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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옛이야기 x 여성] 손없는 소녀와 함께 한 2주차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옛이야기 x 여성] 손없는 소녀와 함께 한 2주차

고래의노래 2022. 1. 2. 14:32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봅니다. 다섯번째 주인공은 손없는 소녀입니다. 손없는 소녀와 함께 하며 모임벗들과 나누었던 후기들을 올립니다. 현재 2기가 진행중이며, 2022년 5월경 3기를 모집합니다.

[자기 존재를 찾아나서다]

 '손없는 소녀'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두 손이 잘린 소녀가 아버지가 약속하는 편안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홀로 길을 떠나는 장면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소녀의 주체적 행동으로 바라보지만 저자는 이 해석에 확실히 선을 긋는다. 소녀가 길을 떠나는 것은 참된 의미에서 삶을 찾아 떠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녀가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은 '환상에 가까운 희망'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소녀는 자신의 욕구와 행복을 포기한 대가로 삶에 필요한 것들이 주어지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해왔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기대 속에서 동정심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줄 거라고 확고하게 믿는다. 분연히 일어나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건네받은 정신적 유산에 기대어 결심한다. 물론 이 출발은 결국 소녀가 극복해야될 지점으로 그를 안내한다. 

"내가 나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방식으로 나를 대할 사람은 없을까?"


 저자가 짐작하며 내놓은 소녀의 속마음을 읽고 깜짝 놀랐다. 내가 매번 혼자 속으로 삼키는 안타까움이기 때문이다. 이 안타까움은 그럴 꺼라는 기대에 기반하고 있다.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실망이 쌓이지만 놓을 수 없는 기대. 소녀가 가진 세상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그 기대를 만든다. 여기까지 이르자 이제까지 모순적으로만 보였던 내 안의 여러 모습들이 하나의 연결된 그림으로 맞춰졌다. 
 친한 언니가 언젠가 내가 세상에 대한 정말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난 내가 세상을 너무 위험하게 바라보는 것을 서글프게 생각해왔던지라 다른 사람이 나를 정반대로 바라보았다는 게 너무나 놀라웠다. 그런데 손없는 소녀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읽다보니 상반된 두 면이 모두 내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욕구를 드러내면 악마가 되는 환경 속에서 욕구를 감추고 받는 보상에 길들여졌고 이는 세상에 대한 조건적 믿음으로 강화된 것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악마가 되는 환경'이었으며 친한 언니가 나를 바라본 관점은 '세상에 대한 믿음 자체'였다. 그래서 이 둘은 정 반대의 이야기이지만 뿌리를 같이 한다. 

 [금지된 것을 위반하는 용기]

 그렇다면 소녀는 어떻게 이 심리적 억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왕의 정원으로 숨어들어 배를 홈쳐먹는 행위로, 견고하게 돌아가던 심리기제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너무나 놀랍다. 왕의 정원에 들어가는 것은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에 대응되는 상징이며 원죄이야기를 다시 쓰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아버지 형상으로 나타난 악마에게서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온 사람에게는
어머니 같은 그 반대 형상만이 화해의 힘이 된다."


 우선 소녀는 천사의 도움으로 해자를 건너 왕의 정원에 닿는다. 악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손잘림과 천사의 도움이라는 대립이 처음 등장한다. 왕의 정원에는 배나무가 있는데, 이는 에덴동산의 열매가 사과나무라고 알려진 것과 대비된다. (실제론 사과라기보다 열매라는 보통명사로 보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것이 후대에 사과로 구체화되 내려져 온것의 의미 또한 있을 것이다.) 사과가 인식의 열매라면 배는 과즙이 풍부한 돌봄의 열매이다. 부성적 논리와 모성적 포용이 대비되는 부분이다. 

 저자는 천사와 정원을 모두 어머니의 여성의 상징으로 보았다. 배나무가 늘어선 정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소녀가 금지없이 보살펴지는 존재로 머물고 싶은 구강적 퇴행을 나타낸다고 이야기한다. 퇴행이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생각되지만, 결국 내면의 강렬한 욕구로 인한 퇴행이 금지된 행위를 극복하게 한다. 손을 뻗어 배를 도둑질하는 것이다. 바로 이 때 소녀는 이제까지 자신이 죄로 여기된 것들을 다른 이들은 죄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 때와 지금을 구별하여 비교하고 현재의 더 나은 체험을 토대로 삼아
유년기에서 기인한 오랜 불안의 태도를 떠나야 한다."


 왕의 정원 부분을 성경의 원죄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본다면, 이는 여성들에게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하느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조건적으로 '낙원'을 약속했다. 이는 손을 자른 대신 아버지가 돌봄을 약속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인식의 열매를 처음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죄를 뒤집어 썼던 이브는 홀로 길을 떠나는 소녀와 연결된다. 그런데 소녀는 다시 동산으로 돌아간다. 금단을 행하러. 그리고 이번에는 받아들여진다. 여성들은 역사를 통해 금기시되어 왔던 것에 손을 뻗고 있다. 그 여정이 금기를 깨는데에만 집중되는 게 아니라 진정한 내 모습이 되기 위한 여정이 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하는걸까. 이후의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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