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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옛이야기 x 여성] 백설공주와 함께한 2주차 본문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봅니다. 여섯번째 주인공은 백설공주입니다. 백설공주와 함께 하며 모임벗들과 나누었던 후기들을 올립니다. 현재 2기가 진행중입니다.
[어머니는 왜 딸이 죽기를 바랄까] [젊음에 대한 치명적인 질투]
놀랍다. 옛이야기를 향한 저자의 해석 곳곳에서 페미니즘이 느껴진다. 옛이야기 안에서 여주인공들이 수동성 안에 갇혀있다며 분노하는 것만이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건 어슴프레 느끼고 있었지만 그렇다면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옛이야기를 바라볼 때 어떤 관점이 또 가능한가? 라고 스스로 질문했을 때 또렷한 답이 떠오르진 않았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야기 속 여성 캐릭터들이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파고들어가면서 그들의 내면을 조율했던 외부의 힘으로 가부장제를 들춰낸다. 기존의 페미니즘적 옛이야기 해석이 결과적인 서사 비판에만 집중했다면 이 책의 저자는 그 서사를 일으킨 핵심 동력을 찌른다. 남성임에도,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지 않았음에도, 신학과 심리학이라는전통적인 남성편향 학문의 연구자임에도 그렇다. 놀라운 통찰이다.
"우리 사회는 여자들에게는 남자들과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완전한 여자이면서 동시에 그만큼 완전한 어머니이기를 매우 당연하게 요구한다."
여성의 신체는 아름다움으로 추앙되면서 동시에 위험한 유혹체로 죄악시되고 출산의 기능체로 대상화된다. 이러한 다중적 잣대들 사이에서 여성의 내면은 갈갈이 찢겨 분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아이와 함께 있는 미녀'가 될 때만 비로소 모순을 어렵사리 극복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있는 미녀! 출산 이후의 여성 연예인들에게 꼭 들어맞는 프레임이다. 엄마가 된 여성 연예인들에 대한 소식에는 으레 이런 제목이 붙는다. "아이 엄마 맞아? 섹시미 철철. 볼륨 드레스 자태" 사회는 섹시미와 엄마라는 궁극의 모순을 해결한 여성 연예인들을 자기관리의 승자로 추앙한다. '아이 엄마 맞아?'는 이제 무슨 경구가 되어버렸다. 저 문구로 검색하면 관련 뉴스가 끝도 없이 나온다.
게다가 어머니가 된 이후에는 '좋은 어머니란 무엇인가'에 대한 넘칠듯한 조언들이 여성들을 자신의 직관과 멀어지게 만든다. 저자가 이러한 육아 조언들 중 모유의 가치에 대한 대립되는 주장들을 예로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그건 정확하게 내 경험이었다. '완전한 음식, 모유'라는 환상 속에서 잠을 포기하며 가슴을 쥐어짰고, 나중에는 아이가 드러내는 어려움이 내 모유때문인가 싶어 체내 독소가 있지 않는지 모발검사를 하기도 했다.
저자는 여성 내면의 이러한 모순때문에 어머니가 아이의 출생과 함께 죽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아이를 넘기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창가의 여인'은 '거울 앞의 여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딸은 두 여인 사이의 갈등을 해소할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여기까지가 왕비가 거울 앞에 서게 된 서사이다. 이제 어머니와 딸은 서로를 동일시한다. 어머니는 딸이 자신의 명성에 이바지하기를 바라며 딸의 실패와 허약함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그러면서 결국에는 딸의 삶에 '천천히 독을 탄다.' 백설공주가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바라던 그대로 되어가기 때문에.
"우리가 노화라고 부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존재를 이루는 한덩어리 물질이 점차 정신화되는 것이다."
언어적 정의가 인식과 태도를 만든다. 저자는 노화를 '정신화'로 아름다움을 '영혼과 육체의 조화로운 통일'로 개념화한다. 날서 있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주는 편안한 정의이다. 안타깝게도 아름다움에 대해 왕비는 좁은 정의 안에서 살아간다. 왕비가 쥐고 있는 외적 아름다움이라는 여성의 카리스마는 세월이 흐를수록 치명적으로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젊음에 대한 질투는 백설공주를 향해 점점 크게 자라난다.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왕비의 음모는 모두 변장한 채 일어나는데, 저자는 이런 간접적인 시도들이 상징하는 건 딸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것이 어머니의 의도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행위임을 나타내는 거라고 해석한다. 어머니는 딸의 아름다움에 대한 불안과 질투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가 없다. 자신에게 오랫동안 아름다움이 힘을 주었기에 그것과 건강하게 작별하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은 물론 딸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
딸은 어머니의 삶 속에 삼켜지고 감정을 몰살당한다.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이것은 왕비가 공주의 간과 심장을 먹는 것으로 상징된다. 저자는 간이 태고부터 감정이 들어있는 곳의 상징이었으며 심장은 존재의 동력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둘을 (실제로는 아니었지만) 먹어버린다는 건 백설공주의 감정이 왕비에게 종속되며 왕비가 백설공주를 자기 존재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걸 뜻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너 때문에 산다."
평생 나에게 저주가 되었던 이 말이 떠올랐다. 어린아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다. 거실에서 벌어지는 한 밤 중의 전쟁이 끝나길 기다리며 베개로 귀를 막고 잠으로 도망갔던 그 시간들이 '엄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내 안에 깊이 남아있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저자는 간이 없는 아이는 어머니가 내어놓는 지방(감정 덩어리?)을 소화할 기관이 없는 거라고 했다. 나는 실제로 간의 부속기관인 담낭에 문제가 있다. 담석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소화문제도 잦게 일어난다. 체할 때마다 나는 내 몸들이 활동을 멈추고 긴장한 걸 느낀다. 마치 이렇게 소리치는 것만 같다. "긴장해! 위급상황이야! 언제든 도망쳐야 하니까 몸 안에 음식을 들이지마!"
어떤 부분에서는 백설공주의 어머니에게서 내가 보이고, 또 어딘가에서는 백설공주에게서 나를 발견해간다. 몸을 통해 겪은 여성성에 대한 내적 분열과 그로 인해 끊임없이 내가 누군인지 묻는 질문의 도돌이표, 나를 확인하려 거울 앞에 서는 강박과 어머니의 과제에 짓눌린 채 죄책감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까지... 지난 주 읽을 부분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빠진 여자'...거울 앞에서 '나르시시즘에 빠진 과잉반성' 이 부분에서 딱 나에 대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울 대신 책 앞에서 지적인 인식을 기준으로 나를 발견하려고 끊임없이 애쓰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나를 확인하고 거부하고 그래도 또 살펴보려하는 내적 전쟁터'는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인 인식에 대한 과도한 추구는 지적 성장'에 대한 허망한 목표를 이야기했던 '영리한 엘제'(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 1권)와 이어서 생각이 되었다. 여러 이야기에서 나의 다양한 부분들을 만나고 있고 이것이 퍼즐처럼 짜 맞춰지고 있다. 다만 책이 건네는 답이 거울의 답처럼 나를 파괴하지 않게, 질문에 덧입히는 나의 감정들을 잘 들여다보아야겠다. 백설공주의 여정이 이런 나에게 도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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