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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오두막] 가부장제의 방울그물을 벗고 일어서길! : 영리한 엘제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달빛오두막] 가부장제의 방울그물을 벗고 일어서길! : 영리한 엘제

고래의노래 2021. 11. 24. 17:35

 달이 삼켜지고 드러난 부분 월식이 있었던 바로 다음 날, 달빛오두막 1기의 마지막 모임이 열렸습니다.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한 옛이야기의 주인공은 '영리한 엘제'였습니다. 저자가 왜 책의 마지막에 이 이야기를 배치했는지 이해될 만큼 '영리한 엘제'는 강렬하게 우리의 마음을 흔들었어요.
 '영리한 엘제'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조롱과 익살로 가득차 있습니다. 영리하다고 소리쳐 말하지만 너무나도 어리석은 엘제와 엘제 가족의 코믹극 서사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저자의 해석을 통해 이 이야기의 숨은 의미를 따라가다보니,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 아버지와 딸

"옛날에 영리한 엘제라는 딸을 가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엘제는 따짜고짜 아무 설명없이 영리하다고 설명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에 의해 결혼이 예정되죠. 저자는 책의 시작인 저 문구가 엘제가 철저히 '아버지의 딸'임을 선언하는 부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버지의 딸이라니! 페미니즘 책에서 여러번 만났던,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였어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들은 권위가 제시하는 삶의 방향대로 가부장문화에 맞는 기준을 내면화하며 아버지의 딸로 성장합니다.
 지적 업적이 존재에 대한 단 하나의 기준인 사회에서 아버지 또한 지적 열등감을 가지고 어른이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할 수 있는 비상구로 자식들을 세우고 그들의 실패를 통해 나의 능력을 확인하려 하지요. 저자는 딸에게 지적인 영민함을 강요하면서도 그에 대한 성취는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 아버지의 이러한 모순적인 심리를 지적합니다. 그 결과 엘제는 과도한 요구와 이룰 수 없는 성취 사이에서 내면이 갈리며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의 통찰력을 죽이며 살아가게 됩니다.

:: 어머니와 딸

"그 아이는 골목에서 바람이 달리는 것을 보고 파리들이 기침하는 것을 들어요."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데만 특화된 엘제의 예민함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은 엘제의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엘제가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도록 포용하고 도와주는 힘이 되어주지는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생활 속에서 권력자 남편 아래 순종자 아내의 역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엘제를 결혼시키겠다는 남편의 말에 '그 아이를 원하는 사람이 오기만 하면요.'라며 수동적이고 체념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 엄마와 아이들

"곡괭이가 머리 위로 떨어져서 아이를 죽게 만들거야."

 맥주를 가지러 지하실로 내려간 엘제는 자기 머리 위로 위태롭게 매달린 곡괭이를 보고 망상을 시작합니다. 위험한 곡괭이를 당장 내리는 게 아니라 상황이 주는 불안에 뛰어들어 허우적대죠. 이는 실제적 성취 없이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의 영리함을 보여주어야 했던 엘제가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자는 곡괭이가 엘제의 운명을 응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문제해결이 아닌 상황의 합리화, 남성적 힘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 자기도 모르게 내면화한 내적 모순과 불안이 곡괭이에 담겨 있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엘제의 상태는 태어나지도 않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강박적 심리로까지 이어집니다.

:: 남편과 아내

"집안일을 하는 데 이 정도 영리하면 될 것이오."

 한스는 이러한 엘제를 보며 '충분히 영리하다'며 결혼을 결심합니다. 이야기 내내 남성들이 이야기하던 영리함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그것은 '지시에 따르고 순종할만큼의' 영리함이었습니다. 엘제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관계가 한스와 엘제에게서도 그대로 반복되는 것입니다.
 지하실에서 통곡하는 엘제와 엘제 가족이 보여주는 이 결혼의 미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괜찮다고 넘어가는 것도 한스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문제를 인정하지 못하고 아무 문제 없다며 갈등을 외면하는 것은 가부장문화 속 남성들이 익힌 문제해결 방식입니다. 개인의 사정이나 상황에 대한 맥락이 제거된 채 정해진 목표에 닿는 것만이 권장되지요.

:: 가부장제 속 우리 모두의 초상

 원가족에서의 문제가 그대로 반복되고 오히려 증폭된 결혼 생활 속에서 엘제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거죠. 엘제는 극도로 불안해하며 할 일을 미루고 구강기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아분열을 견디다 못해 이렇게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웃들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내가 엘제인가? 엘제가 아닌가?"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 우리는 다른 여러 곳에 나에 대해 묻고 그 조각들을 모아 나라는 퍼즐을 완성해보려고 노력하곤 했습니다. 엘제는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이들 그리고 결국엔 엘제 본인까지, 가부장문화 속에서 기울어진 내면을 시름시름 인내하는 모두의 모습이기도 했어요.
-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내면이 분열하여 진정한 나로 살지 못하는 이 시대의 여성들,
- 남자다움이라는 틀 안에서 문제는 잊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라고만 배운 남성들,
- 틀에 박힌 성공에 매달리며 스스로의 의지를 상실한 현대인들,
- 지적 업적만을 요구당한 채, 이러한 어른들의 강박 불안을 고스란히 감내하며 살아가는 아이들..
 이렇게 엘제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가부장제 속 여성, 남성의 상처받은 내면은 물론 지식강요의 현대 교육제도를 통과하며 현대인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까지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집 저 집을 두드리며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애쓰는 엘제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황망한 열린 결말에 마음이 너무 안좋았지만 우리는 모두 이렇게 마을을 떠나는 것이 엘제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음에 동의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성찰하는데 방해가 되는 환경에서는 빨리 빠져나오는 것만이 상책이니까요. 엘제에게는 오히려 이것이 새로운 시작일 것입니다. 우리는 엘제가 딸랑거리는 조롱의 방물그물을 벗고 새로운 연대관계로 들어가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엘제가 조롱의 방울그물을 벗고 연대의 손과 만나길...


:: 옛이야기와 우리의 삶 이야기, 그 연결이 준 위로와 응원

 만 4개월동안 옛이야기 속 4명의 여주인공들을 만났습니다. 저자는 4개의 이야기에 대해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입장에서 내면 심리를 추측해나갑니다. 그리고 아래처럼 해석을 하지요.

- 재투성이 : 자신의 위대함을 끝내 믿는 인간 신비에 대한 이야기. 고통스러운 경건함 속에서 자신의 욕구를 향해 길어낸 한번의 용기가 주는 구원의 이야기.
- 가시장미 공주 : 운명적 저주(여성으로서 성적 존재가 되는 두려움)을 풀어내고 극복하는 이야기. 결핍이 투사를 통해 또 다른 운명적 관계를 만드는 이야기.
- 라푼첼 : 어머니와 딸의 자족적 공동체에서 딸이 독립하여 성장하는 이야기. 삐뚫어진 사랑에서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이야기.
- 엘제 : 과도한 요구와 체념 사이에서 자아가 분열되는 이야기. '아버지의 딸'이 '내면의 어머니'로부터 긍정되고 '진정한 자신'에게로 나아가길 바라게 되는 이야기.

 다이나믹한 운명을 살아간 옛이야기 속 여성들과 여성으로서의 우리 삶이야기를 연결지으며 인류가 오랫동안 전하고자 애써온 위로와 응원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부모로부터 내려온 운명적 저주를 사랑이라는 또 다른 운명적 관계 안에서 풀어냅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발견이기도 했고, 때로는 결핍을 통한 끌림이거나 서로를 알아보는 같은 주파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엘제와 한스처럼 가혹한 자아분열로 몰고가는 고통스러운 관계이기도 했지요. 어떠한 관계든 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데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포용 속에서 나를 설명할 언어를 찾아가면서 점점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저자는 이 과정을 아래처럼 한마디로 정의내립니다.

"자신을 찾는 것과 신을 찾는 것, 그것은 언제나 하나다."


 우리는 4개월간 옛이야기의 주인공들과 함께 우리의 어린시절을 돌아보고 지금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며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분명히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내가 나를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내 모습으로 있어도 안전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품는 관계가 필요합니다. 어렸을 때는 이를 부모에게서 기대하고, 커서는 연인 또는 결혼상대에게 기대하지요. 하지만 이제와서 깨닫는 건 그러한 관계는 비슷한 상처를 알아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달빛오두막]이라는 모임 안에서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우리는 각자의 상처에 깊이 공감하고 이를 언어화하면서 우리의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바로 서는 연습을 해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의 삶 이야기를 또 하나의 여성서사로 엮어냈습니다. 보름달 아래 그 시간들은 우리는 물론 옛이야기에 녹아든 옛 시절 여성들까지 함께 하는, 신을 향한 그리고 우리 자신을 향한 제례 의식 아니었을까요. 우리 안의 엘제가 방울그물을 벗고 일어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보고 있습니다. 현재 2기를 모집중입니다. (아래 링크)
https://forms.gle/5CSUX3djex7C7LmGA

 

달빛 오두막 2기

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하는 시간, [달빛오두막]이 4개월간 옛이야기를 통해 나의 내면을 밝혀볼 모임벗을 모집합니다. "옛이야기를 진실로 이해하려면 옛이야기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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