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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삶, 글] 여성의 청소년기 : 나 자신과 다시 건강하게 관계맺을 수 있도록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 삶을 글로 쓰다

[여성, 삶, 글] 여성의 청소년기 : 나 자신과 다시 건강하게 관계맺을 수 있도록

고래의노래 2020. 11. 2. 03:45

 10월 27일 화요일에 [여성, 삶을 글로 쓰다] 두번째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몸과 마음이 요동치는 청소년기에 대한 책을 함께 읽고 그 시절의 우리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어요. 

 함께 읽은 책은 <그 날 밤 우리는 비밀을>입니다. 이 책은 청소년 시기를 떠올리며 5명의 여성 작가가 쓴 5개의 단편소설 묶음집입니다. 소설들은 모두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자신이 누구인지 살피고 알아가야 할 시기에 '몸'으로 판단되어 묶여버린 소녀들이 등장합니다.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는 소녀는 점으로만 정의내려지면서 진실한 관계를 쉽게 맺지 못하고 숨어들어갑니다. 폭력적인 아빠와 남자친구 옆에서 몸에 대한 권위를 스스로 갖지 못해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소녀도 있습니다. 성적으로 대상화되지만 성적 주체로는 인정받지 못한 소녀들은 무성한 소문의 폭력에 힘겹게 맞섭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보는 능력을 지닌 소녀는 주변을 살피고 배려하느라 정작 자신의 욕구나 감각에는 무뎌지지요. 오히려 감정에 솔직했던 또 다른 소녀들은 그 감정이 사회적으로 용인받을 만한 것인지 판단의 잣대 위에 세워집니다. 


"타인의 몸에 대해서도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져 한 순간도 편안하지 않았다. 

장미덩쿨을 쳐 내듯 감각을 잘라 없애 버리고 싶었다. 자신의 몸이 낯선 이물 같았다."


 10대 시절에 여성들은 몸의 변화를 겪으며 몸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어갑니다. 여성들이 겪는 변화는 남성보다 훨씬 극적입니다. 월경을 시작하고 가슴이 나오는 등 신체적인 변화도 크지만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과 억압이 돌연 쏟아지기 시작하지요. 그러한 갑작스런 변화들 한가운데에서 혼란스럽게 휘청거리게 됩니다. 우리는 몸의 변화가 시작되었을 때의 경험에 대해서 나누었어요. 월경은 생식력이라는 새로운 힘으로 축복되기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월경 때마다 몸은 불편해지고 냄새와 생리혈로 다른 이 또한 불편하게 할까봐 걱정되었습니다. 월경의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고 비밀스럽게 '뒷처리 방법'만 전수될 뿐이었죠. 오히려 생식력은 '나를 파괴시킬 수 있는 위험한 능력'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느라 자신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교육을 받았지만 그것은 남녀 서로의 몸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상대의 몸이 내면에서 왜곡된만큼 상대를 대하는 태도도 편향되기 쉬웠지요.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 '성'이었고 금기된 주제인만큼 여성인 나의 몸도 나에게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몰아치는 목소리들이 너무나 시끄러워서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어요. 


"나리는 자기 몸의 소리에 귀기울여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깨달았다."


 10대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학교는 여러 관계 속에서 우리의 내면을 확장시켜주기도 했지만, 권위로 누르고 한계짓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경기장에서 친구끼리의 관계는 처음부터 경쟁으로 설정되어 버렸습니다. 빠르게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경쟁관계에서 외부에서 주어진 틀에 의지하지 않고 내면으로 다가가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했지요. 성별로, 외모로, 성적으로 쉽게 판단하고 판단지어졌습니다. 건강한 경계를 지으면서 진실하게 관계를 맺는 경험을 우리는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나 자신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내가 극복하고자 하는 성에 대한 관념이 딸들을 억압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의식하기도 전에 올라오는 즉각적인 판단과 반응이 안타깝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과거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도 과거가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몸에 대한 우리의 경험들은 기쁘고 즐겁다기보다 슬프고 힘겨운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책 속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런데 다행히도 소설 속 소녀들은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로 그것을 극복해갑니다. 나를 정의내리는 온갖 구분들을 넘어서 진실하게 만나고 손을 잡습니다. 여성들이 스스로의 상처와 아픔, 욕구를 함께 모여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러한 작은 연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슷한 경험 속에서 공통의 맥락을 발견하고 서로의 차이 속에서 나만의 서사를 찾아갑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욕구를 따라가다보면 그 예전의 우리와 만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청소년기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모임을 기회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애틋하고 아련한 그 시절의 나를 잊고 살았었다고 말이죠. 그리고 지금 느끼는 일상의 작은 기쁨들도 잘 기억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글쓰기의 힘이 그런 것이겠지요. 순간을 붙잡고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거요. 그것이 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나 자신과 천천히 다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중년기의 우리를 만나봅니다. 어쩌면 바로 지금이기에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우리 모습이 있지 않은지 함께 이야기나눠 보겠습니다. 

* [여성, 삶을 글로 쓰다]는 여성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으며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글로 정리할 마음의 힘을 얻어 보는 모임입니다. 서초구양성평등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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