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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삶, 글] 여성의 중년 : 역할과 자아 사이의 틈을 메우는 존재의 금가루를 찾아서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 삶을 글로 쓰다

[여성, 삶, 글] 여성의 중년 : 역할과 자아 사이의 틈을 메우는 존재의 금가루를 찾아서

고래의노래 2020. 11. 6. 11:33

 [여성, 삶을 글로 쓰다] 세번째 모임에서는 중년기 여성의 삶에 대한 책,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고 중년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 우리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책은 서른 다섯부터 흔 다섯을 경유하는 한 여자의 투쟁의 기록이다. 

모성을 수행하는 엄마이자 존재를 이행하는 자아라는 

양립불가능해 보니은 삶의 조건 속에서 나는 분열했고 분투했다."


 책 속 글들이 쓰여진 상황적 조건은 '기혼 유자녀 여성으로서 맞이하게 되는 삶의 균열'입니다. 중년여성을 모두 아우르기에는 좁은 조건처럼 보이지만 결혼여부와 자녀유무를 떠나서 '엄마됨'이라는 것은 중년 여성에게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그 나이대의 여성에게 사회가 기대하는 바는 확실히 '보살피는 엄마'이기에 이 기준선에 따라 중년 여성 모두가 영향을 받게 되지요. 게다가 중년은 가장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할 시기입니다. 우리는 임신, 출산, 육아, 돌봄, 가사노동 그리고 일로 이어지는 중년 키워드 속에서 경험을 나누고 나만의 키워드를 찾아가 보았어요. 

 일터에서 임신은 배려받을 상태이기보다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태로 정의되었습니다. 임신 전의 근무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임신을 개인적으로 극복해야할 취약점으로 여겼습니다. 대놓고 퇴사를 강요하기도 했지요. 이 모든 난관을 헤치고 윗 자리에 오른 여자상사들은 공감해주기보다는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일과 육아, 살림 삼중 저글링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선택들을 했습니다. 육아를 위해 일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자아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 때까지 학교과 직장에서 부여하는 평가로 나의 가치를 매기는 데 익숙해서 그러한 피드백이 없는 전업주부가 되자 마치 내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을 위해 양육을 전적으로 다른 이에게 맡기기도 했습니다. 주중에는 일에 몰입하고 주말에만 아이를 만났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데리고 와서야 가족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듯 했지요. 아이와 깊게 소통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어린시절을 온전히 함께 하지 못해서이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어요.  일과 양육을 병행했습니다. 일을 하니까 살림을 더 열심히 하면서 남편에게 흠 잡히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나의 일은, 의무로서의 집안일을 소홀히 하지 않을 때에야 제대로 주어지는 권리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어도 살림과 육아를 맡아야 되는 게 너무 뻔했기 때문에 경제활동을 선택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남편과 집안일에 대해서 부단히 투쟁해왔지만 해소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하셨어요. 

 각기 다른 선택들이었지만 그 선택의 배경은 같았습니다. 일터와 가정은 철저하게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양 쪽에서 기대하는 바는 개인의 삶의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지요. 기본값으로 주어지는 여성의 의무, 직장인으로서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옵션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권위적인 가부장제 구조 아래서 여성을 어떤 선택을 해도 괴로운 셈이었어요.

 개인적 경험과 맞물려서 책의 내용에 공감이 많이 되기도 하고 조금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생활 속에서 느끼던 모순점들이 다시 명확해지면서 투쟁하고자 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바깥 세상에 기대하고 바라는 점이 있지만 실제로 내 삶에서 그것들을 다 실천하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다시금 자각되기도 했어요. 다른 사람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힘들었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와 반대로 삶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지금이 참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학자들의 말과 싯구를 인용한 부분들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가사일을 평가절하하는 듯한 단어 사용에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깊게 고민하며 힘들게 사는 저자의 모습에서 회사에서 겪은 '열심히 사는 여자상자'들이 떠올라 심적 거리감이 느껴진다고도 하셨어요. '편하게 살고 싶다'고 하시는 말씀들이 그 간의 힘들었던 우리의 시간을 반영하는 듯 했습니다. 분명한 건 책이 우리 각자의 어느 지점을 건드렸다는 사실이었지요. 
 

"나는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취약하고 무엇을 욕망하나. 

자기 인식이 형성되자 애매한 감정에 짓눌리지 않았다....

삶은 행복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날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춘기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통과의례적 시기라면 중년은 '사회적 나'에서 '본연의 나'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기준에 맞춰왔던 삶을 돌아보고 감춰두었던 내 욕구에 귀기울이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올라오지요. 저자는 이것은 '본래적 자아로 회귀하려는 경향성'이라고 말했습니다. 내면이 저항감과 마주할 때마다 이러한 본래적 자아로 향하는 스스로를 느꼈다고 해요.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 저항감보다는 '편안함'을 찾고 싶은 욕구가 더 컸습니다. 지친 마음의 충전이 필요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 존재에 금가루를 뿌리는 일'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본래적 자아로의 길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이전 경력을 활용해서 봉사를 하는 등 많은 분들이 내 마음이 이끄는 활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나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감을 느끼며 내적인 충만함을 경험했어요. 그리고 여유, 자유, 시간 등 나의 경계가 넓어지는 의미를 지닌 단어들을 중년의 키워드로로 많이 꼽으셨습니다. 저자는 나에 대한 글을 쓰다가 의식이 바깥으로 확장되어 나갔다고 했지요. 우리도 나에게 집중하며 기쁨 속에 힘이 차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밖으로의 연결에 마음이 가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싶었어요. 

 

 돌아보면 인생의 갈림길에서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분투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은 나를 틀지우는 거대한 구조의 영향 아래 있었지요. 그 힘과 맞서기에 나는 너무나 작은 존재로 여겨져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누구인지 살피며 정리한 글과 이야기들이 모이면 구조에 작은 균열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힘겹고 안타까웠던 시절들이 이렇게 그 경험에서 의미를 찾으며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발견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힘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내 존재를 반짝이게 하는 사소한 기쁨들을 모으고 바깥에서 나를 구분짓는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를 해보며 나라는 모양을 잘 다듬어 가야겠습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생애주기의 마지막, 여성의 노년기와 만납니다. 노년 여성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책을 함께 읽고 우리의 노년을 함께 그려보아요. 


* [여성, 삶을 글로 쓰다]는 여성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으며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글로 정리할 마음의 힘을 얻어 보는 모임입니다. 서초구양성평등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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