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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일상학자] 열세번째 공유서 본문

여성들의 함께 공부하기/공부 프로젝트, 일상학자

[일상학자] 열세번째 공유서

고래의노래 2020. 11. 19. 14:07

<여성, 삶을 글로 쓰다>라는 모임을 다시 진행하기 시작했다. 지난 번 모임보다 책을 성실하게 읽어오시는 분들이 많다.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며 좋은 기회로 이야기해주셔서 보람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 참여자분들은 이제까지 내가 만났던 모임벗분들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계셨다. 은유의 책을 불편해하셨는데,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너무 많이 고민을 하며 열심히 사는 게 불편하다고, 이전 회사에서의 여자 상사들이 떠오른다고 하실 때는 마음이 아팠다. 가부장제 사회의 권위 아래에서 한 쪽은 힘을 얻으려 아버지의 딸이 되고, 다른 한 쪽은 자기를 누르는 힘을 조각내려 애쓰는 전사가 된다. 전혀 다른 태도이지만,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문화의 영향이라는 점은 똑같다. 그 사이에 끼어 있다가 지쳐버린 것 같았다.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말씀 아래 힘들었던 긴 시간들이 비치는 듯 했다.

다른 모임에서는 비슷한 맥락 아래서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두 모임벗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었다. 그것은 삶에 지진이 일어난 듯 한 변곡점이었지만 여성의 몸에 쏟아지는 당위들을 견뎌내느라 스스로의 마음을 살필 여유는 없었다. 모임 안에서 그 때를 이야기하며 모임벗들은 서로 "그 마음을 안다."고 하셨다. 선택은 달랐지만 여성의 몸에 대한 가부장제의 틀 속에서 몰아붙여졌던 심정..거기에서 만나서 서로를 위로했다. 그건 선택을 향한 판단 너머에서 내가 붙잡고 싶던 바로 그 마음이었다.

여성의 몸와 영혼에 가해졌던 폭력의 역사가 여성들에게 남긴 상처가 아프다..각기 다른 모습이어도 결국 그 너머에서 보이는 건 그 상처들이다. 친구가 나에게 문제를 '여성'으로만 카테고리화하는 건 오히려 문제를 제대로 보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여성의 문제'을 넘어서야 거기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여성들과 이야기 모임을 하면서 관계를 넘어 초월감을 느낀다...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가 이런걸까. 그 연결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자꾸 모임을 만들어대는 것 같다.

그룹꿈투사 워크샵이 종료되었다. 내가 불편했던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해석되지 않지만, 분명했던 건 다른 사람의 꿈을 듣는 것만으로도 인류의 무의식적 원형과 닿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 워크샵에 4번째 참여하신다는 분도 계셨다. 하면 할수록 얻는 것은 많을 것 같다.

옛이야기와 꿈, 여성들과의 이야기모임을 통해서 내가 알아가고 있는 것은, '힘'은 바깥으로의 힘말고 안으로 품는 힘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생에서 나에게 오는 것들을 감당하고 품어가는 힘. 나에게 강요되는 것들에 휘둘리고 꺾이지 않으면서 삶의 주기가 나에게 가져오는 것들을 환대하는 것. 생각을 잘 갈무리해서 정돈해보아야지. 페미니즘의 원형에 대해 처음 품었던 가설과 조금 결이 달라지고 있다. 고고학자가 유물 발굴하듯, 생각의 잔가지들을 살살 털어내야 한다. 집중하지 않으면 털어내던 그 도구에 망가져버릴지도!

 

 

생활인들의 공부 프로젝트 모임, [일상학자]는 각자 지금 집중하고 있는 주제의 '학자'가 되어서 공부를 계획하고 과정을 함께 나누며 최종발표회로 연구결과를 공개하는 1년 과정의 모임입니다. 한 달에 1~2번 만나 각자의 공부 과정을 공유하고 검토하며 그 결과를 '냇물아 흘러흘러'에서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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