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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삶, 나삶] 선녀는 왜 나뭇꾼을 떠났을까 : 옛이야기가 건네는 과제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 삶을 글로 쓰다

[글삶, 나삶] 선녀는 왜 나뭇꾼을 떠났을까 : 옛이야기가 건네는 과제

고래의노래 2019. 8. 22. 13:58

'글로 만나는 여성의 삶, 나의 삶' 세번째 모임에서는 <선녀는 왜 나뭇꾼을 떠났을까>를 함께 읽으며 옛이야기 속에서 여성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옛이야기는 인류 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원형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여성 캐릭터의 서사가 전하는 여성성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보면서 각자의 삶으로 가져가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았어요.

 

 <심청전>은 심청이라는 연역한 여성이 죽음과 부활을 통해 충만함으로 재탄생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심봉사는 공허하고 우울한 남성성을 상징하며 심청은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희생되는 여성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심봉사의 분별없는 '눈 먼 상태'는 결국 체면때문에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심청도 이러한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데요, 그래서 저자는 심청의 행동을 희생도, 수용도 아닌 수동적 태도이며 자기의심이라고 말합니다. 의식적으로 이해하여 상황을 선택하고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인당수에 몸을 던져 심청이 죽여야할 부분은 이렇게 내면의 소리와 바깥의 가치 기준 사이에서 내면화된 우울입니다.

 

 '내면화된 우울'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소용돌이쳤습니다. 오래 지속되었던 우울이 감정을 자각하고 표현하게 되자 점차 사라지기도 했고, 우울 안에 포함된 분노를 변화를 이끌어내는 에너지로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우울을 뿌리뽑을 수는 없으며 고난은 또 다시 흘러오겠지만 그것을 잘 흘려보내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용궁에서 지내다가 연꽃 속에서 다시 세상으로 보내져 황후가 되는 심청은 '기쁨과 신비로 충만한 여성으로의 탄생'을 상징합니다. 맹인잔치를 열어 적극적으로 아버지를 찾고 잔치라는 '기쁨의 풍요' 속에서 모든 맹인들이 눈을 뜨게 되지요. 내면화된 우울을 걷어내고 심청이 삶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어쩌면 용궁에서의 보살핌 덕분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때는 스스로의 자각이나 의지만으로는 모자란 경우가 있지요. 귀한 존재로 돌봄받는 경험을 통해 마음의 에너지가 채워지기도 하니까요.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뺑덕어멈 캐릭터는 어떤 원형적 기능일지도 궁금했습니다. 욕심많고 밥 많이 먹고 술과 노름, 남자를 좋아하는 뺑덕어멈은 옛이야기에서는 희귀한 여성 캐릭터입니다. 여성임에도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고 이를 드러내고 행동하는데도 거침이 없습니다. 어쩌면 심청과의 대립각에서 내면의 소리를 존중하는 것을 넘어 이기적으로 나아간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악역이지만 밉지않고 익살스럽게 묘사된 걸 보면 여성들의 억눌린 욕구에 대해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캐릭터인지도 몰겠습니다.

 

 생각해보니 홀로 된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는 옛이야기 속에서 대부분 홀어머니와 아들, 홀아버지와 딸처럼 이성간의 결합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성숙한 여성성(남성성)이 연약해진 반대성과 반응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들은 돈을 벌고 출세를 하면서 홀부모를 돌보는데 반해 딸은 대부분 결혼이나 희생을 통해 돌봄을 수행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아프고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콩쥐팥쥐> 이야기는 누군가로 인해 구원받는 '신데렐라'스토리가 아니라 시험을 통과하며 성장하는 여성영웅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콩쥐는를어머니로부터 독립해서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의 상징으로, 팥쥐를 어머니 품이 주는 안정과 편안함에 머물려는 욕구의 상징으로 해석했습니다. 콩쥐는 성장을 향한 여정에 여러 고난을 통과하면서 내면을 발전시키고 조화롭게 하여 의식세계를 넓히고 결국 영웅으로 우뚝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웅 여정이라는 해석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콩쥐의 '통곡'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콩쥐는 계모가 시킨 일을 하다가 힘에 부쳐서 울음을 터트립니다. 이 울음 소리를 듣고 검은소가 나타나 도와주게 되지요. 저자는 통곡은 완전한 내맡김, 순수한 열림의 상징이며 이는 '대지의 어머니'로 상징되는 검은소를 부르는 힘이었다고 말합니다. 통곡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용기이고 이것이 남성 영웅과 차별되는 여성영웅의 힘이라는 것이죠.

 통곡이 연약함의 상징이 아니라는 해석은 울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감정을 숨기고 견디는 '남성성'을 긍정적인 강인함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한껏 울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뭔가 새로워지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통곡이 힘이라는 해석이 어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자신의 한계에 이르러 내지르는 포효와도 같은 통곡이라 생각하니 심청전에서 이야기되었던, 우울과 연결된 분노가 변화의 에너지라는 말과도 연결이 되었네요.

 

 <해님달님>도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호랑이를 우둔함과 간교함이 공존하는 야성영역의 트릭스터 상징으로 해석하면서 아이를 어른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로 봅니다. 저자는 삶의 각 단계에서 맞이하는 통과의례가 현재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면서 독립은 자녀와 부모에게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안전한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하는 젊은이처럼 부모도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해야한다는 것이죠.

 현재에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 통과의례를 생각해보니 초경파티와 완경파티가 떠올랐습니다. 초경파티를 받아본 경험, 열어줬던 경험, 또래끼리의 초경 파티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그 형식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에 우리에게 '공동체의 충분한 축복'이 무척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자녀의 독립을 앞둔 엄마로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젊은이로서 어떻게 하면 변화의 단계를 잘 넘어 갈 수 있을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나무꾼과 선녀>에서는 결혼이라는 통과의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선녀의 옷을 숨겨서 강압적으로 결혼을 하는 나무꾼을 원시적인 사랑단계에 머문 인물로 해석하면서 내면의 여성인 아니마와 바깥의 여성을 구분하지 못하고 무의식을 투사했기에 건강한 결혼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선녀에게는 결혼이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내면의 뿌리로 상징되는 날개옷을 잃은 것이 결혼이고, 날개옷을 되찾는 것이 결혼에 위협이 되는 상황인 것이죠. 제주 전통에서는 혼례복과 호상복이 같으며 혼례는 본질적으로 죽음의 의례라는 설명을 읽었을 때는 얼마전 꾸었던 꿈이 떠오르면서 전율이 일기도 했습니다. 꿈 속에서 결혼식으로 보였던 의례가 결국에는 피가 범벅이 된 장례식으로 마무리되는 꿈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결혼과 여성의 영혼적 성장이 함께 갈 수는 없을까?'라는 저자의 물음에 한숨이 나오기도 했지만 최근 보여지는 여러 사회적 변화가 희망을 꿈꾸게도 하였습니다. 결혼의 형식이나 결혼에 대한 관념이 다양해지고 있고 내면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상대에게 투사하지 않는 캐릭터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옛이야기에서 죽음은 이제까지의 나를 죽이고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결혼이 죽음과 건강하게 연결된다면 그것은 영혼적 성장과도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성장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될까 함께 생각하다가 '나에게 낯선 경험들을 선물하자.'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제까지의 나같으면 하지 않을 일들을 해나가는 것들이 거창하고 극적이지 않고도 '죽음'의 과정을 통과하는 길일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저자도 '일상 속 생활방식이나 태도만 바꿔도 본능의 재생이 가능하다.'라고 말하면서 '자발적인 행위'를 즐기라고 조언합니다. 한 모임벗께서는 이렇게 처음보는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하는 것도 이제까지의 나에게는 낯선 경험이라고 하시면서 앞으로의 삶의 여정에서 또 어떤 '낯선 경험'들을 쌓아나갈지 고민해봐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들로 나만의 통과의례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다고 하셨어요.

 우리나라 옛이야기 중에도 적극적인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여러 여신신화들은 물론이고 심청전의 쾌걸 버전이라고도 보여지는 '가믄장아기' 같은 이야기들도 있지요. 페미니즘 시각에서 보면 많은 옛이야기들에 이래저래 걸리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옛이야기들의 원형이 주는 울림과 가치가 분명 존재합니다. 그 안에서 내 삶에 필요한 과제를 현명하게 뽑아낼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모임에서도 기꺼이 삶의 이야기와 깨달음들은 나눠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너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공주와 바보이만>, <연이와 버들소년>, <머리 아홉달린 괴물>은 미처 함께 다루지 못했네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등장하는 '못된 계모'의 원형적 의미에 대해서 자세히 나누지는 못했지만 엄마와 딸이라는 질긴 애증의 관계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지요. 엄마와 딸의 건강한 독립과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에는 <딸에 대하여>라는 소설을 읽으며 '딸로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 그리고 '엄마와 나'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해보아요.


* '글로 만나는 여성의 삶, 나의 삶'은 다양한 문학 장르 안에서 여성의 삶을 만나고 나를 비춰보는 여성주의 책모임입니다. 서초구 양성평등기금 지원을 받아 밸류가든에서 진행되며 무료로 참여가능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_Q86KhSCfDyWpal_BTt6eNOH5SxqV2zJOeLnCt0lYdBsl0g/viewform?usp=send_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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