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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옛이야기x여성] 라푼첼과 함께 한 4주차 본문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봅니다. 세번째 주인공은 라푼첼입니다. 라푼첼과 함께 하며 모임벗들과 나누었던 후기들을 올립니다.
[라푼첼 안의 마녀. 초자아의 처벌]
왕자는 마녀와 마주한다. 하지만 칼을 휘두르지도 벌을 내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무력하게 당하는 쪽은 왕자이다. 탑 아래로 떨어져 눈이 멀고 만다. 왕자는 마녀와 마주하지만, 맞설 수는 없다. 마녀가 곧 라푼첼이기 때문이다.
마녀는 어머니라는 해석에 이어 두번째 충격이었다. 어머니와 딸은 이중단일체였다. 라푼첼은 추방당했지만, 내면의 독립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딸의 내면에서 여전히 어머니는 재판관으로 눈을 무릅뜨고 살아있는 것이다.
왕자에 대한 사랑은 라푼첼이 처음으로 자아를 자각하게 만들었지만 이 때부터 라푼첼의 자아분열이 시작된다. 딸이 오로지 나만 바라보길 원하는 초자아 어머니는 딸의 욕구, 행복, 사랑으로 새롭게 세워진 인격을 처벌하려 한다. 변화는 그것이 옳은 방향이어도 불안을 일으킨다. 라푼첼은 이제까지의 정체성을 잃고 새로운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전까지 과도기의 긴장을 견뎌야 한다. 그것은 '날아오를 꺼라는 헛된 기대'를 품고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과 같은 공포다.
이 과정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대해 저자가 [빨간모자]와의 비교를 통해 해석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빨간모자]에서 할머니 분장을 한 늑대가 빨간 모자를 잡아먹는 것은 라푼첼과 마찬가지로 살인적인 초자아로 부터 내면이 정복당하는 상태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사냥꾼이 나타나 늑대의 배를 갈라 빨간모자를 구하는데 저자는 이를 중립적인 분석가가 행하는 분석 작업의 멋진 상징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라푼첼은 이렇게 제 3의 위치에서 분석을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왕자는 라푼첼 안의 마녀를 만나 눈이 멀고 어둠 속으로 잠겨버렸다. 한 순간의 만남으로 농축된 이 장면은 왕자와 라푼첼의 관계 속에서 되풀이해서 반복될 것이다. 자꾸만 이전의 불행으로 돌아가려고 자신을 공격하는 연인을 바라보며 왕자는 절망에 빠진다. 눈이 먼 왕자가 느끼는 어둠은 왕자가 이런 현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일 수 있다. 저자는 마녀의 격한 분노의 말들을 표현 그대로가 아니라 나를 도와달라는 구조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글쎄...어디까지 왕자에게 바랄 수 있을까. 이미 그는 어둠 속으로 빠지고 말았는데. 현실의 삶이라면 저자의 말처럼 이 지점에서 끝났으리라. 그러나..동화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
"최선의 의도를 품고 때때로 감동적인 노력을 하는데도
결국 자기 자신의 불행을 가져온 구조들 밖에 아이에게 남겨줄 것이 없음은 섬뜻하다."
엄마가 되고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매순간 이 지점에서 좌절한다.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발버둥치지만 어린시절에 뼈 속 깊이 박혀버린 삶의 태도는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기다렸다는듯 밀려올라왔다. 라푼첼 어머니는 남자의 사랑을 자기 삶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치명적인 정신 유산을 라푼첼에게 심어놓는다. 불행의 도돌이표로 회귀하려는 시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적이고 어이없지만, 그것은 취약한 어린시절, 내 목숨에 대한 권한을 쥔 어른 아래서 살아남기위해 배워야만 했던 것들이었다. 무엇이 감히 그 절박함을 뛰어넘겠는가!
"어른들은...동화를 통해 어떤 경우에도 절망의 한계를 결코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최대한 사랑의 권능이 행복의 힘을 발휘하도록 허용하는 법을 배운다."
그 절박함을 누르는 내면의 욕구를 동화는 이야기한다. 저자가 이야기했듯이 인간의 가장 큰 비밀은 행복에 대한 상상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화의 긴장을 이겨내지 못하고 불행의 톱니바퀴로 다시 말려들어간다고 해도, 영혼 깊숙한 곳에서 외치는 소리는 계속 된다. 그 소리는 '지금 있는 곳이 너의 자리가 아니'라며 끊임없이 심장을 잡아쥐고 흔들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기억의 힘'이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오히려 충만한 기쁨이 넘친다는 단 한 번의 경험, 그 기억은 우리의 정신 안에 계속 남아 '사랑'의 길로 한걸음 용기를 내게 만든다.
라푼첼이 세계에 대한 자족적 우월성을 포기하고 자기도 모르게 좋아한 외로움의 상태에서 벗어나 사랑을 자신이 취약해지는 굴욕이 아니라 '자기 본질과의 만남'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듯 내가 남을 필요로 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서로에게 종속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 어머니와의 자족적 의존관계 속에서 배운 감정적 얽힘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딸을 통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어머니의 욕구와
그러한 어머니로부터 드높여져 고귀한 우월성과 외로움에 중독되고,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들여다볼 줄 모르게된 딸.
익숙해져버린 불행으로의 반복되는 회귀와
그 사슬을 끊어내고 사랑 안에서 만나는 새로운 자아까지.
저자의 해석으로 바라본 라푼첼 이야기가 너무나도 내 삶의 서사같아서 많이 놀라고 아프고 위로받았다. 왕자가 감당해야했던 고통이 너무 안쓰러운 만큼 자주 내 안의 마녀와 마주했을 남편의 고통도 쓰리게 다가왔다. '정신의 왕국에서는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으며 기억은 저 깊이 어딘가에서 내리 일하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 위안받는다. 내 안의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을 '불안을 내려놓아도 좋을, 사랑의 장소'을 더듬어 찾아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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