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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x 여성] 흰눈이와 빨간장미와 함께 한 4주차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옛이야기 x 여성] 흰눈이와 빨간장미와 함께 한 4주차

고래의노래 2022. 3. 18. 14:44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봅니다. 일곱번째 주인공은 흰눈이와 빨간장미입니다. 흰눈이와 빨간장미와 함께 하며 모임벗들과 나누었던 후기들을 올립니다. 현재 2기가 진행중입니다.

[털가죽을 벗는 왕자]

흰눈이와 빨간장미는 도시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루에서 보석을 풀고 있는 난쟁이를 만난다. 그 보석은 난쟁이가 왕자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소녀들은 보석에 매혹되어 눈을 떼지 못하는데 이 때 곰이 나타나 난쟁이를 발로 차 쓰러뜨리고 저주에서 풀려 황금 옷을 입은 왕자로 되돌아온다.
어린시절의 양심(난쟁이)을 물리친 후에 성적충동의 에너지(곰)가 인간적 사랑(왕자)으로 거듭나는 장면을 이야기는 이처럼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보여준다. 사회적 불안으로 추동되었던 어린 양심은 이제 사랑의 부름 속에서 사라진다. 흰눈이와 빨간장미는 왕자와 왕자의 형제와 결혼하고 난쟁이가 빼앗아갔던 금은보화를 나누어가진다.

저자는 난쟁이의 보물이 유년기의 가치를 상징한다고 해석하면서, 조화롭게 성장한 소녀들에게 유년기는 더없이 높은 가치를 지니며 남은 과제는 어린아이 자아의 보물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는 난쟁이의 보물이 유년기의 가치라는 것에 쉽게 동의되지 않았다. 보물의 원래 소유자는 왕자였는데 난쟁이가 이것을 잠시 빼앗아갔다고 유년기의 가치로 연결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왕자의 보물이 원래 소녀들에게 속한 것이라는 해석도 처음엔 와닿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이야기의 주제가 '어떻게 어른으로서 아이로 머물 수 있는가', '여성이 되고 사랑을 배우며 어떻게 순수함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의 문제라는 부분을 읽고 나서야 난쟁이의 보물이 다시 소녀들에게 돌아가는 과정의 상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통일된 상태의 완전한 연결감(숲 속 오두막)으로부터 분열과 혼란(곰, 난쟁이와의 만남)을 경험하고 다시 조화로운 결합(왕자들과의 결혼)으로 나아가는 인간성장의 여정이 이 이야기가 보여주고자 하는 점이라고 할 때 유년기의 가치를 다시 되찾는다는 것은 조화로운 연결과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사춘기 초반의 이드에 대한 불안은 유희와 기쁨을 통해 극복되었다.
난쟁이라는 초자아에 대한 불안은 참을성 있는 유머 속에서 해소되었다.
이제 마지막 걸음은 더는 어떤 행위가 아니라, 어떤 허가이며 어떤 사건이다."


이들에게 보물이 인도되는 것은 곰이 난쟁이를 제거하고 나서야 가능해진다. 난쟁이와 곰의 대결에 소녀들은 관여하지 않는다. 이는 이 대결이 자아의 의식적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곰과 소녀들이 처음 마주한 순간에 이미 결정난 상태였음을 의미한다. 어머니는 곰의 방문에 놀란 소녀들을 안심시키며 문을 열어주라고 이야기한다. 성적 충동 속에 숨겨진 근원적 선함에 대한 깊은 믿음이 불안하고 흔들리는 소녀들을 잡아주었던 것이다.

제 모습으로 돌아온 왕자와 왕자의 형제는 흰눈이와 빨간장미와 결혼을 한다. 결혼은 대립하는 것들의 조화로운 결합의 가장 기본적인 상징이다. 저자는 그들이 내적 결속을 완성한 시점에야 제대로 '아이'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어른으로 성숙하면서 아이로 남는 과제는 결국 곰과 난쟁이 사이의 대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소녀들은 놀라울 정도로 조화롭게 성장하는데 그 배경에는 어머니로 상징되는 세상에 대한 강인한 믿음이 있었다.

곰과 대면한 순간에 소녀들의 성장방향이 결정되었다느니, 소녀들의 조화로운 성장은 미더운 어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느니 하는 부분을 읽으며 가슴이 답답하게 눌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야기 속에서 나온 어머니가 진짜 관계의 어머니만을 상징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년기의 환경 속에서 세상에 대해 얼마나 안정과 연결감을 느끼는지의 문제는 부모만의 책임은 아니다. 인간이 생명의 뿌리인 자연과 자신을 연결짓지 못하는 것은 시대적 가치관의 문제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대 속에서 무언가 가장 많이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부모인 것은 분명하다.

"사랑의 행복을 경험하는 것, 그것은 자기 실현을 위한 성숙의 길에서 마지막 걸음이다."


세상과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어린시절을 지나, 성적 에너지가 나의 몸을 자각하게 하고 어린 양심이 외부와의 경계를 세우며 나를 구분짓던 시기를 통과한 후에 아이는 개별자아로 다른 이와 만나 몸과 마음으로 연결되는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의 행복은 불안을 극복하고 마침내 아이에서 여성으로 성숙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흰눈이와 빨간장미는 어느 한 쪽을 과하게 몰아치지 않은 채 유동적 균형이라는 흔들림 속에서 단단히 중심을 잡는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불안없는 통일과 조화'이다. 우리가 닿아야하는 이상향을 이야기는 제시한다. 아마 나는 이야기 속 엄마같은 완벽한 안정감을 아이들에게 주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어린시절의 보물을 낚아채는 사회적 불안이 난쟁이를 만날 준비도 되지 않은 아이들을 미리부터 흔들어 깨우지 않게 애쓰고 있다. 그리고 때가 되어 마주하게 될 곰과 난쟁이 사이의 혼란스러움을 함께 잘 견뎌주려 한다. 엄마도 그렇게 휘청거렸지만 쓰러지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고 말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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