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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서간들] 우리가 바오로에게 진 빚과 한계들(빛과 그림자)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

[바오로 서간들] 우리가 바오로에게 진 빚과 한계들(빛과 그림자)

고래의노래 2024. 6. 29. 16:45

* [여성의 눈으로 성경읽기]는 가톨릭, 개신교, 불교, 비신자 등 다양한 종교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 4명이 모여 성경을 온라인으로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속도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느낌과 생각, 깨달음과 질문들을 각자의 블로그에 남기고 톡과 밴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이후에는 사도들의 서간(편지)들이 이어진다. 곳곳에서 생겨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율법에 대한 공동체의 고민과 갈등에 방향을 제시하며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말 것에 대한 용기를 북돋는 내용들이다. 서간의 대부분이 바오로에 의해서 쓰여졌다. 그는 회심의 역동으로 매우 뜨겁게 활동했던 것 같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불신과 탄압의 주체였던만큼 이에 맞서서 믿음을 지켜내야하는 이들에게 뜨겁게 공감하고 힘을 실어주고 싶었으리라.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의 환시(사도 10:13) 이후 사도들은 이민족들도 하느님의 백성으로 품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오로는 이민족들에게 유대인의 율법을 강요하지 말것과 중요한 것은 율법이 아니라 참믿음이라는 것을 몇번이고 강조한다. 
             
"속으로 유다인인 사람이 참 유다인이고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로마 2, 29)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로마 3, 28)
"율법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위에 군림한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로마 7,1)
"그리하여 법전이라는 옛 방식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새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로마 7, 6)
"올리브 나무에서 몇몇 가지가 잘려 나가고,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인 그대가 그 가지들 자리에 접붙여져 그 올리브나무 뿌리의 기름진 수액을 같이 받게 되었다면, 그대는 잘려나간 그 가지들을 얕보며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대는 "가지들이 잘려 나간 것은 내가 접붙여지기 위해서였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로마 11,17-20)

 갈라티아서에서는 이민족들을 위해 일하는 바오로 자신의 소명이 분명히 이야기된다. '할례받은 이들을 위하여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신 분께서, 나(바오로)에게도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주셨기 때문'(갈라 2,8)에 '우리(바오로)는 다른 민족들에게 가고, 그들(베드로)는 할례받은 이들에게 가기로 하였다.'(갈라 2,9)는 것이다. 
바오로는 이민족들을 그리스도 공동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서간들을 읽어보면 바오로는 율법을 중시하며 이민족들을 배척하는 모습들에 격하게 호통을 쳤고, 이는 사도들 중의 사도인 베드로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번은 베드로가 그 전까지는 이민족들과 함께 잘 지내다가 야고보의 사람들이 오자 이민족들과 거리를 두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에 바오로가 베드로를 나무라기도 했다고 한다. (갈라 2,11-14) 이 부분에서 바오로의 성정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권위자에게 옳은 말을 따박따박하는 운동권 학생의 느낌? ^^ 바오로는 확실히 인간들 사이의 권위와 위계를 중히 여기지도 않고 거기에 영향을 받지도 않았나보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갈라 2, 16)
"그대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심판합니까?"(로마 14,4)
"그대가 자기의 것으로 지니고 있는 신념을 하느님 앞에서도 그대로 지니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면서 자신을 단죄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합니다."(로마14,22)

 바오로는 그야말로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갈라 2, 20), 자아의 죽음과 새로운 부활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삶으로 살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은 안타깝게도 남녀 사이에서는 적용되지 못했다.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여자든지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느님의 모상이며 영광이기 때문에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코린1서 11장)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도 말하듯이 여자들은 순종해야 합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남편에게 물어보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코린1서 14, 34`35)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다스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사실 아담이 먼저 빚어졌고 하와가 빚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넘어가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아가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티모1 2, 11-15)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고 남자 아래에 두는 바오로의 망언들이 쏟아진다. 여성을 포박하고 가두었던 저주의 말들. 여전히 끈질기게 살아남아 교회 안에서 여성에 대해 말할 때 인용되는 문장들이다. 시대가 제시하는 사고의 틀을 벗고 이민족을 포용했던 바오로였지만 남녀에 대한 틀은 벗지 못했다. 그만큼 남녀차별의 역사가 깊고, 예수님의 눈으로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뜻이리라. 
 바오로 서간들에는 여성 신자들의 이름이 꽤나 언급된다. 로이스, 에우니디케, 프리스카. 클로에, 리디아, 님파, 아퀼라, 유니아, 포이베 등인데, 이들은 초기 교회 공동체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여성들로 보인다. 사도들의 시대에 분명히 여성 신자들은 자신의 몫을 해내는 일꾼들이었다. 외경으로 전해지는 '바오로와 테클라 행전'에서 테클라는 매우 진취적인 여성인데, 세례달라는 청을 바오로가 거절하자 테클라는 직접 자신에게 세례를 주었고, 결국 바오로의 축복을 받아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지막 날에 나는 스스로에게 세례를 준다"(바오로와 테클라 행전))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바오로의 저 언급들은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을까. 불안한 초기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서 위계질서가 필요했던 걸까.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계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갈라 3, 26-29)
그나마 갈라디아서의 위 구절을 붙잡고, '바오로 율법'의 시대적 한계를 넘어가본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코린1서15,19)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 11-12)
"언제나 기도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테살1 5, 17)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히브 11,50)

 바오로는 극적인 회심을 한 만큼 전하고 싶은 말도 많고 흔들리는 이들을 보며 느낀 안타까움도 컸던 것 같다. 현실적인 쓴 소리들이 길게 이어지는데 요즈음으로 치자면 말많은 꼰대 느낌이기도 한다. ㅎㅎ 말이 많은 만큼 어록들도 많고 망언들도 많았다. 그가 남긴 몇마디 말들에 아직도 갇혀 있는 교회의 여성상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하지만 신분과 민족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바라보고, 죽음 너머 영혼적 기쁨을 지향했던 그의 깨달음과 가르침에 현 인류가 진 빚은 여전히 크다. 바오로가 우리에게 남긴 빚과 한계, 빛과 그림자를 잘 바라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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