대리자, 위대한 첫번째 지도자인 모세가 저렇게 자기확신없이 일일이 증거와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매달리는 사람이었다니요. 광야에서 마실 물과 먹을 것이 없어 한탄하며 모세에게 항의하는 히브리인들을 보고 불안에 떨며 하느님께 불평하는 모습도 너무 인간적이었습니다.

 

 

- 무능력함에서 자기 결정으로

 

 모세의 성장은 히브리인들의 집단 성장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들이 인생에서 한번쯤은 경험하는 고비들이죠. '내 선택이 맞는 것일까? 역시 아니었어. 다른 길로 가야했어. 아아 어쩌자고 나는 이 길을 택했나.'로 줄줄이 이어지는 한탄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요. 이집트로부터의 탈출이 '누군가로부터의 이끌림'이 아닌 '그들의 선택'이 되기 위해서 히브리인들은 하느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하느님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누군가'로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합일'을 의미했습니다. 나에 대한 믿음이 곧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고 온전히 내맡긴다는 것이 온전히 의지한다는 것과는 다른 뜻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과정은 해방으로부터 자유로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해방에서 자유로

 

"자유는 단순히 억압적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거나 그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라, 성스러운 목적을 향한 긍정적 움직임이다. 탈출기는 해방을 죽음과 재탄생, 슬픔과 기쁨, 파괴와 창조를 수반하는 과정으로 그리고 있다."_<여성을 위한 성서주석>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은 히브리인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고난과 억압이라는 일상으로부터의 분리가 그들을 막막하게 하지요. 아무 것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정의내리던 틀을 벗어나자 나를 스스로 정의내려야 하는 과제가 주어집니다. 고달픈 자유입니다. 탈출기는 인간이 스스로를 믿어가는 과정에 대한, 그렇게 틀을 깬 해방을 넘어 자유로 가는 과정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 탈출기 그리고 페미니즘

 

 해방이후에는 자유로의 재탄생이 이루어집니다. 페미니즘이 나아가는 방향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의 초기 의미는 '여성해방'이었고 제도적, 사회적, 사상적 해방 과정 속에서 여성들은 스스로를 정의내리고자 언어의 힘을 기르고 있습니다.
탈출기에는 '여성의 창조력'에 대한 상징적인 은유들이 가득하지만 율법 부분에 이르면 삐그덕거리기 시작해서, 하느님과 연결되는 제의 부분에서는 여성 혐오의 냄새를 풍깁니다.

 

<Bible Guide>_생활성서사

 

"이집트에서 감금되었던 백성들의 탈출은 출산이라는 극적 이미지 - 바닷물을 가르는 것 - 를 통해 나타난다."

 탈출기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인 '모세의 갈라지는 바닷물 기적'은 막상 성경에서 직접 확인하고 보니 생각과 달랐습니다. 마법같은 일로 묘사되기 보다는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한 것이라는 게 딱 이해될만큼의 설명이었다고 생각했어요. '밤새도록' 바람이 불어 바닷길이 내어진 것과 뒤이어 새벽녘에 다시 물길이 돌아온 시차만 보더라도 그것이 한순간의 갑작스런 폭풍같은 전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갈라지는 바닷물을 건너 탈출하는 것과 출산의 이미지가 정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홍해를 그 장소로 알고 있었는데, 성경해설서를 보니, 그 곳이 나일강 삼각주의 습지대라고 하네요. 조수간만의 차이가 드러나보이는 지역인 것이죠. 가나안으로 가는 빠른 길인 바닷가 길로 향하려다 저 습지대를 통과하며 파라오 군대를 따돌리고 그대로 전진해서 광야를 돌아돌아 가는 여정이 시작된 거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엘 사다이, 야훼 두 이름의 동일한 어근은 '가슴'. 이는 초기 이스라엘인들이 신을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의 이미지로 이해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출산, 생리, 성행위, 시체를 살피는 것과 같은 제의적 부정을 몰고 오는 행위나 상태는 모두 삶과 죽음의 관계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하며, 이것의 본질은 바로 신적 힘이다. 이것은 성스러운 것과 접촉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제의적 정결 체계는 인간적 통제와 신적 통제의 영역 사이를 구분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인류 문명 초기의 신성은 양성적이거나 오히려 여신에 가깝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희생제물의 피는 신성하게 여기면서 월경혈을 부정하게 바라보는 것은 분명 어떤 '구분'에서 온 것이겠지요. 지금도 부탄에서는 월경하는 여자를 불결한 헛간에 가두는 악습이 있습니다. 헛간에서 여성들은 감염으로 죽거나 성폭행의 위협에 시달립니다. 생명창조와 연결된 월경 현상과 생명, 희열과 연결되는 성관계는 분명 신의 영역에 포함된 일들입니다. 이는 신성하게 다뤄져야 했고 오히려 경배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구분이 가부장제의 등장과 함께 터부시로 변질된 것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출기가 페미니즘과 다시 연결되는 것은 율법의 약자보호 부분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전하는 세세한 율법 가운데에는 약자들을 특별히 살피고 억압하지 말라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과부와 고아, 이방인, 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요.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그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 (22:22)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이는 너희 소와 나귀가 쉬고, 너의 여종의 아들과 이방인이 숨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23:12)

특히나 안식일을 지키라는 내용은 여러번 반복되는데 많은 부분에서 하느님의 창조과정을 그 이유로 들지만, 23절 12절에서는 그것이 약자 보호를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약자, 소수자들을 위한 존중의 틀을 쌓고자 하는 것이 결국 페미니즘이 지향할 곳이라면 성경에서 혐오의 근거가 아니라 이런 보호의 근거를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 탈출기의 버퍼들

 

 오랜 시간 여러 저자들을 거쳐 쓰여진 성경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 하다가도 뚝뚝 끓어지는 곳이 발견됩니다. 탈출기에서도 몇 군데 눈에 띄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4장 24절에서 26절까지는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려다 모면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때 아내인 치포라가 아들을 할례시켜 위기를 넘기지요. 그 이전 절까지만 해도 하느님과 너무 친밀하게 앞으로의 계획을 나누던 모세인데, 갑자기 죽이려하다니요?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기 전 '이방인의 신세'에서 벗어나 아들의 할례를 통해 진짜 '히브리인'이 되어야 했던 걸까요? 할례는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걸까요? 성기라는 생명력에 한 번 피를 묻힘으로써 하느님에게 그 힘을 맡긴다는 뜻일까요? 왜 할례가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의 상징이 되었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설만 있어서 저도 생각만 더하게 됩니다.

 모세는 야곱 - 레위의 계보인데 32잘 25절에서는 레위인들이 모세의 명령으로 형제, 친구, 이웃을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 말씀을 어기고 금송아지 신상을 만든 것 때문에 모세가 화가 난 이후 일어난 일인데요, 매우 충격적인 장면인데 자세한 부연 설명없이 스윽 지나가는 것이 더 섬뜩한 느낌입니다. 탈출기 이야기가 자신을 이스라엔 백성이라고 여긴 히브리인 일부의 경험일 수도 있고, 이들의 권력이 후에 이를 일반적으로 기술한 것일 수 있다는 <여성을 위한 성서주석>의 해석이 연결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성경 안에서 존경할만한 인물들(이트로의 발견!!) 을 만나고,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탈출'이라는 사건을 페미니즘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어 탈출기는 매우 흥미진진했습니다. 다음 번에는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읽고 한번에 후기를 쓰겠습니다. 성경해설서들을 보니 이 부분을 묶어서 이야기한 곳이 많네요. 제가 다른 벗들의 읽기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방법도 되겠구요. ^^

 

* [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는 가톨릭, 불교, 비신자 등 다양한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 3명이 모여 '성경'과 '여성을 위한 성서주석'을 온라인으로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속도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느낌과 생각, 깨달음과 질문들을 각자의 블로그에 남기고 톡과 밴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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