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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삶, 글 - 첫번째 모임] 삶이라는 오렌지를 굴릴 나의 언어를 찾아서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 삶을 글로 쓰다

[여성, 삶, 글 - 첫번째 모임] 삶이라는 오렌지를 굴릴 나의 언어를 찾아서

고래의노래 2020. 8. 9. 11:11

8월 4일 [여성, 삶을 글로 쓰다] 4주간의 모임이 우면동 네이처힐 6단지 작은 도서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성, 삶을 글로 쓰다]는 여성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으며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글로 정리할 마음의 힘을 얻어 보는 모임입니다.

글쓰기의 힘은 이미 많은 곳에서 강조되고 있고 여러가지 방법론에 대한 책과 강연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무턱대고 쓰려고 하면 막막해집니다. 그래서 가장 잘 알고 있지만, 가장 풀어놓지 못했던 소재인 ‘나’에 대해서 쓰되, 스스로의 언어로 삶의 이해하려한 여성들의 글을 읽으며 참고로 삼고 용기를 얻어 보려 합니다. 여성의 삶을 유아기 / 청소년, 성인기 / 장년기/ 노년기로 나누고 각 시기의 이야기에 집중한 4권의 책을 함께 읽으며 그 때의 나를 만나봅니다.


첫 주에 함께 한 책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 책은 유년기에 대해 회상하며 그 때의 경험과 만났던 사람들이 지금의 나에게 준 영향을 되짚고 여자의 글쓰기가 가진 어려움을 총체적으로 살핍니다.

저자는 유년기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철저한 인종분리정책 하에 살면서 삶의 모순, 그리고 상처들과 마주합니다. 인권운동을 하던 아빠는 눈 앞에서 잡혀가고 이후 4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그 사이 대모님 집에 머물며 가톨릭 기숙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그 때 말과 글에 대한 자신만의 각오를 다지게 되지요.

그 당시 저자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은 ‘알 수 없는, 즉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얼굴색이 다르다고 권리와 의무, 공간까지 구분되면서 누군가는 섬겨지고 누군가는 섬기며 그 상황에서 ‘모두’가 두려움에 떱니다. 저자는 세상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오히려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걸 경험했고, 무서우니 거리를 두어야한다고 이야기되는 대상들을 오히려 안전하게 느꼈지요. 이러한 모순을 머리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저자는 행동으로 이를 표출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목소리는 크게 나오지 않았고 여러 번 지적당해도 공책에는 ‘셋째줄부터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회구조가 한 사람을 직조해내는 방식은 특히나 여성들에게 치밀하게 작용했는데 저자의 삶에 등장한 두 명의 마리아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보입니다. 어린 시절의 보모였던 마리아는 주인집 백인 아이를 돌보며 정작 자신의 아이는 돌보지 못합니다. 여성이며 유색인이라는 이중의 억압 아래 하루종일 반복되는 돌봄의 피로 속에서 삶의 활력을 잃은 채 살아야했죠. 또 한 명의 마리아는 성인이 된 지금 여행지의 민박집 주인입니다. 가톨릭 전통 마을 속에서 결혼과 모성이라는 의례에 포함되지 않는 삶을 살기위해 분투하는 인물입니다.


“여자애들은 큰 소리로 말해야 돼. 우리가 뭐라건 어차피 아무도 안 듣거든.”


대모님의 딸인 멀리사는 목소리가 작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자신을 죄는 울타리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함을 가진 인물입니다. 인도계 남자친구를 사귀고 부모님의 차를 몰래 훔쳐타기도 하지요. 화장으로 자신을 지어내면서(make-up) 변신을 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가톨릭 학교의 조언수녀님과 편지 속의 아빠도 말하기와 쓰기에 대해서 용기를 내라고 계속 나를 응원합니다. 그런 응원 속에서 나는 말하기보다는 글을 쓰기로 다짐합니다. 그리고 ‘어떤 너머’에 대한 글을 쓰면 지금 있는 곳보다 더 나은 곳으로 도망칠 수 있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되지요.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내면에 쌓여온 세상의 부조리함들은 어른이 되어서 나에게 ‘해석’을 요구합니다. 회피하지 말고 마주하라고 등을 떠밀지요. 그래서 결국 저자는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정치의 언어가 숨기는 거짓말로부터,
우리의 성품과 생의 목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신화들로부터,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욕망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라는 것을 말이죠.

과거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도 과거가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떠올려보고 몇가지의 키워드들을 잡아보았습니다. 종교, 막내딸, 집, 지하철, 딸 셋, 텔레비전, 인정욕구, 우울감 등 형제 안에서의 서열과 집 안 분위기, 사회경제적 구조 등이 각자 다르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 때와는 달라진 시선으로 과거를 떠올린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른들의 상황에 휘둘리는 어린 아이’라는 취약함때문에, 그리고 부당함을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능력의 한계 때문에 긍정하고 묵묵히 받아들였던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친정 부모님을 달리 대하게 되고, 친정 엄마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기 힘들어지기도 했어요. 게다가 내 아이는 자꾸만 나의 어린시절을 소환했습니다. 모르고 넘어가면 편할 것 같은데 자꾸만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과거가 나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요.

저자는 자신이 삶을 다시 해석해내며 글을 쓰는 과정을 ‘즙을 빨기 위해 오렌지를 굴리는’ 일에 비유합니다. 과육에서 즙이 흘러나오되 껍질이 터지지 않게 작은 오렌지를 발로 살살 굴려야하는데 이는 매우 섬세한 작업이었고 이 방법을 터득하며 스스로 강해졌다고 느끼지요. 여성이 삶에 대한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해석할 수 있는 과거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 나만의 언어를 찾아가면서 우리는 내면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가 되고자 나는 끼어들고, 소리내어 말하고, 목청을 키워 말하고, 그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하고,

그러다가 종국에는 실은 전혀 크지 않은 나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유년기에 대해서 짧은 글을 쓰고 이를 나누면서 우리는 많이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완결되지 않은 글들이 허술하게 느껴져서 밖으로 나누기가 부끄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모두가 ‘과거를 돌아보는 불편함’을 거쳐왔고 거치는 중이라는 사실이 위안을 주었습니다. 남은 모임에서도 여성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구별되고 겹쳐지는 삶의 조각들을 확인해보고 나의 모습을 조금 더 또렷히 바라보는 작업을 해보겠습니다. ‘삶이라는 오렌지’를 파괴하지 않고 살살 굴리기 위해서 ‘각자의 언어’라는 가장 적당한 힘을 체득해보아요.
다음 시간에는 <그 날 밤 우리는 비밀을>을 함께 읽고 몸과 마음이 아우성치던 그 시절의 우리를 만나보겠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말할 기회가 없었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를 마음의 긴장감을 넘어 나누는 ‘특별한 2시간’을 또 함께 가져보아요.

 

* [여성, 삶을 글로 쓰다]는 여성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으며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글로 정리할 마음의 힘을 얻어 보는 모임입니다. 서초구양성평등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 모임에서 읽은 책 4권 + 읽기가이드북 + 모임지기와의 이메일 후기교류가 포함된 [여성, 삶을 글로 쓰다] set를 아래 링크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forms.gle/zCSJTHQ93gABuzWG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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