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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달빛오두막] 손잘림, 은총 그리고 자유 : 손없는 소녀 본문
새해 시작과 함께 달빛오두막 2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 2'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의 삶과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를 연결해보려고 합니다. 처음으로 만난 이야기 주인공은 '손없는 소녀'였습니다.
:: 의지와 주체성의 세상에서 손이 잘리다
소녀가 처음부터 손이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난을 극복하려 아버지는 악마와 거래를 하고 딸의 손을 자릅니다. 다행히 악마가 소녀를 데려가는데는 실패하지만 소녀는 손없는 채로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손이 잘린다는 것은 참으로 강렬한 모티브입니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덜컹 내려앉지요. '내 손으로 일군', ' 내 손으로 직접' 이라는 표현들에서도 보이듯이 손은 주체성의 상징과 같은 신체부분입니다. 비슷한 의미로 인간을 다른 존재들과 다르게 구분해주는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직립보행을 통해 손을 쓸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은 '생각을 의지로 행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손이 잘린다는 것은 의지를 실현하는 능력이 잘린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손이 잘린 것을 자신의 욕구를 소망할 수 없는 억압된 상태로 해석합니다. 원하는 것을 향해 손조차 뻗을 수 없는 상태인거죠. 가난은 '돈벌이'라는 쓸모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하고, 어린 소녀는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스스로를 작게 움츠리며 욕구에 대한 죄책감을 키워갑니다. 가난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버지는 악마와 거래하고 딸의 손을 자릅니다. 안타깝고 서글프지만 저자는 이것이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인간적 비극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족에 대한 선한 책임감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이죠.
내 손으로 스스로를 먹여야 하는 고단한 현실에서 인간은 존재의 고귀함보다 벌이의 쓸모로 가치가 메겨집니다. 행위와 결과가 이어진 세상은 다른 의미로는 의지와 주체성의 세상이기도 합니다. 냉혹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로 여겨지기도 하죠.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해결해야하고 그런 능력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소녀는 손이 잘림으로써 그렇지 못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 소녀의 과제는 어디까지인가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떠올리게 합니다. 애쓰지 않아도 풍족했던 에덴 동산에서 이들은 추방을 당하는데, 옳고 그름을 알려준다는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들은 땅을 일구며 애써야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존재함으로서 충분했던 세계에서 능력이 가치로 연결되는 세계로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손이 잘린 소녀는 의지력, 주체성의 최하단으로 떨어집니다. 행위하지도 욕구하지도 않는 지독한 수동성으로 침잠하지요. 얼핏 보면 소녀의 과제가 손으로 상징되는 능동적인 주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신학자인 저자는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소녀가 닿아야 할 곳은 존재로 충만한 은총의 상태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홀로 떠돌던 소녀가 왕의 정원으로 들어가 배를 따먹는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추방과 정확히 대비되는 장면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죄라는 현실을 반대로 바라보게 되는 행위라는 거죠.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나를 버리지 않을' 포용의 상징으로서, 왕은 소녀가 자신의 욕구와 죄책감 사이의 연결을 풀기위해 만나야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심지어 왕은 소녀에게 은손을 선물하죠. 하지만 다시 악마의 개입으로 서로간의 오해가 생기고 소녀는 아기와 함께 궁전을 떠나게 되죠. 그것이 긍정의 힘이든, 부정의 힘이든 타인에게 기대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다시 자신의 과제를 향해 나아가고 '누구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집에 당도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손이 자랍니다.
:: 은총을 받는 것은 주체적인 행위인가
'손없는 소녀'는 러시아,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전래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들에서는 소녀의 손이 자라는 계기가 명확합니다. 연못에 빠질 뻔한 아기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손이 자라죠. 하지만 그림동화의 이야기에서 소녀가 손이 자라는 모습은 조금 허무해보입니다. 소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집에 머물고 돌봄을 받죠. 은총을 받기까지 소녀는 그저 수동적으로 보입니다. 아무 행위도 하지 않았지만 은총을 받습니다.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이 점이었습니다.
은총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은총'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기도 했지만 종교적인 단어로 생각되어 멀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우리를 살게하고, 우리가 박탈당한 것을 돌려주는 것이 은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은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아니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하다고 말하죠. 은총이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이고 조건이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느껴지는 충만함이라고 한다면 은총을 받는 것은 수동적인 행위일까요? 주체적인 행위일까요?
우리는 자신의 욕구보다도 주변의 욕구에 반응했던 우리들의 '손 잘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나의 손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어 바둥거렸지만 결국 바랐던 게 '나의 손'이 아니라 '은손'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지요. 세상은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소리칩니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라고 조언하면서 나의 욕구가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라고 말하죠. 수동적인 모습은 부정적으로 여겨지고 주체적이라는 것은 적극적인 행동이 따르는 모습으로 떠올립니다. 행위와 결과를 잇는 것,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류가 살아가야만 했던 현실 그대로 우리는 행동력을 주체성과 과도하게 연결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은총을 받기 위해 소녀는 무엇인가 해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능력주의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고요히 머무는 것이 필요했죠. 그리고 다만 '깨달아야' 했습니다. 자신은 쓸모를 넘어선 존재라는 것을 말이죠. 그리하여 소녀는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됩니다.
:: 은총을 넘어서 자유를 향해
"이 동화는 어떻게 한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은혜로움을 신뢰함으로써
자기 손을 다시 사용하고 불안으로 가득 한 심리적 압박감을 극복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상징적으로 본다면, 소녀의 과제는 에덴동산의 그 충만함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내 안의 영성과의) 단절을 극복하고 다시 은총으로 연결되어야 하죠. 하지만 단순히 그 동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삶을 살면서 부족하고 쓸쓸한 서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유속에 살아야 합니다. 소녀는 진정 자유로워지기 위해 세번의 고비를 넘습니다. 자신의 유용함의 기준으로만 바라보던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것과 욕구를 대신 들어주고 은손을 쥐어주는 왕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아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충족시키려는 욕구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손은 은총을 깨달으며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왕을 다시 만나 스스로 여성으로서 성숙할 때에야 진정 모두가 자유로워졌습니다.
악마는 소녀를 수동적으로 만들어 사로잡기 위해 손을 자르지만, 결국 그 극단의 수동성이 결국 닿아야했던 지점으로 소녀를 데려갔습니다. 세상이 삶의 기준을 들이밀며 우리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 때, 그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아등바등하거나 다른 이에게 의지해 기준을 넘어서려 하지 않고 나의 존재적 가치를 믿는 것. '손없는 소녀'는 우리에게 그것이 진정 주체적으로 자유로운 삶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었습니다.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보고 있습니다. 현재 2기가 진행중이며, 2022년 5월경 3기를 모집합니다. (아래 링크)
https://forms.gle/5CSUX3djex7C7Lm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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