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내 안의 여신찾기

[여성, 삶, 글 - 세번째 모임] 분열의 틈 사이에서 존재의 금가루를 찾아서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 삶을 글로 쓰다

[여성, 삶, 글 - 세번째 모임] 분열의 틈 사이에서 존재의 금가루를 찾아서

고래의노래 2020. 9. 7. 15:02

 [여성, 삶을 글로 쓰다] 세번째 모임이 9월 1일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주차 유아기, 2주차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지나 마침내 지금 우리의 시간, 중년기에 다다랐습니다. 중년의 여성은 새로운 삶의 환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엄마'라는 역할이 삶에 들어오면서 자아의 분열이 시작되지요. 생존을 위한 의존이 필수였던 유아기와 몸와 마음의 성장통을 앓으며 나를 구분짓고자 했던 청소년, 청년기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삶의 주체성을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삶은 내 의지에 달린 나의 것이었죠. 그런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자 삶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의존'에 이번에는 내가 묶여 나 자신과 점점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우리는 이런 '나와 나 사이의 공간'에 대해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라는 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이 책은 서른 다섯부터 마흔 다섯을 경유하는 한 여자의 투쟁의 기록이다.

모성을 수행하는 엄마이자 존재를 이행하는 자아라는 양립불가능해 보이는 삶의 조건 속에서 나는 분열했고 분투했다....

싸울 때마다 질문은 탄생했다. 집안일부터 세상일까지 나의 울컥은 생의 질문이 되었다."

 

 그렇게 저자가 내면의 틈에서 찾아낸 질문들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엄마라는 역할에서부터 본래의 나라는 정체성의 고민까지 나에게 겹쳐지는 부분과 구별되는 부분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았어요.

 


- 엄마라는 역할

 

 중년의 여성에게는 '엄마'라는 가치가 밀고 들어옵니다. 그건 실제 출산여부와 돌봄여부를 떠나서 영향을 미치지요. 그 나이의 여성이면 엄마인게 마땅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책임은 엄마에게 있는 것 또한 마땅해서, 중년이 되면 '엄마'라는 당위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실제적으로는 '밥'에 묶이게 되죠.

 

"방학이 되면 애들이 악마로 보이기 시작한다. 끼니 때마다 고개들고 웃으면서 나타나는 뿔 달린 악마. 복면한 밥도둑...
우리는 "채워져야 할 밥통을 가진 밥통적 존재"이다....

밥에 묶인 삶. 나는 떠남의 욕망에 시달린다.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이 바다 되어 출렁이고 마음만은 지중지중 물가를 거닌다."

 

 지금 우리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대변해주는 명쾌한 문구들이었습니다. 코로나 상황으로 아이들이 집에 머물고 24시간 돌봄 체계가 되면서 이러한 상황은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엄마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들은 당위의 무게에 갇혀 버렸습니다. 모성애를 자유롭게 느낄 기회가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흔히 이야기되는 것처럼 본능적 감정으로 느끼기도 전에 '모성'은 하나의 모습으로 제시되었고 우리의 엄마되는 과정을 결박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평범'으로 포장하고 울타리지워졌지요.

 

 

- 소수성에 대한 자각


 저자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글쓰기 강사라는 점, 돌봐야할 아이들이 있는데 학위로 연결되지 않는 공부를 하러다닌다는 점 등 자신의 소수성에 대해서 자각해 나갑니다. '평범하지 않은' 그 상태는 매번 질문을 불러왔고 '평범함'을 기준으로 판단되었습니다.

 

"평범함,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난 평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직장 다니는 여자가 살림하는 건 당연시되지만 살림하는 여자가 공부하는 건 수시로 이유를 추궁당한다...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 나이라 무지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으로 겪었다."

 

 안타깝게도 소수성은 정말로 특별한 사정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 여성이라는 구분 하나만으로도 성립됩니다. 기본값이 아닌 사람들의 삶은 옆으로 비껴나있는데, 기준 밖으로 물러나 있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소외되지요. 선을 벗어난 예외성에 대해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별적인 사연에 대해 존중하며 들어준다면 어긋나는 욕망들로 분열되는 우리 내면도 스스로 조금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 분열과 투쟁, 그 사이의 언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 챙겨주고픈 구닥다리 모성관의 소유자이자,

문득 일상을 전면 중지하고 홀연한 떠남을 꿈꾸는 몽상가이자,

시시때떄로 아름다운 언어에 직사당하고 싶은 문자중독자이고,

밥벌이용 글을 써야 하는 문필하청업자이며,

사람만나 이야기하고 그 소소한 행복을 글로 쓰길 좋아하는 데이트 생활자인 나.

수많은 존재로 증식되는 나를 추스르느라 휘청거리며 살아온 날들을 글에다 담았다."

 

 저자는 내면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할 때 '기존의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글로 써나갔습니다. 어쩌면 그건 새로운 역할을 시작한 내가 기존의 나를 대면한 순간들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역할과 정체성, 의무과 욕구 사이의 간극을 글로 촘촘히 이어갔습니다. 그것은 중년의 저자가 분열된 내면 사이에서 싸우는 동안 튀어져 나온 '땀과 혈흔의 언어'들이었습니다. 이 글들은 우리 마음에 공감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나의 마음이 명료하게 대신 표현된 후련함이 있었고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을 힘을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고 글이 어려웠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각자 저자의 글에 공감되는 정도는 달랐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저자처럼 우리도 아이들로부터의 독립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 본래적 자아로


 40대가 되면 몸도 마음도 다른 단계로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칼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 속에 지진이 일어난다."라고 했다지요. 사춘기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통과의례적 시기라면, 40대는 '사회적 나'에서 '본연의 나'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혼란스러움이 '발견'된 건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인간 수명이 늘어나고, 먹고 살기의 고단함이 해결되면서 삶의 다른 단계를 경험하게 된 사람들이 이에 대해 정리해나가기 시작했죠.

 불혹이 되면 거짓말처럼 모든 미혹함이 잡히고 단단해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고 오히려 나의 바람은 40여년간 이어온 시간들에 발목이 잡히죠. 40대인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믿었던 나'의 분열입니다. 출산, 육아같은 급격한 변화부터 주어진 목표를 향해 달려온 이후 느끼는 허무함, 마흔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주는 압박까지 여러 계기를 통해서 중년들은 몰랐던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이제 점점 부모의 손을 떠날 것이고 나 스스로의 삶이 그 이후로 길게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아이에게 깊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아이와 떨어진 나만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두 가지 의무 사이에 끼어 어느 한 쪽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 항상 어설픈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현재에 살기보다는 이러저러한 당위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지요.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상태이지만 저는 이 혼란스러운 감정이 무척 신비롭게 느껴지도 했습니다. 그냥 살던대로 편히 살아도 되는데, 흔들린다는 건 본연의 나로 향한 귀소본능 같은 힘의 작용이 아닐까요?

 

"정말이지 이럴 때만 좋다. 이럴 때만 사는 것 같다.

나의 영혼이 촛불처럼 환해지고 기타처럼 딩가딩가 자유롭게 춤을 춘다....

나는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취약하고 무엇을 욕망하나.

자기 인식이 형성되자 애매한 감정에 짓눌리지 않았다."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분열의 틈을 똑바로 마주하는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내 안에 여러 욕구와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은 순순히 인정하면 모든 것을 출발점에서 다시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한 모임벗께서는 우리가 느끼는 것들이 제도적 감정인지 진짜 나만의 것인지 분리해서 느껴볼 필요가 있다고 하셨어요.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효용성과 당위성의 틀을 내려놓고 정말 자유롭게 느껴본다면 어떨까요.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존재에 금가루를 뿌리는 일'이 무엇인지 사소한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찾으며 '진짜 나'를 느끼는 시간들을 잘 쌓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처음 진행된 모임이어서 어색하기도 하고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네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나가며 거쳐야하는 과정이겠지요. 우리의 삶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여성의 노년기에 대해서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를 함께 읽고 이야기나눠 보겠습니다. 나의 노년에 대해 꿈꾸는 것과 두려운 것들을 노년 여성의 글을 통해 마주해보아요.

 

* [여성, 삶을 글로 쓰다]는 여성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으며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글로 정리할 마음의 힘을 얻어 보는 모임입니다. 서초구양성평등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 모임에서 읽은 책 4권 + 읽기가이드북 + 모임지기와의 이메일 후기교류가 포함된 [여성, 삶을 글로 쓰다] set를 아래 링크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forms.gle/zCSJTHQ93gABuzWG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