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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함께 읽기/옛이야기와 여성

[옛이야기x여성] 라푼첼과 함께하는 1주차

고래의노래 2021. 10. 1. 12:54

* [달빛오두막] 모임에서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읽기'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 여성과 여성들의 이야기, 이 둘을 연결해봅니다. 세번째 주인공은 라푼첼입니다. 라푼첼과 함께 하며 모임벗들과 나누었던 후기들을 올립니다.

 

황금으로 짠 것 같은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 라푼첼 이야기는 이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력해서 다른 모든 요소들을 삼켜버린 것만 같다. 저자의 해석을 따라가보니 라푼첼은 단순히 여자아이들의 긴머리 로망을 대리충족시켜주는 동화가 아니었다. 

 

그림형제본 라푼첼 이야기에서 새롭게 알게 된 점

  • 라푼첼 이름은 상추를 뜻한다.
  • 마녀는 라푼첼이 실수로 이야기하기 전까지 왕자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 라푼첼이 마녀에게서 받은 처벌은 황야로 쫓겨나는 것이다.
  • 라푼첼은 쌍둥이를 낳았다.
  • 마녀는 처벌받지 않는다. 

 

[사랑의 두 얼굴, 어머니와 마녀] [아버지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

 

 라푼첼 어머니는 아이를 간절히 바라던 중 임신한다. 그리고 집 뒷창문으로 보이는 마녀의 정원에서 자라는라푼첼(들상추)를 보고 참을 수 없는 식욕을 느낀다. 그리고 남편에게 "라푼첼을 먹을 수 없다면 죽을 것 같다."고 하면서 금지된 마녀의 정원으로 남편을 보낸다. 거기서 남편은 마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라푼첼을얻는 데 성공하지만 태어날 아이를 주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라푼첼 어머니는 마녀다. 저자는 이것을 명백히 하고 이야기의 해석을 시작한다. 그 관점으로 바라보자 이야기가 담고 있는 모든 요소들이 맞아떨어졌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방법으로 이야기를 살핀다. 동화를 해석하는데는 동화가 다루고자 하는 질문에 따라 여러가지 방법들이 사용될 수 있겠지만 주로 인생 전반기의 갈등은 정신분석법을 활용하는 것이 요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푼첼은 삐뚫어진 사랑에서 다시금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며, 사랑으로 가는 장애물을 이해하고 제거하는 것은 정신분석의주요 관심사이기도 하다. 

 

 한 여인이 아이를 원한 것과 라푼첼을 먹기를 원한 것은 그 간절함에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생식과 출산의 판타지와 구강적 욕구과정으로 나타난다. 구강적 욕구는 어린시절로 다시 회귀하고픈 억압된 소망과 이어지는데 그 소망이 출산과 연결되면서 아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낳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어머니의 아이'이고 아버지에게는 속하지 않는다. 

 

 여인은 유아적 시기에 고착된 채 자신의 성적인 삶의 부분을 무의식의 뒷마당에 숨겨놓았다. 아이 속에서 살기 위해 아이를 낳길 바라고 남편을 자신의 뒷마당으로 보내지만, 남편이 마주하는 건 무시무시한 위협이다. 아이를 원하지만 사랑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아이는 뒷마당의 주인인 마녀의 소유가된다. 딸들은 오이디푸스 시기를 거치며 어머니에게서 분리되지만 라푼첼은 어머니의 삶에 고착되고 성장과정에서 건강한 정신적 독립을 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마녀부분은 딸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결국 딸은 사랑에 눈 뜰 것이고 이 때 둘 사이에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가시장미 공주와 라푼첼은 시작이 비슷하다. 가시장미 공주의 왕비와 같이 라푼첼의 어머니는 모두 어린아이 시절로의 회귀를 소망한다. 왕비가 어린시절로 가려는 것은 일찍 왕비의 근엄한 역할을 해야 했기에 어린시절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인데, 라푼첼 어머니의 서사가 무엇일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둘 다 비슷하게성적인 부분을 삶으로 건강하게 가져오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는 원했지만 사랑을 원하지는 않았고 그 결과로 왕은 아버지 역할에 집착하게 되었으며 라푼첼의 아버지는 딸의 삶에서 사라지게 된다. 또 조금 다른 점은가시장미 공주가 겪게되는 여성성의 거부가 아버지의 성적인 억압과 연관된다면, 라푼첼은 어머니 본인의성적인 억압이 어린시절의 소망과 굉장히 긴밀하게 얽혀 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듯다른 두 이야기를 비교하며 살펴보아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물이 보살피고 사랑하며 생명을 주는 동시에 위협하고 압박하고 질식시킬 수 있다."

 

 라푼첼 어머니가 마녀라는 이야기에서부터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어린시절의 회귀욕구인지는모르겠지만 나의 삶 안에서 다시 한번 삶을 살아내고자 했던 엄마의 무시무시했던 욕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외동딸인 나에게 쏟아지는 질식할 것 같은 관심과 집착. 그게 너무 싫으면서도 내가 삐뚫어지면 엄마가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모범생으로 지냈던 학창시절. 대학입학과 동시에 집을 떠나게 되면서 맛보았던 해방감. (나는 시험결과를 보지도 않고 수능을 치고온 당일 저녁 교과서와 참고서를 다 버렸다.) 하지만 하숙집과 자취집에 한달에 몇 번이고 올라오면서 나를 숨막히게 했던 보살핌...자신의 세례식에 오지 않았다고(오라고 얘기한 적 없음) 나보고 정신병원에 가보라고 전화기 너머로 소리지르던 일, 택시를 태워보낼 때 사위가 택시기사에게 돈을 준 것은 자신을 무시한 처사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흥분하던 것...그리고 아기를하늘로 보낸 딸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에게 돌봄을 부탁하지 않아 서운하다고 토로한 일.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자신의 삶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자기중심적 삶을 살고자 했던 엄마를 가진 딸이 어떤 심정인지 나는 안다. 라푼첼이 맞이하게 될 숨막히는 시간들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라푼첼이 맞이하는 행복한 결말에 이르면 오히려 내 마음이 더 위로받게 될까. 저자가 말했듯 '아이들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기에 우리가 동화를 읽어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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