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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오두막] 서로에게 귀기울이는 엄마와 딸의 연대를 그리며 : 백설공주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달빛오두막] 서로에게 귀기울이는 엄마와 딸의 연대를 그리며 : 백설공주

고래의노래 2022. 2. 25. 16:43

 하얗고 둥근 정월대보름의 달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2월 19일, 달빛오두막 2기 두번째 모임이 열렸습니다. 두번째로 만난 주인공은 백설공주입니다.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 2권'에서 저자는 백설공주의 해석에 책의 절반 정도를 할애합니다. 그만큼 백설공주 이야기 속에는 여성이 처한 현실과 슬픈 악순환, 이를 극복하고 나가도록 하는 사랑 등 여성의 삶을 반영하는 상징들이 넘쳐납니다. 많은 내용을 차분히 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긴 5주동안 백설공주와 함께 하며 나의 삶과 백설공주 이야기를 연결해보았습니다.

:: 관계의 속에서 만들어지는 모습


 심층심리학적으로 옛이야기를 해석한다는 것은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로부터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일상 배경이 되는 부모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려보면서 주인공이 풀어내야 할 삶의 과제가 무엇인지 도출합니다. 백설공주 이야기에서는 백설공주의 부모에 대한 언급이 무척 짧습니다. 하지만 매우 강렬하지요. 눈내리는 풍경 속 까만 창틀 안에 한 여인이 바느질을 하고 있습니다. 바늘에 손이 찔리며 빨간 피가 눈에 떨어지고 여인은 '빨갛고 하얗고 까만 아이'를 소망합니다. 이 장면은 백설공주의 엄마의 내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백설공주이지만 실제적으로 이야기의 에너지 중심은 거울 앞의 왕비에게 향해 있습니다. 최고로 아름답고자 하는 왕비의 집착이 백설공주의 삶의 방향을 정해놓기 때문이지요. 저자는 까만 창틀 안에서 바느질하던 왕비와 거울 앞의 왕비가 동일인물이라고 말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단지 어머니의 본질이 변화했음을 상징합니다. 백설공주의 친모는 대립되는 가치들 사이에서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내면에서 통합하고자 하는 욕구가 대립되는 색깔들을 한몸에 지닌 아이에 대한 소망으로 드러나지요. 그리고 자기 삶에서는 그 모순에 대한 해결책으로 최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엄마로부터 과제를 물려받은 백설공주는 엄마의 극심한 욕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처지가 되버립니다.

:: 혼란스러운 고난, 여성되기의 어려움


 왕비의 분열상태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여성됨'에 대한 불안을 나타냅니다. 저자는 왕비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백설공주의 저본인 무조이스의 [아름다운 블랑카] 이야기를 참고합니다. [아름다운 블랑카]에는 백설공주와 연결되는 블랑카 외에도 블랑카의 계모, 그리고 계모의 부모까지 3대에 걸친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경견한 순결이라는 종교적 도덕과 임신, 출산이라는 범상한 몸 사이에 끼어버린 여인, 어머니로부터 내면의 갈등을 물러받은 채 자존감을 붙들기 위해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여인, 그러한 어머니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삶이 전시되는 여인이 세대를 지나며 이어지지요. 그들의 서사는 수단이 된 사랑과 근본적으로 죄를 진 몸으로 사회적 도덕과 화해하기 위한 눈물겨운 몸부림입니다.

 여성들은 여성이 되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메세지를 받습니다. 여성의 몸은 아름다운 선망의 대상이면서 악의 유혹체로 비난받죠. 여성의 몸이 수행하는 임신출산의 역할 속 모성적인 부분을 과하게 신성시하면서도 성적인 쾌락, 동물적인 본능과 연결지으며 부끄러워하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시선 속에서 내면이 분열하는 와중에 여성들은 어떻게든 자기를 존중하기 위한 투쟁합니다. 그리고 그 투쟁은 때로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죠. 여성됨에 대한 모순된 메세지들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던 왕비는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방법으로 절대적 아름다움을 쫓게 됩니다. 이 잘못된 선택은 딸의 삶에 서서히 독을 타게 합니다. 자신이 풀지 못한 갈등을 딸이 대신해 풀어주길 바라지만 엄마가 딸에게 물려준 것은 남성에 대한 공포(사냥꾼 남자)와 살아남기 위해선 성장을 멈추어야 한다는 잔인한 메세지(난쟁이 집으로의 은둔)일 뿐입니다.

:: 엄마와 딸이라는 슬픈 연대


 왕비가 자신을 죽이려하자 백설공주는 숲속 난쟁이 집으로 숨어듭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 굉장히 충격적인 해석을 내놓습니다. 난쟁이 집이 왕비로부터 보호되는 안전한 공간이라기보다 왕비의 영향 아래 적응하기 위한 곳이라는 겁니다. 깨끗한 질서가 요구되는(머물기 위해선 청소를 하라는 조건을 내걺)난쟁이 집은 여성에게 위험하지 않은 남성들의 세상에서 유아로 머물고자 하는 백설공주의 소망을 나타냅니다. 거울 앞 왕비의 위대함을 지키기위해서 백설공주는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을 멈추기로 한 것이죠.

 여성으로서 이중적인 메세지에 혼란스러워하던 어머니는, 딸을 여자가 되어야하지만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중구속의 상황에 가두어버립니다. 이 즈음 되자 엄마와 딸이라는 슬픈 연대에 대해서 생각이깊어졌습니다. 내면의 모순에 고통당하며 딸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움켜쥐라고 소리치면서도, 이제껏 살아왔던 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전하는 엄마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남겨진 엄마의 손을 놓지 못하고 슬퍼하는 딸들...가부장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히려 서로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 아픈 역사가 계속 여성들을 괴롭히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어요.

창가의 여인과 거울 앞 여인은 같은 사람이다.


:: 나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유리관을 열다


 백설공주는 결국 죽어서 유리관에 눕혀집니다. 엄마의 허영을 위해 진열된 인형으로 살아야하는 백설공주 딸들의 삶을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왕자가 우연히 죽은 백설공주를 보고 사랑에 빠져 백설공주를 데려가게됩니다. 백설공주가 다시 살아나는 이 이후 장면은 축약본에서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던 부분이지만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왕자는 난쟁이들로부터 백설공주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백설공주의 관을 받습니다. 그렇게 관을 옮기는 중에 관이 덜컹거리게 되고 이 때 목에 걸렸던 독사과가 빠지며 백설공주는 다시 살아납니다.

 백설공주는 혼자 깨어나 유리관을 엽니다. 백설공주에게 필요한 것은 마법의 키스가 아니었습니다. 왕자는 유리관을 부수고 백설공주의 어깨를 흔들어깨우는 대신 사랑과 존중을 약속하며 곁에 머뭅니다. 그리고 백설공주가 깨어나 여기가 어디냐고 물을 때 대답합니다. "당신은 제 곁에 있습니다." 이것은 죽음같은 삶을 살던 여성이 어떻게 자신을 일으켜세우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날카로운 분석과 명확한 조언들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죽음처럼 완벽하게 수동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숨을 내쉴 수 있게 해주진 못합니다. 그건 자신을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경험, 따뜻한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꼭 받아주는 대상이 있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를 내가 받아들이는 것, 즉 자기와의 화해입니다.

:: 엄마가 엄마의 이야기를 한다면


 이야기의 마지막에 왕비는 빨갛게 달궈진 무쇠신을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벌을 받습니다. 옛이야기 서사의 상징 면에서 보았을 때 인과응보의 결과이긴 하지만,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현실의 처벌이라는 것은 이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지요. 게다가 그 대상이 엄마라고 생각하면 다른 결말을 상상해보고 싶어집니다. 여성이기에 감당해야했던 많은 것들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자 애쓴 시간들이 지금의 엄마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너는 나같이 살지마라'는 이야기를 주문처럼 외우지만 정작 딸에게 전해줄 수 있는 것은 기이하게 날이 선 자기방어 뿐이었죠.

 나를 이해하게 되면 이 세상 모두에게 나름의 서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됩니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인다는 건 내가 혐오하는 모습이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저자의 해석을 읽으며 백설공주에 대한 감정이입이 너무 깊어 감정이 널을 뛰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온전히 긍정할 수 없는 이유가 내 안의 엄마를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분명 알고 있던 모습이었지만 '그건 내가 아니라, 잘못 키워진 부분이고 다른 모습이 될 수 있었던 부분'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나의 일부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도 진저리를 치던 엄마의 모습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살며시 엄마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 안의 상처를 돌보느라 어쩔 수 없이 대상화했던 엄마의 삶을 엄마의 언어로 듣는다면 그건 어떤 이야기일까요.

:: 나를 받아들이고 손을 내밀며


 옛이야기 속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관계맺고 있는 이들을 좀 더 다정하게 바라보게 되었어요. 힘껏 저항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해체시키고 싶던 그 틀을 공고히 했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변화를 만드는 것은 투쟁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는 것이라는 걸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이루려하지 않을 때 오히려 변화가 일어나고 손아귀의 힘을 뺐을 때 무언가 쥐어지는 삶의 아이러니도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변화하지 않을 반대편으로 여기고 선을 그을 때 오히려 나 또한 좁게 규정되어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는 걸 차츰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관심을 갖고 알아가며 손을 내미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달빛오두막] 모임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옛이야기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지금의 여성들이 함께 이야기한다는 건,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울었어야 할 일에 울어주는 살풀이 작업같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그 이야기에는 엄마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는 거라는 생각이 이제야 듭니다. 여성들이 진실한 감정과 생각을 막던 독사과를 뱉고 여성으로서의 나를 자유롭게 느끼려면 엄마가 스스로의 삶을 이해하고 솔직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 한번에 되는 일은 아니겠지요. 굳은 마음이 풀어지도록 따스하게 녹여내는 과정이 필요할 꺼라고 생각합니다. 옛이야기가 말해주는 희망에, 그리고 함께 해주시는 달빛아래 벗들께 의지하며 가보겠습니다.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옛이야기와 여성심리에 대한 책들을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보고 있습니다. 현재 2기가 진행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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