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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옛이야기x여성] 영리한 엘제와 함께 한 4주차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옛이야기x여성] 영리한 엘제와 함께 한 4주차

고래의노래 2021. 11. 14. 09:24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봅니다. 네번째 주인공은 영리한 엘제입니다. 영리한 엘제와 함께 하며 모임벗들과 나누었던 후기들을 올립니다. 현재 1기가 진행중이며, 2021년 12월경 2기를 모집합니다. 

[자기 밖에서 자기를 찾는 불가능한 여정]  

 

 엘제가 할 일을 뒤로 미루고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이를 발견한 남편 한스는 부인을 깨우는 대신 방울이 달린 커다란 그물을 그에게 씌운다. 잠이 깬 엘제가 움직일 때마다 방울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혼비백산한 엘제는 말그대로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상태에 빠지고 만다. 

 

 저자는 한스가 엘제에게 방울달린 그물을 던지는 장면을 둘의 결혼생활 상태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해석한다. 지시와 순종이라는 종속적 결혼에 엘제는 묶이지만 어리숙한 엘제와 함께 조롱의 대상이 되기 두려웠던 한스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내를 조롱한다.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가볍게 넘겨버리려고 하는 한스의 태도로 인해 엘제의 내면갈등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닿았어야 할 질문에 도달한다. 

 

"내가 엘제인가, 엘제가 아닌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낯설지가 않다. 나라고 여겼던 허상이 무너진 자아분열 상태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엘제의 저 장면에서 웃을 수 없으리라. 인간의 삶은 '나 자신을 아는' 과제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진정 나인가?'라는정체성의 질문에 닿으면서 엘제는 깨어날 희망과 만난 것이다. '나'를 찾기 위해 엘제는 맨 처음으로 당연히 자기 집을 향한다. 그러나 남편 한스는 집에 이미 엘제가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내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분노한 부분이다. 저자도 '이순간 이 세상 어떤 한스도 용서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한다. 한스는 엘제의 문제를 끌어안을 생각이 없다. 그리고 선언한다. 소외되고 조롱당하는 그 상태가 바로 너 자신이라고.

 

[불안의 그물 풀어내기]

 

 원가족은 물론이고, 새롭게 맺었던 가족관계에서도 소외당한 엘제는 이리저리 문을 두드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다. 그러면서 점점 마을 밖으로 사라진다. 저자는 이 이야기보다 끔찍한 결말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랬다. 이야기 속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이것 봐, 얘 참 웃기지?'라는 조롱의 분위기 속에서 그 대상인 엘제를 향해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영리한 엘제를 방울그물에서 풀어줄 사람이 등장하지 않은 채 이야기는 끝나버린다. 영리함을 요구하되 성공을 바라지않는 모순된 아버지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도록, 존재를 세우는 연대감을 맺을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이 엘제의 과제로 남는다.  저자는 엘제에게 '어머니적인' 무조건적 받아들임의 관계가 필요하며 그것은 결혼이라는 제도와 가족이라는 운명보다는 열린 형제애와 진실한 우애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친밀함 속에서 

자신의 본질이 스스로에게 투명해질 수 있는 사람을 

최소한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한 사람을 찾아 헤매였던 지난 날들이 떠오른다. 그런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나를 구원해줄 꺼라는 기대를 아프게버리고, 신에게 그 사랑을 받고자 종교를 붙잡았던 때, 종교가 죄악시하는 행위를 해버림으로써 그 끈마저도 놓치고  방황하던 시기..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해 내가 신에게 다가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던 것까지.

 

 저자는 그릇된 길로 이끄는 요구를 송두리째 거부하고, 그렇게 요구하는 누군가와의 갈등과 투쟁을 선택하는 용기를 통해서만 자기 실현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 다른 이과 잘 지내기 위해 스스로와 투쟁하는 것은 멈추어야 한다. 그것은 '평온하면서도 조용하고 목표지향적인 발전'일 것이다. 

 

 사실 엘제의 부모와 한스 또한 모두 자기 자신의 과제를 향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상처입히고 상처주는 그 톱니바퀴에서 누군가 하나가 '떠나버린다'면 그것은 실로 모두에게 축복의 시작일 것이다. 그러므로 엘제가 마을을 떠난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마치 읽은 이에게 과제를 남기듯이. 나는 이야기를 어떤 결말로 이어가고 싶은가? 엘제는(그리고 엘제이기도 한 나는)그런 결말로 향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자신을 찾는 것과 신을 찾는 것, 

그것은 언제나 하나다."

 

 책의 마지막 구절에 심장이 덜컹거렸다. 막둥이를 보내고 자아분열의 경험을 통과하며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지 매년 돌아보곤 한다. 얼마전 오랫동안 반복해서 진행해왔던 [내 안의 여신찾기] 모임에서 막둥이에 대해 이야기한 후 후기에서 나는 이렇게 썼었다. 

 

"지금의 내가 막둥이와의 만남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내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막둥이가 그렇게 죽었어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신의 뜻으로 그렇게 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한 생명이 누군가의 성장을 위해 희생당하기로 계획될 수 있단 말인가....막둥이가 나에게 온 것, 그리고 그렇게 보냈던 것에 대해 어떠한 이유를 찾는 것을 난 포기했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다만 '영원'을 믿지 않던 내가 '영원'을 바라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이토록 믿게 된 것은 막둥이와 만났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신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사건을 통과하며 오히려 신에게 다가갔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다."

 

 마치 저자의 저 글귀가 내 글에 대한 하느님의 답인 것만 같았다. 내 미래를 그리듯, 엘제의 뒷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엘제가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 사랑의 연대에 연결되기를. 나 또한 그런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기를.

 

[내가 이어쓰는 엘제 뒷이야기]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았던 '선량한' 엘제는 해가 떠올랐을 때 쯤 다른 마을에 당도했다. 어둠이 걷히자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그물이 뚜렷히 보였고 엘제는 이를 벗어냈다. 이제까지 본 적 없던 새로운 마을풍경이었지만 엘제는 두렵기보다오히려 왠지모를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밤사이 내내 걸었던 탓에 무척 허기졌다. 그리고 처음 다다른 집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집주인이 나오자 엘제는 말했다. "밤새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너무 지쳤고 배가 고픈데 먹을 걸 좀 주시겠어요?" 내가 누군지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짜피 아무도 엘제를 모르는 곳이었으니. 집주인은 과부였다. 자신도 먹을 것이 넉넉치 않았지만 엘제를 안으로 들이고 빵 한덩이를 내어주었다. 이제 이 작은 인심에 기대어 엘제의 새삶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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