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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삶, 나삶] 딸에 대하여 : 서로의 삶 앞에 마주선 엄마와 딸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 삶을 글로 쓰다

[글삶, 나삶] 딸에 대하여 : 서로의 삶 앞에 마주선 엄마와 딸

고래의노래 2019. 9. 4. 19:36

 밸류가든의 여성주의 문화예술 아카데미 프로그램 '글로 만나는 여성의 삶, 나의 삶' 네번째 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마지막 모임에서는 <딸에 대하여>를 함께 읽으며 소설이 비추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딸에 대하여>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가 자신의 딸 그리고 딸의 동성애인과 한 집과 살게 되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딸의 삶과 점차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엄마와 딸이라는 애증의 관계를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엄마와 딸의 관계가 여성과 가족, 여성과 노년이라는 이슈와 촘촘히 얽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소설 속에서 엄마와 딸 사이의 간극은 가족이라는 개념을 각자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로부터 시작됩니다.

 

 

가족이라는 단 하나의 동앗줄

 

 재산이라고는 허름한 주택 한 채가 전부인 엄마는 평생 일을 했고 지금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동료의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면서 집의 보증금마저 써버린 딸이 잠시만 머물겠다며 애인과 함께 집에 들어오죠. '편안한 정상성'을 벗어난 딸의 삶을 매일 확인하는 것이 엄마는 너무 힘듭니다.

 

 "지금 내 집에 필요한 건 언젠가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족이다. 딸애를 지켜줄 수 있는 건 그 뿐이다."

 

 엄마에게 '사회가 인정하는 가족'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가족은 내가 무너져내릴 때 나를 지탱해줄 유일한 안전망이지요. 그 가족은 남녀간의 결합을 통한 혈연으로 맺어지는 것이며 혼인신고를 통해 공식화됩니다. 그렇게 '피'와 '제도적 인정'이 없는 가족이란 건 엄마에게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동성애자인 딸은 그 안전망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안전하고 편안한 것이 곧 행복인 엄마는 불행 속에 안주하려는 딸이 불안하고 답답합니다. 엄마의 이런 불안은 자신이 보살피는 요양원의 젠을 통해 더 확고해지지요. 존경받는 사회운동가였던 젠은 지금은 돌봐줄 '공식 가족'이 없이 요양원에서 초라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딸이 하고 있는 바깥을 향한 싸움은 공허해보이고 그 과정에서 함께 뭉친 사람들은 '스쳐갈 인연들'으로 보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가족주의는 적절한 사회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경제적 고난을 겪어낸 역사의 흔적입니다. 실제로 가장 취약한 상태에 처했을 때 보살피는 주체는 제도가 아니라 가족이었고 반복되는 이런 경험들은 철저한 폐쇄적 가족주의로 이어졌습니다. 가족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한 상태에서 각자의 목소리는 묻히고 억압되었습니다 게다가 여성은 가족관계 안에서만 사회적으로 인정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가 아닌 여성은 끊임없이 그 '일탈'에 대해 설명해야 하지요.

 

 

 

엄마들의 이중 메세지

 

 "끝이 없는 노동...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엄마는 교사, 보험설계사, 버스운전사 등 여러 직업들을 거치며 일을 놓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일을 할수록 경력이 인정되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자리로 밀려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공부를 통해 넓은 세계로 나가길 원했던 어렸을 때의 바람을 딸에게 투사하고 딸이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살아가길 바라지요. 하지만 지금 피켓을 들고 길거리로 나서며 동성애자가 '되버린' 딸에 대해 엄마는 이렇게 되내입니다

 

 "딸은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버린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들은 딸들에게 끊임없이 모순된 메세지를 전달합니다.
"나처럼 살지마.(당당한 전문여성이 되렴.)" "그래도 나처럼 살아.(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야지)"
"성공해라.(그래야 혼자서도 당당해져.)" "근데 적당히 성공해야 해.(남자들이 싫어하거든)."

이 이중 메세지 속에서 딸들의 내면은 분열합니다. 이 분열 속에서 오는 분노와 혼란이 딸이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또 미워하는 이유입니다. 남성성으로 규정된 냉철한 이성과 목표를 향한 야심이 높은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딸들은 엄마로 대표되는 여성성을 거부하고 명예남성이 되어가지요. 그리고는 자기자신을 잃어버린 채 공허함에 허덕입니다. 정희진이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썼던 것처럼 '아버지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딸은 어머니를 죽이고 그 시체를 껴안고 울며불며 헤매고' 있습니다.

 

 엄마가 통과한 삶의 서사 안에서 엄마의 행동과 말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서글프고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엄마가 된 지금, 그러한 사슬을 끊어낼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니 우리 역시 딸들에게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강요한 적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미움받는다는 것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딸에게 투사하여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강하게 주장할 수 없도록 막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부정적인 사슬을 끊겠다는 강한 욕구로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 대해 과하게 훈육하기도 했지요.

 

 요양원은 젠이 경제적으로 전혀 득이 될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안 순간 그를 부당하게 다른 시설로 보내버립니다. 엄마는 그런 요양원 측과 대립하다가 젠을 집으로 데려오게 되지요. 어리둥절해하는 딸을 보며 엄마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의 수고로움...그 애들이 다만 책에서 읽거나 누군가에게 전해 듣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하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돌보는 건 이렇게 구질구질한 현실이기에 가족도 아닌 딸과 딸의 연인이 서로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가당찮은 다짐인지를 알려주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아니러니하게도 젠을 보살피는 엄마에게서 우리가 느낀 건 가족이 아닌 관계에서 피어나는 깊은 연대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동료의 부당해고에 함께 맞서는 딸과 그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었죠. 그렇게 젠에게서 자신과 딸의 미래를 투영하면서 엄마는 마침내 생각합니다.

 

 "이건 세상의 일이 아니고 바로 내 일이다....그런 말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죽을 때까지 드러나지 않는 게 아니라, 마침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렇게 말이 되어 나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진실한 현재를 살았던 두 존재들

 

 남성은 행위하는 주체로 정체성을 획득하지만 여성은 몸을 근거로 정체성이 부여됩니다. 여성인 누군가가 진짜 누군인지는 ' 재생산이 가능한 몸인지, 그 과업을 다했는지, 지금 남성에게 매력적인 상태인지'에 따라 판단됩니다. 신체적 조건은 여성에게 억압이자 무기가 되지요.  성품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높게 평가되는가 하면, 출산이후 몇달만에 신체적인 매력을 되찾은 여성 연예인들은 '애엄마답지 않은' 능력자로 인정받습니다. 그렇기에 재생산의 역할을 하지 않을 동성애자인 딸도, 성적 매력이 상실된 노인이 되어버린 엄마도 사회적 가치 정체성을 부여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답답한 현실은 엄마와 딸에게 '새로운 탄생'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잊은 적이 없다...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엄마는 힘든 길을 가려는 딸을 말리고 싶고 딸은 이미 힘든 삶을 산 엄마가 그 삶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답답합니다. 엄마와 딸은 이렇게 남성중심사회의 틀을 깨지도 안주하지도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합니다. 가부장제는 모녀간의 분열을 기반으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모녀간의 연대가 가부장제에 균열을 가할 가장 강력한 힘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하면 엄마의 삶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엄마의 손을 잡을 수 있을지 우리는 내내 명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저 독백 속에서 희미한 희망을 보았습니다. 자기자신을 죽이며 살아왔다고 여겼던 엄마는 실은 한순간도 진실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본인이 하는 일의 가치를 매순간 삶으로 성실하게 재현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엄마에게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본인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에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미래를 보고 행동합니다. 언뜻 어긋나 보이는 엄마와 딸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지점에서 서로 만납니다.

 

 '글로 만나는 여성의 삶, 나의 삶' 모임에서 우리는 4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문정희의 시를 통해서 답답한 현실에 울부짖으며 강인한 내면의 힘과 연결되고자 노래했습니다. 나혜석의 글을 읽으며 지금 우리의 욕구가 시대와 상황의 산물이 아닌 근원적인 뿌리에서 오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지요. 그리고 옛이야기 속에서 여성성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지금 내가 풀어야 할 내면의 과제가 무엇인지 돌아보았어요. 그리고 마지막 모임에서는 현실로 돌아와 여성들간의 연대를 꿈꾸며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마주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4권의 책들이 우리에게 건넨 메세지들을 각자 다른 결을 지녔지만 하나로 연결됩니다. 그건 '나 자신으로 살기위해 항상 깨어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떠한 삶이든 순간의 조각으로 전체를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명백한 것은 본인말고는 누구도 그 사람의 삶을 판단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삶은 과정이고 한 발 한 발의 진실함만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두 달 동안 함께 책을 읽으며 여성의 삶을 만나고 우리의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고민과 생각에 솔직하게 마주했던 우리 모두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함께 연결되었던 뜨거운 여름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진실한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 '글로 만나는 여성의 삶, 나의 삶'은 다양한 문학 장르 안에서 여성의 삶을 만나고 나를 비춰보는 여성주의 책모임입니다. 서초구 양성평등기금 지원을 받아 밸류가든에서 7~8월에 4회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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