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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친절하게 다가와 핵심을 찌른다 : 예수님은 당신에게 누구이신가?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

[요한복음] 친절하게 다가와 핵심을 찌른다 : 예수님은 당신에게 누구이신가?

고래의노래 2023. 11. 21. 19:06

* [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는 가톨릭, 개신교, 불교, 비신자 등 다양한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 4명이 모여 성경을 온라인으로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속도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느낌과 생각, 깨달음과 질문들을 각자의 블로그에 남기고 톡과 밴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매우 특별한 복음이다. 앞의 세 복음, 마태복음, 마르코복음, 루카복음은 공관복음이라 하여 거의 비슷한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많은 뿐더러 그 서술 방식이 굉장히 상징적이다. 문체는 물론이고 그 특별한 내용때문에 요한복음은 가장 '여성적인 복음'이라고 불려지는데 '여성적'이라는 단어 안에는 수많은 해석이 존재할 수 있기에 직접 내가 '요한복음은 여성적'이라고 느끼기 전에는 조심스러웠다. 

 

 우연히(대부분 필연이지만) 요한복음에 대한 해석서 2권을 동시에 읽게 되면서 이 책들을 다 읽기 전에 요한복음에 대한 내 첫 생각과 느낌들을 조금이라도 정리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들을 읽고나면 나의 시각은 또 달라져 있을테니.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인상깊은 부분들
- 하느님의 어린 양
- 카나의 혼인잔치
-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시다
- 나는 생명의 빵이다
- 간음하다 잡힌 여자
- 나는 세상의 빛이다.
- 나는 착한 목자다.
-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다
-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다
- 세 계명을 준다
- 나는 참포도나무다. 
- 예수님과 토마스(토마스의 의심)
- 예수님과 베드로(나를 사랑하느냐고 세번 물으시다.)

 

 작년 여성영성기본과정의 3박 4일 피정에서 복음 말씀으로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각자의 과제와 기질, 현 상태에 따라서 제시되는 복음 말씀들이 달랐는데,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 중 나에게 묵상텍스트로 주어졌던 부분은 카나의 혼인잔치와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내용이었다. 

 

 카나의 혼인잔치는 예수님의 첫 기적이기에 중요한 내용으로 여겨지고 여기저기에서 많은 관점으로 해석되고는 한다. 그런데 이번에 묵상했을 때 내 안에서 올라온 생각은 '새로운 세상을 태어나게 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의 힘(창조력)'이었다. 성모님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등에 가만히 손을 얹으시는 것 같다. '때가 안되었다고? 그럼 언제가 그 때지? 준비된 때라는 건 없단다. 이제 나아가렴.' 이렇게 눈으로 말씀하고 계신 듯 하다. '여성들은 새로운 일이 이루어지게 틈을 벌리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하와가 선악과에 대한 질문을 품은 것도 그렇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님도 그렇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 여성의 몸도 그러하다.

 

 거침없이 질문하며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된 사마리아 여인은 한달음에 마을로 달려가 성경에 기록된 분이 오셨음을 알린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믿게 된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제자가 하는 역할을 그대로 했다. 교수님께서는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을 파고들며 서슴없이 질문하는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에서 나 자신이 느껴지지 않냐고 말씀하셨다. 글쎄...현실에서 일할 때는 그런 편인데, 이상하게 예수님 앞에서는 그러지를 못하는 것 같다. 

예수님을 대하는 사마리아 여인의 감정은 미혹  냉소 → 놀람 → 확신 으로 다이나믹하게 바뀌는데 나는 그 변화의 에너지가 좋다. 적극적인 질문으로 결국 믿음의 변화가 일어난다. 딱딱하게 굳지 않은 열린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은 모두 자신에게 값진 열매로 돌아온다. 

 

베드로의 발을 씻는 예수님_지거 쾨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유명한 장면도 요한복음에만 나온다. 여성영성심화 수업에서 이 장면의 그림을 보며 함께 묵상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으로 놀라운 관점의 그림이었다.  머리 두건을 쓴 예수님께서 낮은 자세로 베드로의 발 아래 엎드려계시다. 베드로의 한 손은  예수님의 어깨에 얹혀있고 다른 한 손은 거절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낮게 엎드린 사람이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발에 기름을 부어 머리칼로 닦아드린 여인인 줄 알았다. 여인들이 두건을 쓴 모습으로 많이 보여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저렇게 낮게 몸을 낮춘 이가 예수님일 꺼라고 생각치 못한 거였다. 낮게 사람들을 섬겨라, 내가 그 본을 보여주노라. 그 메세지가 너무나 명확한 성경 말씀이었음에도 나는 감히 완전히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높은 분이 가장 낮추신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이라고 잘난체 하며 살고 있는지...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은유가 넘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어린 양, 생명의 빵, 세상의 빛, 착한 목자, 참포도나무시다. 만약 예수님에 대해 나만의 은유를 만든다면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요한복음이 나에게 준 가장 강렬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내 영성이 걸어가는 길이겠지. 

 가만가만 다가와 친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지는 우아하고 지혜로운 여인같은 복음서...요한복음은 나에게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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