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내 안의 여신찾기

[옛이야기x여성] 라푼첼과 함께 하는 3주차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옛이야기x여성] 라푼첼과 함께 하는 3주차

고래의노래 2021. 10. 12. 11:24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봅니다. 세번째 주인공은 라푼첼입니다. 라푼첼과 함께 하며 모임벗들과 나누었던 후기들을 올립니다.

[마녀와 왕자, 둘로 나뉜 세계]

 

 라푼첼의 구원에 관한 저자의 해석을 읽으며 아슬아슬한 벼랑 옆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구원 작업은 몇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데, 한걸음만 잘못 내딛어도 자기멸시와 죄책감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다. 

 

1. 라푼첼의 언어를 이해하라. 

 

 라푼첼의 구원은 매우 힘든 과정을 거친다. 그것은 '라푼첼이라는 나라의 언어'를 익혀야 가능하다. 그래야 표현 이면의 진실을 찾아내어,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 우선 탑에서 부르는 라푼첼의 노래를 들으며 아름다운 선율 안에 숨겨진 메세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라푼첼이 '나르시시즘적 순결함 속에서도 누군가 자신을 고독의 감옥에서 끌어내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에만 구원을 손길을 건넬 수 있다. 게다가 라푼첼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접근 방식을 모방해야 한다. 라푼첼과 어머니의 소통방식과 관계성을 이해하며 스며들 듯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동화는 인간의 언어가 다의적일 수 있으며 

심장의 진실에 가까이 가려면 말을 그저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보여준다."

 

 나는 언어에 대해서는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표현 너머의 이해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표현된 의미만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도 강하다. 언제나 빙빙 돌려 표현하는 엄마의 화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개념없는 아이'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눈치게임에는 언제나 젬병이었고 그래서 '안전하게' 언어의 표면적 의미만으로 오해없이 소통하고자 했다. 주변에서 모두 아니라고 해도 그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 '그 사람의 진실은그렇다'고 믿었다. 그래서 '상대의 언어'를 익혀서 다가가야 한다는 왕자의 과제를 읽자마자 라푼첼이 부러우면서도 피곤함이 밀려왔다. 상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말이 아니라 심장의 소리를 들을 것, 언어의 한계에 갇히지 않으면서 언어의 힘을 느끼고픈 내가 다시금 되새겨야 할 부분인 것 같다. 

 

2. 라푼첼은 자아분열을 거치게 된다.

 

 게다가 왕자와의 사랑은 치명적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데, 이는 라푼첼에게 자아분열을 일으킨다. 

어머니와 라푼첼의 관계는 건강하지 못하지만 자족적으로 서로에게 치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어머니는 라푼첼을 통해서 삶을 살아가며, 라푼첼은 어머니로부터 받는 자아의 고양감으로부터 거짓된 만족감을 얻는다. 스스로의 삶을 향해 독립을 하기 위해서 라푼첼은 의무와 계율의 세계인 어머니와 소망과 꿈의 상징인 왕자, 두 세계에서 분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너 때문에 산다.'는 엄마가 가장 행복해보일 때는 우수한 성적표를 가지고 왔을 때였다.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나가지 않게 붙잡기 위해서라도 나는 우등생이 되어야만 했다. 이렇게 공부를 해야만 했던 첫 시작은 엄마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10년 즈음 되버리자 공부 자체가 나의 자존감이 되어버렸다. 간간히 학생 신분으로 허용되지 않는 일탈을 하기도 했지만, 잠시동안의 이벤트였을 뿐 결국 내가 생각하는 내 자리로 착실하게 돌아왔다. 꿈은 만화가라고 했지만 미대에 갈 생각도, 미술학원을 다닐 생각도 하지 않았다. 좋은 대학으로 주어지는 자존감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진정한자아분열은 대학 졸업 후 취직하지 않고 디자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라고 할 수 있겠다. 공부가 아니라실력으로 인정받아야하는 분야에서 나는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그 때 나는 세상에 처음으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딸이 꿈와 소망(왕자)를 쫓아 방향을 틀기 시작했을 때 엄마 또한 처음으로 좌절했으리라. 

 

 

 [추방당한 딸]

 

3. 라푼첼의 여성성에 죄가 씌워지다. (마녀의 가스라이팅)

 

 어머니는 딸의 독립시도에 배신감을 느끼며 딸을 추방하는데 이 때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린다. 저자는 이를 라푼첼의 여성성을 죄스러운 것으로 여겨 박탈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렇게 라푼첼의 황금머리칼을 여성성의 상징으로 봤을 때 라푼첼이 자신의 황금머리칼을 밧줄 삼아 탑에서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스스로 여성성을 희생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처벌에 대해 라푼첼은 정당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라푼첼은 왕자와 만난다는 사실을실수인 듯 실수 아닌 고백으로 흘려서 마녀가 왕자의 존재를 눈치채게 만드는데, 라푼첼을 그림동화 버전으로 다시 읽었을 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의 하나였다. 저자는 이를 라푼첼 안에 내면화된 처벌 불안이 너무강해서 스스로 비밀을 누설한 걸로 해석한다. 자아분열로 인한 내면의 팽팽한 긴장을 라푼첼 스스로 견디지 못한 것이다.  

 

"네가 내게 행한 것처럼 나도 네게 행하리라!"

 

이야기에서는 라푼첼이 여성성을 자각하며 독립을 시작하기에 여성성을 죄책감과  연결하는 처벌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꿈을 쫓아간 나에게 엄마가 준 처벌은 뭐였었나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상식과 개념이 없어서 정신병원에 가봐야할 사람'으로 날 몰아세웠던 그 당시의 순간들이 떠올른다. 두번째 삶이라는 기회를잃은 좌절감에 엄마는 나에게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심어주기로 했던 걸까.

 

라푼첼의 분열된 마음과 마음에 심겨진 죄책감은 어떻게 자아독립이라는 목표로 나아갈 수 있을까. 라푼첼의 고독한 노래를 이해하고 라푼첼의 언어로 섬세하게 다가가 독립이라는 변환점을 선물한 왕자는 어떻게라푼첼의 고난을 함께 하며 도울 수 있을까. 불안하고 긴장되지만 결국 라푼첼과 왕자의 여정이 행복으로 이어질 걸 알기에 안심이 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