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내 안의 여신찾기

[여성, 글, 삶] 여성의 아동기 : 도망치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소망을 담은 나만의 목소리로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 삶을 글로 쓰다

[여성, 글, 삶] 여성의 아동기 : 도망치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소망을 담은 나만의 목소리로

고래의노래 2020. 10. 24. 22:53

 10월 20일 [여성, 삶을 글로 쓰다] 4주간의 모임이 한살림 남서울지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성, 삶을 글로 쓰다]는 여성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으며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글로 정리할 마음의 힘을 얻어 보는 모임입니다. 가장 잘 알고 있지만, 가장 풀어놓지 못했던 소재인 ‘나’에 대해서 쓰되, 스스로의 언어로 삶을 이해하려한 여성들의 글을 읽으며 참고로 삼고 용기를 얻어 보려 합니다. 여성의 삶을 유아기 / 청소년, 성인기 / 장년기/ 노년기로 나누고 각 시기의 이야기에 집중한 4권의 책을 함께 읽으며 그 때의 나를 만나봅니다.

 첫 주에 함께 한 책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간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며 유년기를 회상합니다. 그리고 그 시절이 주었던 영향을 되짚고 여자의 글쓰기가 가진 어려움을 총체적으로 살핍니다.저자는 유년기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철저한 인종분리정책 하에 살면서 삶의 모순, 그리고 상처들과 마주합니다. 그 당시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인권운동을 하던 아빠는 눈 앞에서 잡혀가고 이후 몇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권리와 의무, 공간까지 구분되면서 오히려 모두가 두려움에 떠는 듯 보였고 세상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오히려 전혀 안전하지 않았지요. 게다가 여성들은 항상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언어란 스스로 망상이 아닌 주체가 되는 과정, 

그리고 애초 '사회구조'가 그를 직조해낸 방식의 매듭을 

풀어헤치는 과정과 관련된 언어일 수 밖에 없어요."


 사회구조가 한 사람을 직조해내는 방식은 특히나 여성들에게 치밀하게 작용하는데 주변 여성들의 삶을 바라보며 저자는 이것을 서서히 알아갑니다. 어린 시절의 보모였던 마리아는 주인집 백인 아이를 돌보며 정작 자신의 아이는 돌보지 못합니다. 여성이며 유색인이라는 이중의 억압 아래 하루종일 반복되는 돌봄의 피로 속에서 삶의 활력을 잃은 채 살아야했습니다. 또 한 명의 마리아는 성인이 되어 여행지에서 만난 민박집 주인입니다. 가톨릭 전통 마을 속에서 결혼과 모성이라는 의례에 포함되지 않는 삶을 살기위해 분투하지요. 유년시절 또 한 명의 주요 여성인물인 멀리사는 울타리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함을 가진 인물입니다. 인도계 남자친구를 사귀고 부모님의 차를 몰래 훔쳐타기도 하지요.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밖으로 명확히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쓰는 속기사 과정에 있다는 것이 모순적인 멀리사의 내면을 상징하는 듯 했어요. 게다가 멀리사는 화장으로 자신을 지어내는데(make-up) 능숙했는데, 이는 내가 아닌 다른 이로 변신하고픈 욕망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저자는 행동으로 이를 표출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목소리는 크게 나오지 않았고 여러 번 지적당해도 공책에는 셋째줄부터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말하기와 쓰기에 대한 주변의 응원 속에서 용기를 내고 글을 쓰기로 다짐합니다. 그리고 ‘어떤 너머’에 대한 글을 쓰면 지금 있는 곳보다 더 나은 곳으로 도망칠 수 있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되지요. 


"우리는 정치의 언어가 숨기는 거짓말로부터 도주 중이었으며 

우리의 성품과 생의 목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신화들로부터 도망 중이었다.

모르긴 해도 우리 스스로의 욕망으로부터, 그게 무엇이건, 도망치는 중이기도 했을 테다."

 

 

짧은 글을 쓰며 그 시절 우리와 만나봅니다.

 


 어린시절에 우리는 세상이 살아갈 만한 곳인지에 대해 몸으로 알아갑니다. 이 세상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환영하는 안전한 곳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이 때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요. 우리는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기억에 남는 장면들과 이와 연결되는 키워드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친구의 심한 장난에도 나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할 정도로 수동적이었고 성차별 속에서 돌봄 역할을 강요당하고 목소리는 억압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때에는 내 몫을 챙기려 분투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바로 세우기 위해 애쓰기도 했어요.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목소리를 높이며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어른들이 제대로 대응을 해주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자주 억울했습니다.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교육받고 능동적인 학창시절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졸업 후 사회에서는 남녀차별의 현실과 맞닥뜨렸지요.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로는 많은 분들이 엄마를 꼽으셨어요. 의존적이고도 독립적인 이중적인 모습의 엄마, 자신이 차별받은 과거를 한탄하면서도 나에게 성역할을 강요하는 엄마,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강조하면서 다른 선택을 심하게 반대하는 엄마...앞선 세대의 여성으로서 엄마는 이렇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다른 방향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하고 경험해보았음에도 겪은대로 답습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내적갈등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나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내면에 쌓여온 세상의 부조리함들과 어른들로부터 나에게 스며든 삶의 태도들은 이제 나에게 ‘해석’을 요구합니다. 회피하지 말고 마주하라고 등을 떠밀지요. 그래서 결국 우리는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목소리를 키우라는 건 크게 말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본인이 원하는 바를 소리 내어 말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느끼라는 뜻이죠....

여러분이 소망을 붙들어 언어로 표현할 준비가 되면, 

그땐 속삭여 말해도 관객이 반드시 여러분 말을 듣게 돼 있어요."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것에 대한 소망을 담아 진실하게 세상에 소리치기 위해 저자는 '큰 소리'가 아니라 '나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그 과정을 ‘즙을 빨기 위해 오렌지를 굴리는’ 일에 비유하지요. 과육에서 즙이 흘러나오되 껍질이 터지지 않게 작은 오렌지를 발로 살살 굴려야하는데 이는 매우 섬세한 작업이었고 이 방법을 터득하며 스스로 강해졌다고 느낍니다. 여성이 삶에 대한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진실을 들여다보고 묶이고 꼬인 부분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가면서 우리는 내면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어색하고 이를 모두와 나눈다는 것은 마음의 허들을 몇단계나 넘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여성, 삶, 글'이라는 모임의 키워드에 끌렸던 그 첫 마음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내면의 방향키는 아니었을까요. 마음의 긴장감을 넘어 삶의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선 우리를 만나보겠습니다. 그 시절의 우리는 또 어떠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한 번 들어볼까요.


* [여성, 삶을 글로 쓰다]는 여성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으며 생애주기별로 삶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면서 이를 글로 정리할 마음의 힘을 얻어 보는 모임입니다. 서초구양성평등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