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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x여성] 영리한 엘제와 함께 한 3주차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옛이야기x여성] 영리한 엘제와 함께 한 3주차

고래의노래 2021. 11. 10. 10:26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봅니다. 네번째 주인공은 영리한 엘제입니다. 영리한 엘제와 함께 하며 모임벗들과 나누었던 후기들을 올립니다. 현재 1기가 진행중이며, 2021년 12월경 2기를 모집합니다. 

[내면은 보지 못하는 남편]

 

영리한 엘제의 남편은 엘제와 가족들의 '지하실 안 기행'을 보고도 "집안일을 하는데 이 정도 영리하면 될 것이오."라며 엘제와의 결혼을 결정한다. 영리한 엘제가 '정말 영리해야' 결혼하겠다고 엄포를 놓던 것치고는 김빠지는 일이었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엘제가 정말 영리하다고 느꼈을까 궁금했는데 저자는 남편 한스의 내면을 분석하며 이를 해석한다.

한스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 눈 앞에 드러난 문제를 문제삼지 않고 평온함으로 강력하게 돌아가고자 한다. 이것이 저자가 파악한 한스의 문제이다. 한스가 엘제를 '충분히 영리하다'고 한 것은 실은 독자적 사유능력이 없이 남편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아내로서 합격점이라는 의미이다. 한스 같은 인물은 문제를 인정하고 터놓은 일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의 가정에서 탄생한다. 그는 이러한 태도를 고스란히 결혼 생활에 적용하는데, 한스의 결혼생활 규칙이라며 저자가 제시한 것들이 핵심을 찌른다. 

1. 문제란 없다.
2. 문제가 있어도 너와 상관없다
3. 문제가 상관있어도 문제 자체는 변화시킬 수 없다. 
4. 변화시킬 수 있다고 요구하면 분노와 흥분으로 반발한다. 
5. 상대가 상처를 받았다면 배려와 보호로 자상함을 어필한다. 

문제를 직시하지 않기위한 가련한 고군분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고순환으로 빨려들어간 파트너가 겪게 될 답답함이 눈에 선하다. 아주 전형적인 남편과 아내 사이의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부장제 아래의 남자들은 '남자다움'이라는 틀에 갇혀 자란다. 개인적 어려움을 호소하지 못하고 '할 수 있다!'는 깃발 아래에 모여 문제들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아내가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왜 이렇게 사사건건 불만이 많냐!'며 화를 내거나 아예 회피를 해버리는 남편들이 얼마나 많은가. 페미니스트를 '예민녀'들로 만들어버리는 사고흐름 또한 여기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서글픈 사실은 저자가 지적했듯이 한스는 문제를 회피해 도망갈 여지가(일, 지위, 주변인과의 관계 등) 있기에 결혼을 견딜 수 있지만, 엘제는 자신을 질식시키는 상황을 의무적으로 긍정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면의 부대낌을 견디지 못하고 엘제는 퇴행을 하기 시작한다. 

[문제를 회피하는 구강기적 퇴행]

스스로 생각하는 걸 멈춰야 견딜 수 있는 결혼생활에서 독자적 행동이 요구될 때 엘제에게는 위기가 찾아온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하기 싫다는 강렬한 감정에 압도되는데, 그 일이 자신에게는 과도한 요구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무런 요구도 없었던 구강기 시절로 퇴행하여 '죽을 먹기' 시작한다. 저자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꿈뜨게 미루는 것을 '내적 파업' 상태라고 명명하며, 일을 앞두고 흔히 나타나는 구강기적 퇴행으로 마구 먹어대거나 흡연, 음주에 빠지고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을 언급한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이 문제가 영리한 엘제의 심리였다니...시작이 힘든 사람들의 문제는 흔히 '완벽주의'로 이야기된다. 아니면 무기력한 의지의 결핍을 문제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가 '과도한 요구와 체념 사이에서 갈리던' 엘제의 심리라고 한다면 문제를 보는 관점부터가 달라지게 된다. 문제는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너무 과하다는 것이며, 완벽하게 하고 싶다기 보다는 '아버지의 과도하고 또한 모순된 요구'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과제를 정하고 작업하는 방식을 정의할 수 있고,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분별할 수 있으며. 
때로는 불완전성을 감수할 수 있고, 
작업 프로그램의 많은 요소를 우회하거나 포기할 수 있을 때에만, 
한마디로 의존적 순종이 아니라 독립적 인간의 자발적 창의성으로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에만 

심각한 작업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엘제가 과연 이러한 상태에 이를 수 있을까? 라푼첼에서처럼 현실 너머의 희망을 선물받을 수 있을까? 영리한 엘제의 기이한 결말을 아는 지금, 그 결말을 어떻게 희망으로 해석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저자와 함께 엘제의 마지막을 숨죽이며 따라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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