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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오두막] 결국 그 모든 게 나였다! : 라푼첼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달빛오두막] 결국 그 모든 게 나였다! : 라푼첼

고래의노래 2021. 10. 21. 19:30

갑자기 추워진 10월의 주말, 16일 밤에 라푼첼과의 만남을 나누는 달빛오두막 모임이 열렸습니다. 

저자는 라푼첼을 삐뚫어진 사랑에서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정의합니다. 특히나 딸과 어머니로 대표되는 부모와 자식의 자족적 공동체에서 딸이 독립하여 건강한 자신으로 다시 서는 이야기이지요. 스스로 채우지 못하는 욕망을 상대에게 투사하고 서로가 충만하게 채워졌다고 착각하는 관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를 종속적으로 만들지 않는 관계로의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성장 스토리입니다. 

 

많은 옛이야기들에서 주인공은 어린 시절에 혹은 탄생 전부터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부모입니다. 부모가 자신이 경험한 불행의 구조를 자식에게 정신적 유산으로 건네줄 때 저주의 조건들이 갖추어지는 것이죠. 이전에 함께 읽은 재투성이와 가시장미 공주에서도 주인공들의 삶에 첫단추를 잘못 끼워주는 사람은 스스로 바로 서지 못한 부모들이었습니다. 라푼첼에서는 이러한 정신유산의 영향이 극적으로 드러나고, 저주의 진행과정이 캐릭터별로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게다가 각 캐릭터들은 극복해야 하는 개별 과제들로 서로 촘촘하게 엮여 있습니다.  그 놀라운 관계성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었어요. 

 

:: 어머니는 마녀이다. 

라푼첼의 어머니는 임신 중에 뒷창문 너머로 보이는 마녀의 정원에서 라푼첼(들상추)를 보고 죽을 듯한 식욕에 휩싸입니다. 그의 절박함에 남편이 결국 라푼첼을 따러 나서고 마녀를 만나게 되죠. 그리고 라푼첼을 따가는 대신 태어나는 아이를 마녀에게 줘야하는 거래를 하게 됩니다. 저자는 구강기적 욕구(라푼첼을 먹고 싶은 간절함)로 상징되는 어린시절로의 회귀소망을 어머니가 딸을 낳음으로써 해소하려 한다고 해석합니다. 아이는 원했지만 남편의 사랑은 원하지 않았기에 아이는 철저히 '어머니의 아이'로 귀속됩니다. 마녀는 곧, 딸을 통해 두번째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뭉쳐진 어머니였습니다. 

 

라푼첼을 탑에 가둔 마녀는 딸을 고고히 드높이며 황금머리칼로 상징되는 딸의 여성성을 통해 자신 또한 고귀해지는 경험을 하고 싶어합니다. 나르시시즘적 판타지에 빠진 채 헛된 자존감을 쌓아올린 라푼첼과 마녀는 기묘하게 서로의 욕구를 채워주는 이중단일체의 결합을 하게 되죠. 이 기이한 상호성은 너무나도 견고해서 서로의 독립을 이루기위해선 고통스러운 내면의 분열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 마녀는 라푼첼이다.

왕자는 독립을 향해 라푼첼을 각성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라푼첼의 노래를 듣고 라푼첼의 고독을 알아채고 마녀를 따라해 라푼첼과 만나게 되지요. 탈출을 꿈꾸던 두 사람은 라푼첼의 무의식적인 고백으로 들통이 나게 되는데, 마녀는 라푼첼을 탑에서 추방하고, 왕자는 마녀와 마주했다가 탑 아래로 떨어져 눈이 멉니다. 

 

저자는 왕자와 라푼첼을 처벌하는 마녀가 라푼첼 내면에 어머니가 심어놓은 초자아라고 이야기합니다. 라푼첼은 어머니와의 연결을 소홀히 하는 데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고,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불행의 톱니바퀴로 돌아가고자 왕자과 맞서죠. 왕자는 마녀의 얼굴 뒤에 가려진 라푼첼의 구원신호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왕자는 눈이 머는 것으로 상징되는 어둠의 시기를 지나게 될 것 입니다. 

 

이렇게 라푼첼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 어머니와 마녀 그리고 라푼첼 셋은 마녀라는 교집합을 통해 하나의 커다란 내적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의 로망인 풍성한 긴 머리카락의 상징으로만 생각했던 라푼첼 이야기에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서사가 있었다는 게 놀라웠어요. 

 

나르시시즘의 탑에 갇혀 땅(현실)은 뿌옇게 보일 뿐...

:: 우리는 라푼첼이고 마녀이며 왕자다. 

우리는 삶을 빼앗긴 라푼첼에게 이입하기도 하고, 자식에게 과도하게 몰입하며 두번째 삶을 살고자 하는 마녀로부터 나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부터 누군가를 구원하려 시도했던 왕자의 좌절과 아픔에 공감하기도 했지요. 

 

가장 절실한 존재이자 그렇기에 가장 위험한 존재이기도 한 어머니와의 관계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과한 돌봄속에서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엄마와 반대의 길을 가고자 했던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를 통해 삶을 다시 살고자하는 집착에 진저리치면서도 나를 생명줄로 붙잡고 있는 엄마의 절박함에 엄마의 바람대로 살아왔던 것을 자각하면서 내 안의 라푼첼을 서럽게 발견하기도 했어요. 엄마의 기쁨이고자 했던 나의 삶, 엄마의 칭찬으로 나를 세웠던 지난 날이 떠올랐습니다. 

 

그러한 고리를 끊어내고자 애썼던 노력을 딸이 몰라주는 것 같아서 서러움을 느낄 땐 나에게서 마녀의 향기를 느껴 놀라기도 했어요. 마녀가 외부와 차단된 탑에서 라푼첼을 통해 충족감을 느끼는 모습에서는 아기와의 고립된 육아시절을 지친 삶을 충전하는 휴식기로 느꼈던 내 모습이 겹쳐보였습니다. 아이들이 없으면 간단한 식사도 그냥 건너뛰어버리고 마는, 아이들을 통해 일상을 살았던 시절도 떠올랐습니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어떻게 느꼈건 간에 나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채우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기대어 충족하려했던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와의 끈끈한 결합 속에서 괴로워하는 상대를 보며 그를 구원하고자 노력했던 내 모습에서는 왕자가 보였습니다. 그런가하면 라푼첼인 내 옆에서, 파트너가 때때로 마녀와 마주치며 어둠 속 절망감을 통과했겠구나 싶어 미안한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안에서 어떤 캐릭터를 발견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가 현실에서 경험했던 관계의 성격에 따라 다양했습니다. 라푼첼이라는 캐릭터에 강하게 몰입되어 있던 저는 다른 분들의 다양한 투사를 들으며 다각도로 저를 다시 바라볼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러한 경험과 투사들이 모아지는 지점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내가 충족시키고 싶었던 욕구대로 상대와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렇게 맺어진 관계에 이끌려갔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옛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응원

책에서 저자는 어머니는 딸의 독립을 저주할 수 있을 뿐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엄마와의 내면적 독립의 계기는 우리에게 다양한 방향에서 찾아왔습니다. 엄마의 무한 돌봄이 불가능해질만큼의 물리적 거리가 생기자 나 스스로의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연한 심리삼당과 분석을 통해서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했어요. 그런가하면 엄마의 신체적 쇠약으로 인해 에너지의 쏠림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거리감이생기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관계 속에서의 우리가 경험한 모든 부대낌과 노력들이 결국 진정한 사랑을 향한 여정이구나 싶었습니다. '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어도 불안하지 않은' 관계 안에서 나 자신으로 바로 서고 싶은 마음을 쫓는 여정말이죠. 

이야기의 마지막에 쌍둥이를 낳으며 혼자 살아가던 라푼첼은 눈이 멀어 방황하던 왕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라푼첼의 눈물이 왕자의 눈을 뜨게 하지요. 둘은 이제 바로 서서 서로를 바라보게 됩니다. 

 

현실의 여정을 동화가 응원하는 방식은 현실의 한계를 넘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화가 어른들에게 필요한 이유겠지요. 우리가 옛이야기에서 찾고 싶었던 위로와 붙잡고 싶었던 메세지 또한 이런 것이었습니다. 긴 고독의 시간을 지나 마주한 라푼첼과 왕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지금 외롭고 힘들어도 살아가라고, 나에게 필요한 그 일들을 통과한 뒤에 나의 영혼이 기억하는 그 곳에 닿게 될꺼라고 말이죠. 

 

다음 한달동안은 '영리한 엘제'와 함께 합니다. 어리숙한 블랙 코메디에 감춰진 깊은 이야기들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보고 있습니다. 현재 1기가 진행중이며, 2021년 12월경 2기를 모집합니다. (아래 링크)

https://forms.gle/8uoMKUZR9f5VbB2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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