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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옛이야기 x 여성] 백설공주와 함께 하는 3주차 본문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봅니다. 여섯번째 주인공은 백설공주입니다. 백설공주와 함께 하며 모임벗들과 나누었던 후기들을 올립니다. 현재 2기가 진행중입니다.
[남자 사냥꾼 혹은 푸른수염]
백설공주는 사냥꾼에게 간절히 요청하여 죽임을 면하고 숲 속으로 도망친다. 저자는 이 장면을 백설공주가 남성과의 만남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사냥꾼 남자, 칼을 가진 남자, 살인마 남자 같은 '푸른수염'류의 환상은 성적불안을 가진 여성들에게 자주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내면의 불안은 어머니로부터 딸로 전해진 것인데, 상징적으로 보면 '바늘에 찔리는 것'에서는 '칼로 살해위협을 당하는 것'으로 고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설공주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어떻게 내면에 각인하게 되었을지, 책에서는 크리스티나 크로포드의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 어린 시절 그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에 맞섰으나 어머니는 며칠 후 그 남성을 정답게 초대하고 크리스티나에게 사과까지 시킨다. 이런 경험 속에서 어린 아이는 남녀간의 '성'을 남성의 가학적 폭력과 여성의 복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게다가 성에 대한 내면의 모순으로 어머니는 자신과 주변에 대한 청결함의 강박에 빠지고 이것이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이어져 규율과 원칙 속에서 융통성 없이 목표만을 향해 질주하게 만든다. 이러한 '강박적 양육' 아래에서 크리스티나는 힘겨운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다.
저자의 해석 하나하나가 너무나 나와 맞아떨어져서 슬펐다. 나는 성인 남성에 대한 과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도 과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제어가 되지는 않는다. 꿈에도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오곤 한다. 이런 두려움의 뿌리는 어린시절 경험한 가정폭력 분위기에 기인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힘을 휘두르는 남성과 그 앞에 무력한 여성이 내 안에 여성상, 남성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엄마의 모순적인 태도'가 그것을 더 강화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크리스티나가 폭력 현장에서 엄마를 보호하려다 사과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밤 사이의 폭력에 대해 난 '공식적으로는' 무지한 상태였다. 엄마에게 한번도 내가 들은 것에 대해서, 내 마음의 두려움과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이모부같은 사람(유머러스한 분)이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어머, 얘! 이모부도 화나면 다 집어던진다더라!"라고 대답했다. 폭력의 반대편에서 우리는 한편인 줄 알았는데, 엄마는 아빠랑 한 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부모 모두에게 솔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되어 시끄러운 밤에 문을 열고 아빠를 대면했을 때, 나는 엄마를 보호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에 엄마가 한 말은 "그래도 가장의 권위를 지켜줘야 한다."는 거였다. 나를 괴롭혀도 내가 지켜줘야 하는 힘이 있다는 어이없는 논리 앞에 할 말을 잃었었다.
엄마는 청소 강박이 있었다. 언제나 여기저기를 쓸고 닦았다. 어린 손주들이 흘리는 과자 부스러기도 바로 그 앞에서 치웠다. 나는 청소 강박이 있진 않지만 규율에 대해 융통성이 없다. 정해진 기준 아래 나는 언제나 긴장 상태였고 그래서 육아도 힘겨웠다. 한번 설정한 목표가 바뀌는 혼란을 감당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절실하게 바꾸고 싶은 부분이다.
[움츠린 자아, 퇴행하는 정신]
왕비의 성적 불안과 청결함에 대한 강박은 놀랍게도 난쟁이의 집으로 이어진다. 난쟁이 집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정말로 놀라웠다. 그 곳은 위험하지 않은 남성들(난쟁이)과 단정함의 규율(난쟁이 집에 머물기 위한 조건)로 상징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아니라 어머니의 지배 아래 안전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난쟁이들은 어머니의 편협한 생각을
겉보기에는 우호적인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상징한다."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난쟁이들을 막연히 선의 상징으로만 여겨왔었기에 이 해석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앞뒤가 맞았떨어졌다. 백설공주가 난쟁이 집에 머물기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은 '살림을 맡아서 집을 단정하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못한 채 집 안에 갇힌다. 이런 상태는 독립이라고 할 수 없다. 백설공주는 여전히 어머니의 영향 아래 있다. 다만 더 위험해지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여성이 되기를 포기하고 유아적 세계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퇴행이 일어나는 것이다.
저자는 백설공주가 두 가지의 소망을 품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무해한 남성들의 세상에서 살고싶다는 소망과 스스로 영원한 소년이고자 하는 것이다. 여자로 태어난 것부터 잘못이라는 자기 존재에 대한 슬픈 부정...나의 사춘기 시절이 딱 그랬다. 강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싸움도 잘 해서 나를 잘 보호하고 싶었다. 초경을 하고서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에 좌절했고 여전히 나의 여성 정체성과 화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처벌당하는 여성성]
어머니의 모순된 내면 아래서 백설공주는 '이중구속' 상태에 갇힌다. 모순되는 메세지를 전달받고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저자는 이중구속 상황의 특징을 세가지로 설명한다.
1. 어떤 유형의 메세지가 전달되는지 면밀히 구별하여 적절하게 반응하는 게 중요한 관계.
2. 두 종류의 메세지가 모순된 내용임.
3. 개인은 어떤 메세지에 반응해야 할지 분석하고 구별할 능력이 없음.
40년동안 이어졌던 혼란스러움이 한마디로 정리되었다. '이중구속!' 언제나 엄마는 원하는 바를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입으로 하는 말과 마음으로 원하는 바가 매번 달랐고 나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껏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언제나 실패했다. 그래서 언제나 분노의 폭격을 맞아야 했다.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하면서 중간에 이리저리 조작을 해서 그 사람 앞에 결과물을 보이곤 했다. 그 조작 대본 안에는 나도 자주 등장했다. 나는 예의를 차릴 줄 모르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대본에 따라 전화를 걸어서 시나리오대로 읊었다. 내가 사거나 보내지도 않은 선물이 누군가에게 도착하고 그에 대해 형식적인 대화를 이어가야했다. 나는 '사람을 대할 줄 모르는 상식없는 아이'로 스스로를 정의내려갔다. '표면 언어 속 진심찾기'에 지칠대로 지친 나는 그냥 단순하게 사람들이 하는 말 그대로 이해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그런지 '순진하다', '눈치없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여전히 자주 일시정지 상태에 빠진다. 내가 제대로 반응하고 있는건가? 알 수 없어서.
"어머니의 자기비하와 자기관철 의지의 혼합이야말로
백설공주에게 위험하기 짝이 없다."
백설공주 모녀관계의 현실버전으로 책에서 이야기되는 크리스티나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어머니에게 축하편지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을 받는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균열을 내는 이들을 처단했다. 마치 백설공주의 왕비처럼.
나도 그런 이유로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 엄마는 자신이 세례받을 준비를 하고 있으며 언제가 세례식인지 이야기 했다. 종교 안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려는 시도에 대해 나는 응원을 보냈고 잘 통과하시라고 했다. 떨어져 살았기에 전화통화로 나눈 대화였다. 그러고 며칠 후 엄마는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세례식에 오지 않을 수 있냐'며 '넌 정신병원에 가봐야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미친듯이 타오르는 분노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뜨거운 에너지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다시 죄인이 되었다.
엄마는 자주 내 행동을 어이없게 곡해하고는 자기를 무시했다며 화를 냈다. 의도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끊임없는 죄책감이 나에게 씌워졌다. 그러면서 핏대를 세우며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내가 얼마나 자존심이 센 줄 알어!" 자존심이 세다는 건 자존감이 높다는 거랑 반대의 의미라는 걸 온 몸으로 알게되었다. 자기비하와 자기관철 사이에서 엄마는 자존심을 건져냈던 것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감과 나의 외모에 대한, 특히나 여성적 부분에 대한 평가...그런 에피소드들도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떠올랐다. 저자는 백설공주를 숨막히게 한 왕비의 코르셋이 요즈음 시대로치자면 브래지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몸을 가리면서 강조하는 속옷은 여성임을 감추되 드러내야하는 모순된 내면을 상징한다. 둘째가 몇번이나 물어보곤 했다. 왜 엄마만 찌찌 가리개를 하는지. 차마 '몸이 드러나면 내가 위험해질까봐...'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둘째는 "예뻐보이려고 그러는구나?"라며 자기 나름의 답을 찾아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니까 할지 안할지는 정하면 되는거야."라고 덧붙였다. '여성됨이 축복인 여성, 너는 그런 여성이 되길' 마음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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