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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일상학자 2기] 일상공유서 : 해석에 대한 욕구와 해소에 대한 죄책감 사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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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학자 2기] 일상공유서 : 해석에 대한 욕구와 해소에 대한 죄책감 사이

고래의노래 2022. 2. 23. 16:43

내 안의 욕구에 성큼 다가간 느낌이다. 머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 몸이 감각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내 경험이 포함된 주제에 대해 감정적인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객관적으로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어서 결국 나는 철저히 주관적인 경험을 꺼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나의 경험을 글로 쓰길 원한다. 아니, 구체적인 방법으로선 꼭 글이 아니어도 될 것이다. 단지 그 경험을 해석할 수 있길 바란다. 해석이라고 했을 때 떠올려지는 행위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이기에 글이 맨 처음 떠올랐을 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과정을 통해 후련해질 자격이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모호한 안개 속에서 영원히 헤매이는 것, 그게 내가 마땅히 받아야할 형벌이 아닌가 해서.
욕구와 죄책감 사이에 끼어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일상학자 모임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성성을 찾아서'라는 연구 주제에 대해 왜 자아찾기가 꼭 '여성'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 다른 벗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연구동기라고도 할 수 있을 그 이유를 찾아들어갔을 땐 결국 막둥이와의 경험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 해석되지 못하고 내 안에 부유하는 그 경험을 섣불리 꺼내놓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언젠가는...'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욕구를 선명하게 직시하고 그 욕구를 거스를 수 없는 상태까지 와버렸다. 5년만에 맞이한 변화였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지만 천천히 나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해석에 대한 욕구와 해소에 대한 죄책감이 팽팽히 맞선 긴장상태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아직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게 되었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총기사건 가해자의 엄마가 죄책감과 자괴감, 그리고 풀리지 않는 질문으로부터 자신만의 소명을 발견하기까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사랑스러운 아이, 좋은 부모, 최선의 양육이라 믿었는데 결론은 총기난사범이라면...'괴물'의 경계가 명확한 것이 아님을, 부모와 주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저자는 자신이 놓친 한가지를 또 다른 고통을 막기 위해 어렵사리 정돈하고 꺼내놓는다.

정말 감동적이었던 것은 저자의 직장 상사가 저자를 배려하는 태도였다. 다시 직장에 복귀하도록 독려하고(회복을 위해선 오히려 일이 필요하다며) 저자는 물론 주변 동료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안전한 시스템을 만든다. 그의 고통에 판단없이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 덕분에 한 사람의 고통이 모든 이를 위한 기여로 바뀌었다.
"나는 내 아들 때문에 망가지거나 스러진 삶을 기리며 살려고 애쓴다. 내가 하는 일은 그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또 내가 아직도 딜런에게 느끼는 사랑에 매달리기 위해서 일한다. 아무리 끔찍한 일을 저질렀더라도, 딜런은 언제까지나 내 아이다."

'경건한 무기력'
박찬욱 감독이 추천의 글에서 쓴 이 한마디만큼 이 책을 잘 표현한 말은 없을 것 같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것들 속에서 그는 마침내 자기만의 중심을 잡았다. 내가 알았던 나, 아이, 가족, 세상이 온통 뒤흔들리는데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홀로 그 혼돈을 통과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16년 시간들에 경의를 표한다. 나도 언젠가 나만의 중심을 찾을 수 있길...

* [일상학자]는 각자 지금 집중하고 있는 주제의 '학자'가 되어서 공부를 계획하고 과정을 함께 나누며 최종발표회로 연구결과를 공개하는 생활인들의 공부 프로젝트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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