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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삶, 글 - 네번째 모임] 삶이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 삶을 글로 쓰다

[여성, 삶, 글 - 네번째 모임] 삶이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고래의노래 2020. 9. 14. 18:58

 <여성, 삶을 글로 쓰다> 마지막 모임에서는 여성의 노년기에 대해서 이야기나누었습니다. 유아기, 청소년-청년기, 중년기를 지나 삶의 막바지에 이르렀네요. 이번 모임에서는 노년 여성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책,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를 함께 읽고 노년이라는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해보았어요.

 

 저자는 마을공동체와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단지 캠페인성 용어가 아니라 진짜 삶이었던 어린시절을 살았습니다. 소설가가 꿈이었고 언제나 무언가를 쓰며 지냈지만 이루어진 것은 없었지요.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 낳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중에도 글을 놓지 않았고 책읽기,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임에서 만난 벗들과 음식점을 열고 운영하게 됩니다. 그러는 중에도 여전히 글쓰기를 계속했고 그 글들이 모여 책이 되었습니다.

 저자가 만난 사람과 들은 이야기, 시대 속의 삶, 그리고 저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섞여 있습니다. 서로를 품고 위로했던 마을 공동체와 마음 속 열정의 불씨를 고요한 일상 속에서 소중히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518와 유신헌법개정 등 격동의 시대를 통과했던 경험과 시대의 변화에 휘청이면서도 진실하고자 했던 한 사람의 삶이 글로 쓰여졌습니다. 생각에 앞서 경험을 펼쳐놓는 글들은 훨씬 강렬하게 마음에 와 부딪힙니다.

 

이야기로 여성들의 삶에 숨길을 트다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여성 노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책은 아닙니다. 최근 노년 여성에 대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노년의 성이나 황혼 이혼, 돌봄의 도돌이표, 1인 노년 여성의 빈곤문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직접 보고 느낀 여성의 삶이 책장마다 구비구비 펼쳐집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 중 단연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엄마와 할머니에 대한 것입니다. 노년에 대해 상상할 때 우리는 엄마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렸습니다. 엄마는 우리가 태어난 이후부터 줄곧 마주한 '여성인 나의 미래'였지요. 엄마가 그리워서,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어느 방향으로든 엄마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저자의 글에도 엄마가 자주 등장합니다.

 

"시래깃국 하나도 삼삼하면서 부드럽고,

굳혀둘 곡식과 속히 덜어낼 것들을 알아 창고에 나방 한 마리 날게 하지 않으며,

수많은 봉제사를 위한 누룩이며 엿기름, 마른 나물을 준비하고

그것들을 연필로 기록하는 법 없이도 자연스레 머리에서 술술 풀어내던 무덤덤한 얼굴의 엄마"

 

 글만으로도 엄마의 단단하고 야문 손놀림이 그려집니다. 무언가를 살뜰히 돌보고 꼼꼼히 살피는 엄마들의 역량은 다른 쪽으로는 전혀 길을 찾지 못하고 '하루종일 안겨진 시간을 오로지 남편 밥상에 함축시켜 앞에 놓아주는' 방향으로만 허락되었습니다. 질문과 생각은 억압당하고 오로지 하나의 역할만 강요된 엄마는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지만 열에 찬 걸음이 향한 곳은 장독대 뒤였지요.

 

"엄마의 순종이 지나친 참을성이,

한번도 꿈꿀줄 몰랐던 다른 세상이,

그 묵묵함을 왜 딸년은 손잡고 이끌 줄 몰랐을까."

 

 돌봄과 살림의 일들에 파묻혀서도 마음에 다른 열정을 품고 살아왔던 저자는 지금 자신과 같았을 엄마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엄마를 떠올리면서 우리가 경험한 엄마가 아니라 달의 이면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삶, 열정, 소망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엄마를 생각하기만 해도 울컥해지는 마음은 아마도 이렇게 연료처럼 태워진 한 여성의 다른 가능성 때문이 아닐었을까요. 그 시절의 여성들은 대부분 이렇게 한 쪽 방향의 삶으로 돌아앉아 살아왔습니다. 구겨지고 결박된 마음은 이야기를 통해서 숨길을 찾고는 했지요. 천성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했던 저자는 이러한 여인들의 '이야기'를 묻고 열심히 듣습니다.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혼인을 한 사람들은 긴 시간을 견뎌냈고, 희망이라면 자라는 손주들이었다.

결혼해서 만난 법도는 충격이었고 그 다음은 살아내는 정도의 무기력이 뒤따랐다...

어른들끼리 정혼하여 속수무책으로 시절을 보내버린 할머니들은 앞산은 높고 들녘은 턱없이 좁아

먹는 것조차 넉넉지 않은 곳에서 실어증에 걸린 것처런 있다가 나를 만났다.”

 

 저자의 질문에 말문이 트인 여인들이 해주는 이야기는 서로에게 치유제 역할을 합니다. 밥짓고 옷삼는 '기능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사연있는 사람'으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헛기침과 뒷짐진 모습 속에서 감춰진 것들을 보고' 사람들의 사연에 귀기울일 줄 알았던 저자는 고조할머니 대까지의 '집안 여성사'를 하나로 엮어낼 수 있었습니다. 나의 뿌리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알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나의 출발점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거슬러 올라갈 이야기의 맥이 끊어진 상태인 우리는 이 점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노년에 대한 기대와 걱정

 노년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점과 걱정되는 점은 무엇인지 이야기나눠 보았습니다. 가장 걱정되는 점은 역시 건강이었어요. 이미 체력이 약해지고 있고 만성적인 통증들도 있는 상태여서 이보다 더 안 좋아질 미래에는 몸에 삶이 갇힐까 두려웠습니다. 소통이 막힌 완고한 노년이 되는 것도 두려운 점이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젊은 세대와 소통하지 못할까봐, 또는 마음을 나눌 이웃들이 주변에 없을까봐 걱정되었습니다. 저자는 시대의 역사에 휘둘리고 급격한 변화에 당황하며 적응해갔던 경험을 책에 풀어놓았습니다.

 

"어른들은 노여움으로 벌벌 떨면서 바뀌는 세상을 배워나갔다.

“그 전 일꾼들은 발등이 안 보일때까지 일했는데 요새 것들은 해만 떨어지면 들어온다.”...

양반이어서, 양반 혼사하려는 사람이 많아 그 마을 사람들은 가진 것 없이도 결혼을 잘 했다.

내가 들어갔을 때쯤 젊어서는 처가 것, 어려서는 외가 것을 누리던 사회가 바뀌고 있었다.

명주바지만 고집하고 낮잠자는 것이 일이었던 게으른 어른들은 이제 빈곤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어르신들이 하셨다는 말씀이 지금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서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 말씀 안의 '요새 것들'이 지금 '어르신'이 되었을 텐데 말이죠. ^^ 코로나 상황을 기점으로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알 수 없는 미래를 불안해하며 오늘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이기에, 저자처럼 '사연'을 궁금해하는 호기심으로 하루하루 마주치는 놀라움을 통과하는 것만이 방법이 아닐까 싶네요.

 

 노년에는 어떤 것이 기대되나요? 우리는 이 이야기도 나누어 보았어요. 임신과 출산이라는 기능적 신체로부터의 독립, 아이돌봄이라는 무거운 역할로부터의 독립, 그러면서 나를 위하여 온전히 사는 삶 등이 이야기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대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노년의 모습도 상상해보았습니다. 생각이 호환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몸의 변화에 좌절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유년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사랑받았다고 느낄 수 있게 엄마시절을 잘 통과한 후였으면 좋겠고 마지막 휴가처럼 편안하지만 또한 여전히 새로운 일에 가슴 떨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중한 것을 마지막까지 품을 용기

 

“지원이 대학 갔는데 또 수험생 있소? 밤이면 거실에 불이 안꺼집디다.”

내게도 언니같았던 그 분 앞에서 얼른 대답을 못하고 그만 눈물이 터졌다.

그 때는 나에게 전부였으며 이거 빼놓고는 인생의 의미도 없고 살아갈 이유도 없다고 여겼던 게 있었다.

안겨 울면서 소설을 쓴다고 고백했다.

 

 저자는 '소설가'라는 꿈을 한시도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적극적인 지원도 없이 오히려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그 꿈을 노년까지 소중하게 보듬습니다.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일을 알고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입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은 삶에서 우리가 한번은 풀어야할 과제이지요. 우리는 노년까지 가져가고픈 나의 소망과 가치가 무엇인지 곰곰히 고민해보기로 했습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끝까지 붙잡았던 저자의 용기를 닮고 싶었습니다. 저자는 아직 소설가로 등단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기준삼아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고 사람들의 사연을 끌어내고 들어주고 엮어서 의미를 꺼냈습니다. 남들 눈에 가소로워 보일까봐 컴퓨터를 들여놓지도 못하고 핸드폰에 자판을 연결해 한 줄 한 줄 써갔다는 그 글들이 다른 이에게는 자신을 되잡을 힘을 준다는 것을 저자가 꼭 알았으면 좋겠네요.

 

 책 날개에 지은이에 대한 소개글이 있는데, 이 짧은 글은 마치 한 편의 자서전같습니다. 저자는 별다른 곡절없던 삶이 첫째 아이의 죽음으로 한 순간에 무너지고 한여름에도 더운 줄 모를만큼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힌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책모임을 만들고 활동하기 시작하죠. 책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아이의 죽음을 마주하며 마음이 몸부림쳤을 저자의 시간들이 짧은 문장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저자의 삶을 '글을 쓰는 마음'이 평온하고 단단히 감싸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우리 인생에 영화처럼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지금의 질문과 앞으로의 소망을 담아서 인생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보았어요.
- 너는 어디에 있는가 / 나는 여기 있다.
- 다가오는 것들
- 파도에 맞서야 바다의 깊이를 안다
- 달빛 오두막의 여인
어떤 영화일까 호기심이 이는 제목들이었습니다. 저자가 행간에 담은 사연들처럼 하나의 문구에 담긴 한 여성의 꽉찬 이야기들이 느껴집니다.

 

 <여성, 삶을 글로 쓰다> 4번의 모임을 통해 우리는 나의 삶을 천천히 돌아보고 생의 어떤 장면들이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엮여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삶이 건네오는 질문들을 마주하고 이를 용감하게 글로 써내려간 여성 작가들의 책을 함께 읽으며 우리도 그 질문 앞에 서서 우리만의 답을 떠올려보았어요. 세상이 우리를 빚어온 방식과 내면의 욕구 사이에서 분열하는 자아를 움켜쥐고, 내가 바라는 미래를 그렸습니다. 우리는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아가고 여성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헤쳐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삶을 이야기하고 나누었던 이 모임이 내게 중요한 가치를 소중히 지켜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지펴주었길 바랍니다. 우리 각자의 삶은 하나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글로 내려보낼 준비가 되셨나요?

 

* [여성, 삶을 글로 쓰다]는 여성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으며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글로 정리할 마음의 힘을 얻어 보는 모임입니다. 서초구양성평등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 모임에서 읽은 책 4권 + 읽기가이드북 + 모임지기와의 이메일 후기교류가 포함된 [여성, 삶을 글로 쓰다] set를 아래 링크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forms.gle/zCSJTHQ93gABuzWG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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