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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x 여성] 홀레아주머니와 함께 한 4주차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옛이야기 x 여성] 홀레아주머니와 함께 한 4주차

고래의노래 2022. 4. 14. 15:56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봅니다. 여덟번째 주인공은 홀레 아주머니입니다. 홀레 아주머니와 함께 하며 모임벗들과 나누었던 후기들을 올립니다. 현재 2기가 진행중입니다.

[해의 소녀는 왜 돌아오는가?]


 옛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마음 속에 의문이 올라온 구절을 적어놓는다. 이번에는 홀레아주머니의 이 대사를 적었었다. 


"다시 집으로 가고 싶다니 마음에 드는구나."


 해의 소녀는 홀레아주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돌연 '집에 가고 싶어서 슬퍼졌다'고 하며 가족들에게 돌아가야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홀레 아주머니는 저렇게 흐뭇해하며 소녀를 세상으로 통하는 문 앞으로 인도해준다. 계모에게 시달리며 살았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다니! 도대체 무슨 마음인지 처음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해의 소녀로 상징되는 선을 세상은 잔혹하게 대했다. 처참한 절망 속에서 세상에 대한 기대를 버리자 그제야 소녀는 비가시적 차원의 정의를 만날 수 있었다. 사물들이 말을 걸었고 탄생과 죽음을 관장하는 위대한 힘으로부터 거룩한 순종이라는 소명을 이해했다. 그런데 옛이야기는 그 상태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그 마음을 안고 다시 피상적 정의가 지배하는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이상과 내면 속에서 실현된 정의와 선이 피안에 머문 채 

외적 현실세계로부터 도피하는 망명자로 남을 것이 아니라, 

바로 외적 현실의 세계에서도 옳아야 하고 그것이 옳음을 뚜렷하게 증언해야 한다는 요구이다."


 내가 속한 땅에 발디디기를 거부하고 깨달음의 관념 안에만 머무르는 것은 진정한 의미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옛이야기들은 현실 너머의 깨달음을 간직한 채 현실세계에 머물러야 함을 강조한다. 세상의 피상적 보상체계로부터 자유로운 채 나 자신의 본질로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해의 소녀가 세상에 대해 갖는 향수는 우물로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존적 계기'가 된다. 

[게으름은 왜 악인가?]

 자신의 본질에 가 닿기 위한 부지러한 내면의 반대편에 있는 '의식의 파업'을 저자는 악으로 해석했었다. 이어지는 의미로 상상력없는 모방으로 자신을 복제품으로 만드는 피상성 또한 악이라고 규정한다. 사람들은 행복을 갈망하지만 스스로 그 길을 찾는 것은 힘들어한다. 그러다보니 눈 앞에 보여지는 '행복의 모상'들을 쫓아 살아간다. 이것만 사면 행복해질꺼라는 광고에 현혹되고, 성공과 투자의 노하우를 고민없이 따른다. 그러다 지치면 저 세상의 행복을 보증해준다는 곳을 향해 막무가내로 기도하기도 한다. 그렇게 진짜 자신의 삶이 아닌 외부자극의 거울상을 살아간다. 

 

"악의 불행은..자기 내면에서 어떤 것을 움켜쥐고 자신을 고스란히 쏟아부어 

그것을 견디어내는 능력이 없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자신의 본질로 가는 길에 겪는 불안과 절망을, 나만의 답을 찾는 길에 통과해야할 답답한 어둠을 견디어 낼 힘을 난 갖고 있을까? 현자의 답을 찾아 헤매고 강력한 선으로 나라를 이끌 지도자를 갈망하고 첫 시도로 완벽한 결과를 기대해왔다. 생활인들의 연구 프로젝트 모임인 [일상학자]에서 다뤘던 연구 주제도 나의 그런 상태를 반영한다. 1기에서 나의 연구주제는 '페미니즘의 원형을 찾아서'였다. 페미니즘이라는 정의가 사회보편적 기준이  되지 못하는데 조급함이 일었고 혹시나 이 불씨가 사그라드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가능하게하는 근본적 추동력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이후 2기의 연구주제는 '옛이야기로 찾아가는 여성됨의 여정'이었는데, 이 연구를 하면서 부정적으로 여겨지곤 하는 '기다림'의 힘을 알게 되었다. 옛이야기의 여주인공들은 왕자를 만나기 전 '스스로를 구원'한다. '기다림'을 통해서 말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선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견디다'라는 말이 주는 무게를 다른 식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독재정치를 견디지 않고, 여성을 향한 억압을 견디지 않았던 이들 덕분에 우리는 정의를 자유롭게 소리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본질에 다가가는 길에 견디지 말아야 할 것과 견뎌야 할 것이 있다. 이를 지혜롭게 구분하고 견뎌야 할 것에 용감하게 머무르는 힘을 갖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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