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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오두막] 아이다움을 향하는 회귀적이고도 온전한 성장 : 흰눈이와 빨간장미 본문
3월 19일 달빛오두막 세번째 모임이 열렸습니다. 모임벗들에게도 코로나 쓰나미가 닥쳐서 미뤄진 일정상, 그리고 컨디션상 참석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다음 번 모임에는 모두 건강히 얼굴뵐 수 있길 바랍니다. 세번째 만나본 옛이야기 주인공은 흰눈이와 빨간장미입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이야기들처럼 '흰눈이와 빨간장미'도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다른 주인공들처럼 쫓기거나 갇히거나 잠에 빠져들지 않지요. 평온하고 안전한 환경 속에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흰눈이와 빨간장미'는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여정을 여러 상징을 사용하여 아름답게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 불안을 모른 채 유기적으로 성장하다
숲속오두막에서 흰눈이와 빨간장미가 어머니와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소녀들은 동물들과 정답게 지내고 숲속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과 연결감을 느끼고 두려움없이 지내는데, 그들이 이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지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어머니의 굳건한 믿음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초반부 분위기는 인간과 자연이 통일된 상태로 연결되어 있던 인류 초기,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나를 구분하지 않는 유아기를 나타냅니다. 성경 속의 낙원, 에덴 동산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첫 불안과 공포가 찾아옵니다. 겨울밤에 몸을 녹이러 온 곰이 오두막을 두드리지요. 오두막 안에서 화들짝 놀라는 소녀들과 동물들의 모습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긴장감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어머니는 이들을 안심시키며 곰에게 문을 열어주게 합니다. 불가에 모인 소녀와 곰은 서로 장난을 치며 가까워집니다. 여성들의 세상에 곰으로 상징되는 남성성이 처음 등장합니다. 여자 아이의 성장 측면에서 곰은 성적충동을 의미합니다. 인류의 흐름 속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개척하며 문명을 발전시키는 이성의 출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찾아온 새로운 에너지 앞에 불안에 떱니다. 어떤 것이든 변화 앞에서는 긴장되게 마련입니다. 새로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선택해야하죠. 소녀들과 곰의 만남은 새로운 충동에너지의 근원적 선함을 신뢰하는 어머니의 인도덕분에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이루어집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곰은 소녀들이 두려움에 떨며 문을 닫아걸어 오두막 바깥에서 얼어죽거나, 힘을 이용해 파괴적으로 침입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 동화는 불안없는 성숙, 분열과 갈등없는
영혼의 발전이라는 완벽한 꿈을 그리고 있다."
곰은 봄이 가까워지자 난쟁이에게서 보물을 지켜야한다며 숲으로 가버립니다. 그리고 얼마후 소녀들은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숲, 냇가, 도시로 향하는 길에 그 난쟁이를 만나게 됩니다. 곤경에 처한 난쟁이를 소녀들은 매번 구해주지만 난쟁이는 언제나 소녀들에게 비난을 퍼붓습니다.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수염과 옷이 망가진 것에 대해 예민하게 굴지요. 난쟁이는 왕자에게 저주를 내려 곰으로 바꾸어놓고 왕자의 보물도 빼앗은 장본인입니다.
난쟁이는 곰이라는 성적충동 에너지와 대립되는 어린자아의 양심을 상징합니다. 바깥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움츠리고 성장이라는 변화에 불편함을 느끼며 안주하려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성적충동이라는 자연스러운 성장에너지를 비난하고 부끄럽게 만들려하지요. 단순하게 보면 이런 어린 양심은 얼른 사라지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스스로에게도 당황스러울 변화 앞에서 이 힘은 조율의 시간을 벌어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몰아치는 새로운 에너지 앞에 자아는 무력하게 굴복할지도 모릅니다. 곰과 난쟁이의 대립과정으로부터 아이는 내면의 힘으로 이를 조율하고 자신만의 기준점을 찾아나가게 되지요. 저자는 이를 '유동적 균형을 이루는 성장'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에 곰은 난쟁이를 물리치고 왕자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왕자의 형제들이 흰눈이, 빨간장미와 결혼하고 보물들을 나누어가지며 이야기는 마무리되지요. 성적충동은 인간적 사랑이라는 경험으로 변모합니다. 이제 아이시절에 느끼던 주변과의 연결감은 개별자아들의 사랑이라는 성숙한 결합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지만, 여전히 아이로 남는 신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 내면의 원형이 이끄는 곳으로 아이와 함께 나아가다
숲속 오두막의 평온은 구분없는 연결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의식적인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무의식적인 일치감에 가까웠지요. 나와 너의 경계가 없었고 그랬기에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곰과 난쟁이를 만나며 소녀들은 자신을 의식해나가기 시작합니다. 바깥과 구분되는 '나'라는 자아가 생기고 새롭게 태어나는 힘들을 조율해나가야 했죠. 그리고 드디어 나와 너라는 구분된 자아들이 사랑을 통해 결합하고 연결되는 신비를 경험하며 온전한 인간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나' 자신으로 있으면서도 다른 존재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어른으로 성장하며 우리가 깨달아야하는 것입니다. 소녀들은 어머니의 보호 속에서 불안에 떨지 않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 속 어머니는 단지 부모로서의 어머니라기보다 대지, 자연, 이 세상이 전하는 모성적 포근함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태초에 자연과 하나였지만 이런 연결감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며 문명을 발전시킨 인간역사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 결과 자연은 이제 우리를 돌보는 힘이라기 보다 오염된 땅, 공기, 물처럼 오히려 우리가 경계해야할 대상이 되고있습니다. 다시금 충만한 연결로 돌아갈 때입니다.
한 인간의 성장으로 관점을 좁히면 이 이야기는 성적충동 에너지가 경계와 구분의 힘으로 개별자아의 성장을 이끌다가 결국 사랑을 통해 존재를 넘어선 연결에 이르는 과정으로 보여집니다. 성관계와 사랑이 대립되는 것이 결합하는 대표적인 행위와 감정이라고 보면 이러한 관점이 더 잘 이해되었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난 날 느꼈던 성적충동과의 첫 조우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사랑의 행복 속에서 성과 친밀감을 통합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도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지요. 그리고 우리 딸들은 이성과의 만남 속에서 되도록 상처없이 열정과 순수를 잘 조화시키기를 바랐습니다. 우리의 딸들이 흰눈이 빨간장미처럼 건강하고 유동적인 균형감 속에서 성장하려면 대지의 엄마같은 안정감 속에서 머물러야한다는데..부담이 밀려옵니다. ^^;; 성장하면서 나는 어린 양심(내 안의 난쟁이)를 어떻게 대했었는지, 내 안의 곰(성적 에너지)는 어떤 상태인지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에게 근간이 되는 안정감을 전해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동화는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 합일을 단호하게 믿는다."
아직 우리 안의 곰은 난쟁이와의 대결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곰이 황금옷을 입은 왕자로 변하는 것, 사랑 안에서 지극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이번 생에선 닿기 힘들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인류 초기에 경험했던 자연과의 일치감을 우리는 원형적 느낌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닷가의 일몰을 바라볼 때, 야생동물들의 펄떡이는 생명력을 마주할 때,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살랑이는 바람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가 원래 있어야할 자리에 연결되는 치유를 느낍니다. 자연과 인간이 구분되어 버린 이 세상에서 나고 자랐지만 우리는 여전히 태초의 연결감을 온 존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찐팬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현빈, 손예진이라는 훈남훈녀의 결혼스토리에 심장부여잡으며 설레여했습니다. 그건 결혼이라는 '대립상의 통합' 상징이라는 원형상이 우리에게 계속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 아닐까요. 옛날이야기 속에서 왕자, 공주의 결혼으로 전해내려오던 통합 원형상이 이제 미디어로 옮겨져 연예인들의 결혼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로얄 패밀리들의 결혼이 그런 역할을 하겠지요. 이처럼 개별존재의 결합에 대해 우리 안에 원형적인 그리움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경험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존재로 그것을 향하고 있습니다. 저는 BTS 온라인 콘서트를 보면서 일곱 소년이 지금 나에게 주는 환타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투사 에너지가 강렬하게 모아드는 것이 슈퍼스타들인데, 이러한 투사가 결국엔 내 것으로 가져와야 하는 에너지라고 할 때, 그 중에는 인류가 인간의 성장이라는 과제 안에서 내내 반복해온 원형적 에너지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들은 내 안에 있는 무언가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이 있고 이 에너지를 건드리는 무언가에 반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옛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미디어 속 연예인들만큼 강렬한 끌림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 원형적 메세지들만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의 감정과 상태를 내가 해석하고 소화할 수 있는 좋은 가이드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우리는 여전히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을 향해 성장하는 중입니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도 세상에 태어나 그 여정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흰눈이와 빨간장미처럼 불안과 균열없는 성장을 완벽하게 이끌어주지는 못하겠지만, 몇단계를 먼저 거친 선배로서 성적충동의 에너지 속에서 흔들리고 휘청거렸던 경험을 솔직하게 나누며 함께 불안을 견뎌줘야겠다 다짐해봅니다. 그렇게 '아이가 되려는 퇴행'이 아니라, '아이다움으로의 성숙한 회귀'로 함께 나아가려 합니다. 우리가 경험한 삶이 그 과제를 풀기에 적당한 지원을 해주지 않더라도 우리 내면 집단무의식 속 원형적 에너지가 이 여정을 이끌어줄꺼라는 믿음 안에서.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옛이야기와 여성심리에 대한 책들을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보고 있습니다. 현재 2기가 진행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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