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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빗기] 하느님을 따르는 소시민이 경험한 은총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

[토빗기] 하느님을 따르는 소시민이 경험한 은총

고래의노래 2022. 2. 3. 15:46

* [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는 가톨릭, 불교, 비신자 등 다양한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 3명이 모여 '성경'과 '여성을 위한 성서주석'을 온라인으로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속도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느낌과 생각, 깨달음과 질문들을 각자의 블로그에 남기고 톡과 밴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0203 [토빗기]

아, 이렇게 정다운 이야기라니. 토빗기는 이름조차도 생소해서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읽었던 구약 성경들 중 가장 따스한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하는 문체도 말랑말랑했다. 구체적인 대화나 장면들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서사들 사이에 긴장감이 적절하게 흐른다.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다. 민족의 선조, 부름받은 임금, 말씀을 전하는 예언가, 민족을 이끌고 질책하는 이들이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 토빗과 그의 아들 토비야가 이 성경의 주인공이다.

유배의 기간, 니네베에 사는 토빗은 하느님을 따르며 진리와 선행을 길을 걷는다. 본인이 자기 친척들과 달리 예로보암의 송아지 제단에 제물을 바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건 솔로몬 이후 유다와 이스라엘로 갈린 시절의 이야기이니...유배시절까지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그래서 토빗기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해서는 보통 신뢰하지 않는 편인 것 같다.

토빗은 어려운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산헤립 임금이 죽인 이스라엘 자손들의 시체를 수습해 묻어주었다. 이 일이 발각되 재산이 모두 몰수되고 토빗은 멀리 쫓겨난다. 그 후 임금이 바뀌고 임금 옆의 행정관으로 있던 친척의 도움으로 다시 니네베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이스라엘 백성의 시체를 수습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여느 때처럼 시체를 묻어주고 난 그 날 밤 토빗은 잠을 자다가 눈이 멀고 만다. 그리고 아내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기 시작한다. 어느 날 토빗은 품삯에 더해 아기염소를 선물로 받아온 아내를 오해해 싸우게 되고, 아내에게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듣는다.

"당신의 그 자선들로, 선행으로 얻은 게 뭐죠? 그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다들 알고 있어요!"

이 날 토빗은 이런 모욕 속에 사느니 차라리 죽임을 달라고 하느님께 애원한다.토빗은 임금 옆에서 일하던 때에 메디아의 가바엘에게 돈을 맡겨두었었다. 메디아에는 토빗의 사촌인 라구엘이 살았는데, 그의 딸 사라는 결혼하려던 7명의 남자들이 모두 죽는 불운을 겪고 있었다. 어느 날 여종이 사라에게 모진 말을 한다.

"당신 남편들을 죽이는 자는 바로 당신이에요..남편들이나 따라가시지."

이 날 밤 사라는 슬픔에 가득차 하느님께 간곡한 기도를 드린다. 둘의 기도가 하느님께 닿아 라파엘 천사가 파견된다. 토빗이 아들 토비야에게 메디아에 맡겨둔 돈을 찾아오라고 시키자 라파엘은 메디아까지 가는 길을 아는 가이드로서 토비야와 함께 길을 떠난다.

"그리하여 그 청년 토비야는 천사와 함께 길을 나섰다. 그 집 개도 청년을 따라 집을 나서서 그들과 함께 떠났다."

크리스티앙 보뱅이 지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라는 책에서는 토빗기의 이 구절을 인용하며 기쁘고 단순하게 저들을 따르는 개를 프라치스코라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개가 나오는 구절이란다. 마침 토빗기를 읽을 순서에 저 책을 읽게 되어 신기했다.

길을 가는 중에 라파엘은 티그리스강에서 튀어오른 물고기를 토비야에게 잡으라고 하고 쓸개, 염통과 간을 잘 챙기라고 당부한다. 메디아에 도착해서는 토빗의 친척 라구엘이 그 곳에 살고 있는데 딸 사라가 결혼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며 토비야만이 신랑이 될 자격이 있으니 결혼을 하라고 제안한다. 결혼식 날 죽은 일곱신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토비야는 두려워하지만 라파엘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라구엘은 그들은 환대하고 사라와의 결혼이 진행되지만, 신방으로 그들이 들어간 뒤에는 하인들과 함께 무덤을 판다. 불운이 멈출거라는 희망을 갖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토비야는 죽지 않는다. 라파엘의 조언대로 신방에 들어가 물고기 염통을 향 위에 올려놓았고 이 지독한 냄새를 맡은 악마가 멀리 달아나 버린 것이다. 아침이 되어 두 사람이 무사한 걸 확인한 후 라구엘은 성대한 혼인잔치를 벌인다.

14일간의 잔치 후 토비야는 가바엘에게 맡겨둔 돈과 라구엘의 재산 반을 들고 신부, 라파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그들 뒤에는 개도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눈에 물고기 쓸개를 올려 눈을 뜨게 한다.

"얘야, 네가 보이는구나, 내 눈에 빛인 네가!"

라파엘 천사는 그제야 자신의 정체를 그들에게 밝히며 토빗의 모든 선행의 순간에 하느님이 함께 하셨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날마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송하라고 전하며 올라간다. 이어지는 토빗의 찬가에는 나도 저절로 마음이 들썩였다. 이러한 서사 이후에 어찌 경탄과 찬양이 터져나오지 않겠는가!!!!

토빗은 아들에게 계속해서 하느님을 섬기고 선행을 이어가라고 유언을 남긴다.
"너희 자식들도 잘 타일러서 의로운 일을 하고 자선을 베풀게 하여라."
'잘 타이르라'는 말이 정말 현실적으로 들려서 정말 내 옆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토빗기는 히브리어본이 없는 문서였기에 개신교에서는 이를 성경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생생한 묘사덕분에 나에겐 구약성경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아들을 배웅하거나 축복할 때 아버지의 말 이후에는 항상 어머니의 말이 이어지는 것도 좋았다. 하느님께 직접 계시와 부름을 받는 임금들과 예언자들의 서사보다 이렇게 일개 소시민의 고난과 기쁨에 더 마음이 간다. 유딧기와 욥기에서도 비슷한 떨림을 느낄 수 있을까?
토비야와 천사를 따르는 개, 망설임없이 그들의 길을 기쁘게 동행하는 그 개에게서 프란치스코의 삶을 발견해낸 보뱅의 뜻을 잘 찾아내고 싶다. '보잘것없는 가운데 드러나는 빛'이라는 게 그런 삶일것 같다.
(토빗기는 가톨릭 성경에만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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