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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x 여성] 홀레 아주머니와 함께 한 3주차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옛이야기 x 여성] 홀레 아주머니와 함께 한 3주차

고래의노래 2022. 4. 11. 23:05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봅니다. 여덟번째 주인공은 홀레 아주머니입니다. 홀레 아주머니와 함께 하며 모임벗들과 나누었던 후기들을 올립니다. 현재 2기가 진행중입니다.

[게으름과 부지런한, 아름다움과 추함]


 소녀들은 해와 달의 여정과 대입되지만 이 이야기는 단지 자연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부정의한 세상에서 신음하는 땅 위의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해와 달의 여정에 빗대어 선과 악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해의 소녀와 계모의 딸이 가진 가장 큰 차이는 근면과 게으름이다. 소녀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손에 피가 나도록 실을 자았다. 홀레 아주머니의 집에서도 맡겨진 일을 잘 수행했다. 하지만 계모의 딸은 황금 행운을 바라며 소녀의 행동을 단순히 따라하고 홀레아주머니의 집에서도 게으름을 피웠다. 

 이야기 속에서 부지런함은 선, 게으름은 악과 연결된다. 세상에 대한 파괴적 행동이 아니라 게으름을 악으로 여기는 것은 굉장히 새로운 관점이었다. 모든 종류의 활동이 어떤 식으로든 전체의 흐름에 기여한다고 할 때 무언가를 일으키는 에너지는 그 자체로 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오히려 움직이기를 거부하는 경직성이 악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이를 '의식의 파업'이라고 지칭한다. '의식의 파업'이라니! 정말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었다. 행동만 게으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의식도 주체성을 잃고 게을러질 수 있는 것이다!

 소녀와 계모딸 사이의 또 하나의 차이는 미모이다. 소녀는 아름다웠고 계모의 딸은 못생겼다고 묘사된다. 선이 아름다움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현대의 인권감수성면에서 옛이야기가 자주 비판받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아름다움은 단순히 외적인 미가 아니다. 의식의 파업이 악인 것과 반대로 선이 '부지런한 의식'이라고 한다면 아름다움은 마땅히 의식되야 할 것이 드러나는 상태일 것이다. 저자의 해석을 여기까지 따라가다보니 내면의 '자기'로 향한 자기실현 여정이 인간내면의 과제이며 흐름이라고 말한 칼 융이 떠올랐다. 내면으로 통합되어야 할 무의식 부분을 의식하는 부지런한 내면의 여정, 그 과정에 나와 나의 본질이 일치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다]


"해의 소녀는 비록 세상에는 절망하지만 자신에게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기로 향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옛이야기는 '죽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소녀가 스스로 우물에 빠지는 것을 선의 의지가 극단적 체념에 이르렀다는 상징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체념은 자신을 놓아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자신으로 충실하게 남은 상태를 가리킨다. 보상받지 못하는 자신의 선함을 내려놓고 악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끝까지 쥐고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물 속으로 추락했던 해의 소녀가 홀레아주머니의 세상에서 깨어나는 것은 세상이 주는 긍정과 보상에 자신을 맞추었던 관점을 멈추고 선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자신의 토대를 다시 자각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나 소녀에게 사물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해의 소녀는 이제 사물의 말을 듣고 봉사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소명에 순종하게 됨을 의미한다. 


"'의도없는 추락'은 삶을 바라보는 견해가 달라지는 전환점이 되고, 

신기루 같은 기대를 품고 보낸 오랜 시간에서 깨어나는 계기가 된다."


 예전 짧은 심리상담 시간 동안 봤던 이미지가 떠올랐다. 계속 뛰기만 해서 너무 숨이 찬데, 저 건너에 사람들이 평화로이 노닐고 있는 들판이 보인다. 거기로 가까이 다가가자 그 너머에 절벽이 보였다. 보상과 인정을 향한 뜀뛰기에 지쳤지만 그 기대를 놓고 들판의 무리에 섞여 쉬는 것은 나에게 '절벽으로의 추락'을 의미했다. 머리로는 알지만 도저히 몸으로 행할 수 없는 나에게 필요한 건, 세상에 절망하되 나를 포기하지 않고 절벽 너머로 뛰어드는 것이리라. 그 너머에서 악의 세상에 대한 나의 기대가 죽고 존재를 향하는 나의 소명만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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