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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달빛오두막] 게으른 분열에 머물지 않는 성실한 선함 : 홀레아주머니 본문
4월 16일 달빛오두막 2기의 마지막 모임이 열렸습니다.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은 홀레아주머니와 해의 소녀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 2'에서 가장 짧은 이야기이지만 저자가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가 이해될만큼 묵직하고 강렬한 메세지를 전해주었습니다. 선과 악, 그 사이의 정의에 대한 실존적 지혜를 말하고 있었지요.
:: 권선징악을 현실과 연결하기 위해서
옛이야기들의 주제는 보통 '권선징악'입니다. 착한 주인공은 고난을 극복해 복을 받고 주인공을 괴롭히던 나쁜 인물은 벌을 받습니다. 단순명쾌한 이 전개는 전해듣는 이들에게 잠시 기쁨을 주지만 현실로 연결된 희망이 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이야기가 끝난 지점에서 마주하는 세상이 여전히 가혹하고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들이 약한 이들을 짓밟고 힘과 부를 향해 나아가는 현실 앞에 '선이 보상받고 악은 벌을 받는다'는 정의는 힘을 잃지요. 이러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 속에서 인류는 내내 괴로워했습니다. 기원전 2000년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괴로움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회적 질서가 해체된 혼란 속에서 파피루스 속 저자는 자신의 영혼과 대화하며 차라리 죽음을 갈망합니다. 옛이야기는 그러한 절망 속에서도 인류가 세계 질서의 숨겨진 지혜와 연결되고자 애쓴 흔적입니다. '홀레아주머니' 이야기는 자연과 인간 실존을 지탱하는 법칙을 자연 현상에 근거하여 보여줍니다.
여주인공 소녀가 새엄마과 의붓자매로부터 억울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소녀는 고된 노동으로 피가 묻은 물레를 씻으러 우물로 갑니다. 그러다가 물레가 우물 속으로 떨어지지요. 물레를 찾겠다고 소녀는 우물로 뛰어들고 우물 바닥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납니다. 낙원처럼 온유하고 화사한 그 곳을 걷다가 빵가마와 사과나무의 부탁을 들어주고 홀레아주머니의 오두막에 닿습니다. 홀레아주머니는 이가 크고 무섭게 생겼지만 따뜻하게 소녀를 맞이하고 자신이 시키는 일을 하면 같이 살게 해주겠다 하죠. 그렇게 홀레아주머니와 평화롭게 지내던 중 소녀는 다시 집이 그리워지고 홀레아주머니는 그런 소녀를 황금비로 축복하며 땅 위로 올려보냅니다.
우물 속으로 추락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소녀의 여정은 지고 뜨기를 반복하는 해의 여정과 연결됩니다. 빨간 피로 물든 물레가 우물로 떨어지고 황금으로 변한 소녀가 땅위로 올라오듯, 붉은 노을 속에서 하강한 해는 다음 날 황금빛으로 떠오릅니다. 마치 파멸처럼 보이는 해의 추락은 밤을 몰아내는 부활로 이어지지요. 비단 하루뿐 아니라 1년의 시간으로 보아도 해의 힘이 쇠락했다가 타오르는 리듬이 반복됩니다. 이것은 아마도 인류의 의식이 깨어난 이래 처음 맞이한 신비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는 이러한 관찰을 상징화하여 선과 악 사이에서 붙잡고 싶은 내면의 갈급함과 연결시켰습니다. 의붓딸-해와 상징적으로 연결된 선은 죽은 듯 보이나 죽지 않고 오히려 더 찬란하게 부활하지요.
:: 옛이야기가 바라보는 선과 악
선과 악은 반대급부로 서로를 규정지으므로, 의붓딸의 반대쪽에서 악으로 대응되는 친딸의 여정으로부터 우리는 인류가 이야기 안에서 선과 악을 바라보는 관점을 알 수 있습니다. 친딸은 황금으로 뒤덮혀온 해의 소녀를 보고 똑같이 우물로 뛰어들어 홀레 아주머니에게 갑니다. 하지만 빵가마와 사과나무의 부탁을 무시하고 홀레아주머니가 시킨 일도 성실히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대했던 황금대신 역청을 뒤집어쓴 채 집으로 돌아가죠. 의붓딸과 친딸의 가장 큰 차이는 근면함과 게으름입니다. 친딸은 오로지 '지금의 나'에 머물며 주변의 소리를 듣지않습니다.(빵가마와 사과나무의 부탁을 거절) 또한 본질과의 합일로 얻게되는 찬란함만 쫓아 다른 이의 길을 모방합니다.(의붓딸을 쫓아 우물로 뛰어듦) 그러다 세상의 근원적 힘(홀레 아주머니)과 만나 움직임의 기회를 얻게 되지만 이 마저도 제대로 하지않습니다.
"악은 자기 안에 갇혀 있고, 어떠한 것이라도 움직이게 하기를 거부하는 것...
그것은 의식의 파업같은 것이다."
모든 성격의 움직임들은 결국에 전체가 성장해가는데 하나의 에너지로 기여합니다. 흔히 우리가 악이라고 여기는 파괴적 활동들마저도 선이 행하고 나아가게하는 각성과 자극이 되지요. 옛이야기는 바깥을 향한 행위가 아니라 '본질로 향하는 의지'를 기준으로 선과 악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본질과의 합일을 향해 애쓰며 견디는 선함과 본질로부터 벗어나 분열 상태에 게으르게 머무는 악함이 어떤 운명을 겪게 되는지 이야기하죠. 그런데 그 운명법칙은 외부세계에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악을 대하는 정의가 현실적으로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피상적 보상은 선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상에 맞추어 외부의 기준을 따르는 '게으른' 악이 오히려 대접받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어느 때보다 집요하게 '삶의 정답'들이 넘쳐납니다. 이 옷을 입으면, 이 차를 사면, 이 동네에서 살면, 퇴사를 하고 여행을 가면, 아침형 인간이 되면...행복해질꺼라고 소리칩니다. 예전과 달리 돈, 명예, 권력 말고 '행복'이라는 가치자체가 목표가 되었지만 행복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지 않지요. 저자는 '악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상상력없이 선을 모방하는 것 뿐'이라고 말합니다. 주어지는 공식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고 고되게 자신을 찾는 것, 옛이야기는 그것이 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해의 소녀(의붓딸)는 악의 세상에 절망하지만 자기자신이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오히려 내면 깊숙히 떨어집니다. (우물에서의 추락) 그러자 사물들의 말을 알아듣게 되고(빵가마와 사과나무의 부탁) 그들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지요. 그것은 세상과 연결되어 자신의 소명의 자각하고 기꺼이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후 절망했던 세상을 다시 그리워하며 빛나는 모습으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황금비로 축복받으며 집으로 돌아옴)
:: 옛이야기가 전하는 위로와 응원
'홀레아주머니'는 결국 '한 인간의 성숙과 자기발견, 자기회귀에 대한 성장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내미는 삶의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 나의 존재적 가치를 믿게 되는 여정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생각해보면 우리 삶도 이야기 속 주인공들처럼 내면이 이끄는 방향과 세상이 제시하는 나침반 사이에서 방황하고 헤매는 여정이었습니다. 바깥의 기준에 따라 행복의 모상을 쫓다가 헛헛한 마음이 바스락거리기도 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불안감에 머뭇거리며 주저앉기도 했습니다. 이런 방황을 멈춰세울 진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오래전 인류도 무너지는 마음을 기댈 무언가를 찾아 헤맸을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피빛으로 가라앉았다가 황금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위안을 얻었겠지요. 그 간절함이 옛이야기 속에 원형적 메세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죽음같은 고통 뒤에 오는 것은 황금같은 충만함이니 의심없이 나아가라고 말이죠.
[달빛오두막] 1, 2기에서 우리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 시리즈를 함께 읽으며 보름달이 뜨는 밤에 이야기나누었습니다. 총 8개월동안 8개의 옛이야기를 통해 여러 여성인물들을 만나보았어요. 옛이야기들이 가부장제 문화가 어떻게 여성의 내면을 비틀었는지 여러 상징들을 통해 들려줄 때마다 긴 세월의 강을 건너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건 마치 남모르게 품고있던 내 안의 꼬인 매듭을 누군가 눈치채주는 것 같았죠. 그리고 뜨거운 응원 또한 받았습니다. 가부장제의 피상적 정의에 휩쓸리지 않으려 죽음같은 홀로서기를 감당하고 있는 애씀을 세상의 근원(대지여신, 홀레아주머니)이 축복한다고 말이지요. 이제 달을 보면 [달빛오두막] 모임이 떠오를꺼라 하신 말씀에 참 기뻤습니다. 자연에서 삶의 근본적 지혜와 위로를 찾으려했던 옛 사람들처럼 우리도 달을 볼 때마다 옛 여인들이 건네준 위로와 응원을, 우리가 나누었던 공감의 에너지를 기억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게으른 분열에 머물지 않고 성실한 고난을 감당하는 선함을, 우리가 놓치지 않기를!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옛이야기와 여성심리에 대한 책들을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2기가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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