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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일상학자 2기] 일상공유서 :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 본문
2주간의 제주살기 이후 나의 내면에는 두가지 큰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엔 두가지가 별개의 의미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연관성이 느껴진다.
먼저 일상과 여행의 경계에서 머물다보니 삶을 여행하듯 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정해져 있는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 무얼 먹고 어떻게 지낼까만 고민하는, 온전히 순간에 사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 무기력해지지도 않고, 꼭 가야만 하는 곳을 포인트처럼 정해놓은 관광도 아닌 그 중간 즈음에서 세상의 온갖 뉴스에서 멀어져 오롯이 나와 아이들, 눈 앞의 풍경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이 참 충만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강한 욕구가 올라왔다.
그리고 가족이 아닌 이들과 함께 오래 머물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깨닫고 깜짝 놀라서는, 나를이해한다는 것과 나를 받아들인다는 게 얼마나 다른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목표지향적이고 융통성이 없어서 사람을 정답게 대할 줄 모르는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의 맨 얼굴을 마주했다. 나의 진실이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라는 것에 슬펐지만, 어쨋건 진실을 마주했다는 사실에 기뻤다. '슬프고 기쁘다'는 모순된 표현이외의 다른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 사이에 [달빛오두막] 모임에서 읽은 '어른들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의 '백설공주'편은 이런 나의 깨달음에 선명한 빛을 쬐어 주었다. 내가 이제까지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인 내 모습을 알면서도 그걸 나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된 것이다. 가정 분위기가 달랐다면, 세상을 좀 더 다정하게 느낄 수 있었다면..이라면 가정에 사로잡혀서 '내가 되었어야 하는 내 모습'을 나로 착각하고, 지금의 나를 '잘못 만들어진 나'로 취급하며 인정하지 않았다. 그건 엄마에 대한 원망과 더불어 나에게 있는 엄마 모습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과도 이어졌다는 걸, 백설공주 해석을 읽으며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https://findmygoddess.tistory.com/436
이렇게 나에 대한 받아들임이 [달빛오두막]에서 읽은 백설공주 해석과 만나, 내 안에 있는 엄마에 대한 받아들임으로 이어지더니, 엄마가 말하는 엄마됨의 경험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 안의 상처를 돌보느라 어쩔수 없이 대상화되어 있던 엄마의 삶을 엄마의 언어로 듣는다면 그건 어떤 이야기일까... 그런데 마치 운명의 이끌림처럼 이어서 [분노와 애정]을 읽게 되었다.
[분노와 애정]은 엄마됨에 대한 여성 작가들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글이 연대순으로 나열되 있다보니, 시간의 흐름대로 엄마됨에 대한 여성들과 사회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미 통과한 여정에 대한 되새김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책인데, 페미니즘이 건전한 자기비판을 통해 계속 변화하는 중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흐름이 내가 지나왔고 지나고 있는 흐름과 똑같다는 것도.
자신의 출산, 육아 경험에 대한 솔직한 기록으로부터 시작된 엄마됨에 대한 여성들의 글은 엄마됨을 개인의경험이 아니라 사회구조 안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각성을 지나 엄마로서 느끼는 양가감정을 솔직하게 나누는 벗을 찾는 공모작업 스토리로 이어진다. (놀이터에서 옆에 앉은 엄마들이 자신과 같은 부류인지 살짝 떠보는 모습이나 집으로 돌아와선 아이가 깰까봐 방한복을 입힌 채 유모차 안에서 재우는 장면은 나의 그 시절과너무 닮아서 웃음이 나왔다.)
이후 글들은 보다 개념적인 사유로 들어간다. 엄마됨이라는 제도 때문에 진정한 신체와 정신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것에 분노하며 다시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에 이어 글쓰기와 엄마됨이 양립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펼쳐진다. 글쓰기와 예술이 엄마됨과 배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은 예술 자체에도 해롭다는 주장, 엄마는 생명을 살리는 도덕적 생명체이므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향하기 어렵다는 이야기, 엄마됨은 작품활동에 필요한 정신적 공간을 넓혀주었다는고백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생식의 원천은 신체적 수태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창조하는 성취를 향한 에너지라는 이야기까지.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엄마와 권력에 대한 사라 러딕의 글이었다. 아이에게 엄마는 거대한 권력이지만 사회 안에서는 무력함을 느끼는데, 엄마들의 권력이 지닌 이러한 복잡성을 이해해야 자신의 권력(힘)에 대해 스스로의 관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딸이 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여성이 되는 방법 또한 절대 알 수 없다...
딸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에 관심을 갖는 여성, 자신을 돌봐주었던 사람들을 돌보는 여성이다...
딸이 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곧 모성적 사유를 기대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을 의미한다...경청은 저항의 행동이다.."
'여성됨'에 대해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 나에게 꼭 필요했던 깨달음이다. 여성됨에 대한 나의 연구가...앞으로 딸이 되는 법으로 이어지겠구나...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미 통과한 여정에 대한 되새김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부장제의 억압에 대한 분노하는 내용의 책들을 멀리하고 있었는데, 페미니즘이 건전한 자기비판을 통해 제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부분으로 나아가는 중이라는 걸 [분노와 애정]을 읽으며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글이 일부 페미니즘으로부터 비난받을 것을 알고 누군가를 상처주리라는 것에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단단히 자신의 생각을 적어내려간 그들로부터 위안을 얻었다. 오해받고 비난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넘어 개인의 진실들이 모일 때 변화가 일어나므로.
"작가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는 연필과 약간의 종이야. 그거면 충분해...
그 연필로 종이 위에 쓴 것을 자기 홀로 책임진다는 걸 알고 있다면 말이지. 즉, 자기가 자유롭다는 걸 안다면 말이야....
어쩌면 정말 조금밖엔 자유롭지 못할지도 몰라...
하지만 이 때만큼은 책임을 지는 거야. 이때만큼은 자율적인 거야. 이 때만큼은, 자유로운 거야."
지금 이 순간 내가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건 순간에 살고 나를 받아들이는 것과 맞닿아있다. 내가 원했던 목표점이 아니라 내 존재 너머의 진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걸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
* [일상학자]는 각자 지금 집중하고 있는 주제의 '학자'가 되어서 공부를 계획하고 과정을 함께 나누며 최종발표회로 연구결과를 공개하는 생활인들의 공부 프로젝트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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