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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삶, 글 - 두번째 모임] 몸과 마음을 앓던 청소년 시기의 우리들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 삶을 글로 쓰다

[여성, 삶, 글 - 두번째 모임] 몸과 마음을 앓던 청소년 시기의 우리들

고래의노래 2020. 8. 15. 16:51

 [여성, 삶을 글로 쓰다] 두번째 모임이 8월 11일에 진행되었습니다. 
 두번째 시간에는 여성의 청소년기와 청년기 시절에 대해 쓴 <그 날 밤 우리는 비밀을>이라는 책을 읽고 우리들의 그 시절을 되돌아보았어요. 

 

 

 


 1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여성들은 극명한 변화의 단계에 접어듭니다. 그것을 촉발시키는 계기는 주로 몸의 변화지요. 초경이 시작되고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무언가 다른 세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대하는 스스로의 시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도 달라졌음을 확인하게 되죠. 
 <그 날 밤 우리는 비밀을>은 5명의 여성작가가 자신의 청소년기를 떠올리며 써내려간 5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입니다. 몸과 관계라는 큰 주제 안에서 그 때의 우리가 떠올려지는 소녀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몸'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처음 월경을 시작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극적인 성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 경우도 있었고 옷에 베인 흔적을 감추며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던, 아찔하게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그 첫 순간을 굉장히 담담하게 맞이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월경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정확히 설명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죠. 가족 중에 엄마도 있고 언니들도 많았지만 생리대가 집 안에서 본 적이 없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설프지만 혼자서 그것을 처리하는 법을 익혀갔습니다. 

 각자의 가정환경에 따라 초경을 맞이한 순간의 경험은 달랐지만 한 가지 교차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월경을 '은밀하게 처리해야할' 비밀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었죠. 인류의 반이 하고 있고,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감히 제대로 입 밖에 낼 수 없는 단어가 '생리', '월경'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경험한 모임벗께선 편의점에서 유일하게 검은 봉다리에 넣어건네는 물품 2가지가 콘돔과 생리대라는 말씀도 해주셨어요. 몸의 자연스러운 현상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게 대해지는 상황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욕구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고 온종일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사람인 이상 계속 책만 들여다볼 수도 없다... 교복 밖으로 드러난 얼굴과 팔다리에 눈길이 가고, 

그 다채로운 형태들의 아우성이 그 섬세한 비슷함과 차이들이 

다른 무엇보다 중대한 문제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몸의 변화에 집중하면서 보여지는 부분의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이성과의 관계 속에서 몸이 바라는 욕구를 느끼기도 했지요. 반면 몸이 변하면서 몸으로 하던 몸짓과 운동들이 어색해지기도 했습니다. 한가지 공통된 것은 이 모두가 엄격한 바깥의 기준에 맞춰져 있었다는 사실이었어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도, 욕구를 느낄 권리도, 격한 운동은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구분까지 모두 사회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었습니다. 소문과 평판은 작은 학교 공동체 안에서 무섭게 퍼져나갈 수 있었고 나도 그 광풍에 휩쓸릴까 조마조마한 나날들이었습니다. 따돌림은 흔한 일이었고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정해진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하는 교실은 그 자체로 평범해지기위한 각축장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바깥에 의해 재단되었던 시기에 나의 손을 잡아 주었던 건 또한 친구들이었지요.


"광할한 우주 속 수많은 별들 위에 오직 점일 뿐인 무수한 존재 속에

단 하나의 선으로 이은과 나는 이어져 있었어."


 그 누구도 나의 멘토가 되어주지 않았을 때 친구들이 있어서 나를 세우고 자존감을 키워갈 수 있었습니다.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친구들 속에서 발견해나갔지요. 가족으로부터 마음의 독립을 해나갈 청소년 시기에 단짝 친구들은 우리의 또 다른 가족이 되어주었습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강렬한 감정 안에서 관계를 쌓아갔고 이 관계가 우리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만들었어요. 


"거의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위협도 할 줄도 모르는 작고 다정한 존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느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어 버린 사람...

다른 사람에게 웃어주느라 혼자 있을 때 웃지 못하는 사람..."


 작가들이 청소년기를 돌아보며 한 말들이 가슴 찡하게 와서 박힙니다. 그 시기의 소녀들을 생각하면 저런 다정한 존재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가족 이외의 누군가와의 연결을 갈망하고 그 욕구 안에서 휘청거렸던 것 같아요. 관계에 휘둘리고 어쩌지 못하는 내 몸에 휘둘렸던 안타까웠던 시기. 친구에게서 힘을 받고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때론 나를 도려내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제대로 힘이 되어 주지 못한 부분이 아프게 남아있기도 했지요. 한 모임벗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돌이켜보면 안타깝지만 그 때는 또 그렇게 지나갈 수 밖에 없었던 날들이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다 해결될꺼라는 막연함에 기대었던 그 시절의 연약한 나를 함께 토닥여보았어요. 


 자연스럽지 못했던 그 시기의 여정을 떠올리며 우리는 같은 시기를 지날 자녀들의 성장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좀 더 긍정하고 몸이 전하는 느낌과 건강한 성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부모로서 이끌어주고 싶었지요. 나는 그렇게 자라지 못해서 아직도 어색하기만 한 몸에 대한 대화들이 자녀 앞에서라고 당장 바뀔 수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그러한 어색함을 한계로 인정하는 솔직함 속에서 우리의 바람을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아이들처럼 우리도 다시 한번의 성장기를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우리가 바라는 모습 그대로 말이지요. 

 함께 이야기하기 불편할 수 있는 주제였는데도 각자의 깊은 이야기들을 기꺼이 나눠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될 수 있게 서로에게 안전한 존재로 든든하게 자리해주셔서 또한 감사했어요. 다음 시간에는 '자금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중년기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지요. <싸울수록 투명해진다>를 읽고 지금 통과하고 있는 생애주기에서 받고 있는 느낌과 생각, 고민들을 나눠보아요. 

 

* [여성, 삶을 글로 쓰다]는 여성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으며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글로 정리할 마음의 힘을 얻어 보는 모임입니다. 서초구양성평등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 모임에서 읽은 책 4권 + 읽기가이드북 + 모임지기와의 이메일 후기교류가 포함된 [여성, 삶을 글로 쓰다] set를 아래 링크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forms.gle/zCSJTHQ93gABuzWG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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