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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삶, 글] 사연과 사연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틈새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 삶을 글로 쓰다

[여성, 삶, 글] 사연과 사연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틈새

고래의노래 2020. 11. 13. 22:51

 [여성, 삶을 글로 쓰다] 마지막 모임에서는 여성의 생애주기 중 마지막, 노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노년의 여성이 쓴 에세이집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를 함께 읽고 우리의 미래를 함께 그려보았어요.  

 이 책은 저자가 만난 사람과 들은 이야기, 시대 속의 삶, 그리고 저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섞여 있습니다. 서로를 품고 위로했던 마을 공동체와 마음 속 열정의 불씨를 고요한 일상 속에서 소중히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518과 유신헌법개정 등 격동의 시대를 통과했던 경험과 시대의 변화에 휘청이면서도 진실하고자 했던 한 사람의 삶이 글로 쓰여졌습니다. 앞서 읽은 3권의 책들이 경험을 통해 생각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면, 이 책에서 저자는 생각에 앞서 경험과 사연을 펼쳐놓습니다. 앞선 세대 여성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글을 읽으며 우리는 '엄마'를 떠올리고 '우리의 미래'를 상상해보았어요.


엄마의 삶이 품은 사연들


 돌봄과 살림의 일들에 파묻혀서도 마음에 다른 열정을 품고 살아왔던 저자는 지금 자신과 같았을 엄마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합니다. 무언가를 살뜰히 돌보고 꼼꼼히 살피는 엄마들의 역량은 다른 쪽으로는 전혀 길을 찾지 못하고 '하루종일 안겨진 시간을 오로지 남편 밥상에 함축시켜 앞에 놓아주는' 방향으로만 허락되었습니다. 질문과 생각은 억압당하고 오로지 하나의 역할만 강요된 엄마는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지만 열에 찬 걸음이 향한 곳은 장독대 뒤였지요. 

 엄마를 생각하기만 해도 울컥해지는 마음은 아마도 이렇게 연료처럼 태워진 한 여성의 다른 가능성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엄마를 떠올리면서 달의 이면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삶, 열정, 소망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모임벗 중에는 부모님과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던 분도 계시고, 미처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분도 계셨어요. 그리고 지금은 곁에 계시지 않아서 아쉽고 그립기도 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혼인을 한 사람들은 긴 시간을 견뎌냈고, 희망이라면 자라는 손주들이었다.
결혼해서 만난 법도는 충격이었고 그 다음은 살아내는 정도의 무기력이 뒤따랐다...
어른들끼리 정혼하여 속수무책으로 시절을 보내버린 할머니들은 앞산은 높고 들녘은 턱없이 좁아
먹는 것조차 넉넉지 않은 곳에서 실어증에 걸린 것처런 있다가 나를 만났다.”


 그 시절의 여성들은 대부분 한 쪽 방향의 삶으로 돌아앉아 살아왔습니다. 구겨지고 결박된 마음은 이야기를 통해서 숨길을 찾고는 했지요. 천성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했던 저자는 이러한 여인들의 '이야기'를 묻고 열심히 듣습니다. 저자의 질문에 말문이 트인 여인들이 해주는 이야기는 서로에게 치유제 역할을 합니다. 밥짓고 옷삼는 '기능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사연있는 사람'으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자신만의 서사를 가진 한 인간으로 엄마를 떠올리고 마주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지랖의 힘


 저자는 스스로를 '오지랖이 넓고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오지랖'이라고 하면 보통 '어르신들의 간섭'이 떠오릅니다. 당신들께서 겪어오신 삶의 방식을 잣대삼아 왜 그렇게 살지 않는지 훈계하는 모습말이지요. 그런데 저자의 오지랖은 그 중심이 '사람 자체'를 향해 있었습니다. 판단을 위한 오지랖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해보기 위한 오지랖이었죠. 주변 사람들의 삶을 다정하게 살피고 빛나는 점들을 발견하는 저자는 타고난 '이야기 수집가'였습니다.

 노년을 떠올리면 건강을 잃고 의식없이 삶을 마무리할까봐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게다가 우리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노년의 삶은 자녀돌봄과 월경주기로부터 독립한 해방의 시기가 아니라, 본인도 늙었지만 더 늙은 부모님에 대한 부양 책임이 추가된 고단함의 시기였지요. 하지만 '일장춘몽'과 같다며 당신들께서 스스로 평하시는 부모님들의 삶 속에도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삶은 단편적으로 좋고 나쁘다로 판단할 수가 없지요. 행복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지금 내가 느끼는 안타까움이 누군가에게는 단 하나의 희망일 수 있다는 것이 삶의 아이러니이자 마법같이 느껴졌습니다. '내공있는 보통사람'으로서의 삶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의 삶과 비교하여 등급화할 수 없다는 걸 저자의 글 속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삶을 일상의 반경 안에서 경험하는 마을공동체의 시기에는 사연과 사연들이 만나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드라마같은 극적인 희노애락들이 화면에서가 아니라 이웃집에서 펼쳐졌지요.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마주하며 내 삶을 견딜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사연을 드라마나 영화 아니면 sns에서 확인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직접 마주할 수 없어서 현대인들이 이렇게 각자의 섬에서 외로워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인생을 담아내는 한 문장 


 책 날개에 지은이에 대한 소개글이 있는데, 이 짧은 글은 마치 한 편의 자서전같습니다. 저자는 별다른 곡절없던 삶이 첫째 아이의 죽음으로 한 순간에 무너지고 한여름에도 더운 줄 모를만큼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힌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사서 책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하죠. 책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무너지는 마음을 겨우 쓸어담았을 그 시간들이 짧은 문장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런 저자의 삶을 '글을 쓰는 마음'이 평온하고 단단히 감싸주고 있었어요.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라는 제목이 이 모든 것들을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나의 삶을 담아내는 한 문장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의 질문과 앞으로의 소망을 담아서 인생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붙여보았어요.

- (폭신, 아삭, 상큼한) 샌드위치
- 인생 후르츠
- 즐기는 삶
- 화양연화
- 몽마르트 마마
- 조금씩 즐겁게 사는 인생
- 미련없고 후회없이 잘 살았다. 
- 꼰대가 되어가는 개인의 성장 

 제목의 해석을 들으며 환호하고 끄덕이고 안타깝게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한 여성의 꽉찬 삶의 이야기들이 그려지는 제목들이었네요. 

 

 

 

 우리는 4주간 삶이 건네오는 질문을 마주하고 용감하게 이를 써내려간 여성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여성들이 글을 쓰기 위해 넘어야하는 고비들이 무엇이고, 이를 넘어선 이후 글쓰기가 어떻게 축복이 되는지 저자들은 한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이 어느 지점에 서 있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살피지 않으면 '과거가 계속 우리를 생각'하게 되죠. 주체가 아니라 대상화된 삶의 방식이 익숙한 여성들은 이를 깨고 나에게로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한 모임벗께서는 4권의 책이 준 메세지를 '목소리를 내고, 함께 연대하며, 진짜 나를 찾아서, 각 삶들과 화합하라'는 한문장으로 멋지게 정리해주셨어요. 

 이제 우리들은 내 안의 질문을 바라보고 나만의 답을 떠올려봅니다. 그 과정에서 삶을 이야기하고 나누었던 이 모임이 내게 중요한 가치를 소중히 지켜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지펴주었길 바랍니다. 우리 각자의 삶은 하나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사연들의 사이사이의 성근 틈 사이로 나의 이야기가 편안하게 초대되는 듯 했습니다. 이제 그 사연을 잡아 글이라는 액자에 끼워보면 어떨까요. 일상의 기쁨과 슬픔, 안타까움과 미래에 대한 소망까지, 반짝이는 삶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도록 말이지요. 


* [여성, 삶을 글로 쓰다]는 여성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으며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글로 정리할 마음의 힘을 얻어 보는 모임입니다. 서초구양성평등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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