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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삶, 나삶]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 스스로를 믿은 여자의 탄생! 본문

여성들의 함께 읽기/여성, 삶을 글로 쓰다

[글삶, 나삶]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 스스로를 믿은 여자의 탄생!

고래의노래 2019. 8. 11. 15:26

 지난 화요일 '글로 만나는 여성의 삶, 나의 삶' 두번째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번에는 '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을 함께 읽고 이야기나누었어요. 이 책에서는 기고문과 소설, 좌담회, 신문 조서 등 나혜석이 썼거나 연관되어 있는 다양한 글을 통해 나혜석이라는 인물을 좀 더 입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단편적이지 않습니다. 각자가 가진 다양한 관계와 그 안에서의 역할,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해석과 판단이 존재하지요. 특히나 나혜석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극단적인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최초의 근대 여류소설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등 '최초'라는 수식어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선구자로 칭송받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주의자로 평가되기도 했지요. 또한 바깥에서 바라보는 나혜석과 가족들이 기억하는 나혜석은 다른 차원의 감정을 일으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경험치만큼 그를 이해할 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2019년은 나혜석이 살던 100년 전의 시대처럼 여성이 교육에서 배제되는 일도 드물고 억지로 결혼이 강요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출산과 육아는 여성에게 자아를 죽이는 일이며 이혼은 삶의 뿌리를 흔드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만큼 그의 글에 뜨겁게 공감하기도 하고 고개를 꺄우뚱하기도 했으며, 경험을 넘은 상상 속에서 그를 이해해보려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나혜석은 교육을 받았고 글과 예술로 자기표현을 할 수 있었던 데다 여러 나라를 여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또렷히 인식하고 이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지요. 그 투쟁의 과정에서 심지어 결혼은 그에게 다른 의미가 됩니다. 그는 결혼으로 '공상세계의 범위가 더 커졌다'고 느낍니다. 결혼제도가 자신의 삶을 옭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느낀 것입니다. 이런 나혜석의 모습은 여성주의 운동가라기보다는 삶을 개척하는 개인주의자에 가까웠습니다. 이렇게 그가 철저히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시대와 사회에 대한 책임에서는 물러난 느낌이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그 당시, 시대가 저지른 폭력의 극단적 희생자인 위안부 여성들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그가 이야기하는 부당함이 배부른 투정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나혜석을 '페미니스트 선구자'로서의 기준과 기대를 품고 바라보았기에 든 감정들이었지요.
 게다가 자유연애가 오히려 배우자에게 충실하게 한다는 주장은 너무 급진적으로 보이기도 했고 이혼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몇몇 모습들은 우리가 품었던 그의 모습과는 다르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혼과정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죽으려 했고 불륜사건에 대해 남편에게 남자답게 껄껄 웃어 넘기지 않는다고 질책했습니다. 또 이혼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남편이 바라는대로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지요. 아이는 자신이 못이룬 것을 이루기 위해 여러 명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나 딸을 낳아 못해본 것을 한껏 시키며 완성자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는 자식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우리가 생각한)나혜석답지 않다'고 느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의 글은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쓰지 않고 현재의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충실했다는 증거로 생각되었습니다.

 

 공상세계에 살던 그는 아이를 낳고 이혼을 겪으며 현실에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신과 사회를 더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지요. 나혜석은 사회와 자신의 간극 속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감정을 대면하고 그것이 의심할 바 없는 자신의 진실이라고 믿었습니다.
"내가 전에 희망하고 소원이던 모든 것보다 오직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 종일만, 아니 그는 바라지 못하더라도 꼭 한 시간만이라도 마음을 턱 놓고 잠 좀 실컷 자 보았으면 당장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 가는 악마'라고 정의를 발명하여 재삼 숙고하여 볼 때마다 이런 걸작이 없을 듯이 생각했다."(- 모 된 감상기 中)

 '모 된 감상기'는 출산과 육아 경험이 있는 모임벗들이 가장 공감한 글이었습니다. 육아가 얼마나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반하는 것인지, 그래서 어미가 느끼는 극단적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이보다 솔직하게 쓴 글은 이제까지 없었습니다. 여성들은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믿지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느껴도 괜찮은 건가?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건가? 하면서 끊임없이 죄책감에 사로잡힙니다. 특히나 모성의 영역에서는 그 죄책감이 폭발하지요. 아이와 함께 하며 '거룩한 모성'에 닿지 않는 스스로를 기준 미달의 엄마로 스스로 끌어내립니다.  그것은 여성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틀이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나혜석은 바깥의 기준을 당연시하지 않고 스스로를 믿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느끼고 이를 솔직하고 용기있게 고백했습니다. 여러 글에서 그가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다 힘을 가지고 납니다. 그 힘을 사람은 어느 시기에 가서 자각합니다."
"사람은 자기 내심의 자기도 모르는 정말 자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지도 알지도 못하는 자기를 찾아내는 것이 사람 일생의 일거립니다."(- 이혼고백장 中)
"우리들의 현재 및 미래의 생활목표의 신앙 및 행복은 오직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수밖에 아무것도 우리의 맘을 기쁘게 해줄 것이 없을 것이다." (- 나를 잊지 않는 행복 中)

 
나혜석은 이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다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당당한 고백이 혼자만의 메아리를 넘어 다른 이에게 공명되고 공감되길 바랐습니다.
"나는 꼭 믿는다. 내  <모 된 감상기>가 일부의 모 중에 공명할 자가 있는 줄 믿는다....그리고 나는 꼭 있기를 바란다. 이런 경험이 있어야만 우리는 꼭 단단히 살아갈 길이 나설 줄 안다. 부디 있기를 바란다." (- 백결생에게 답함 中)
 공적인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연결되길 바라는 열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 당시 나혜석은 연결되지 못하여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깊이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00년의 시간을 넘어 그의 글이 우리 마음에 망치질을 합니다. 근대문학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느꼈던 것도 그것이 우리의 삶에 주는 울림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단편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혜석에 대해 느꼈던 아쉬움과 안타까움, 뜨거운 공감과 선망을 넘어 나혜석은 존재합니다. 나혜석의 굴곡진 삶이 누군가에게는 '불행'으로 읽힐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혜석이 삶의 여러 고비마다 글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당당함이었습니다.
"천재는 당시 풍속 습관의 만족을 갖지 못할 뿐 아니라 차대를 추측할 수 있고 창작해 낼 수 있나니 변동을 행하는 자를 어찌 경솔히 볼까보냐."
"내 사명이 무엇이 있는 것 같사외다. 없는 길을 찾는 것이 내 힘이요, 희망을 만드는 것이 내 힘이었나이다."(- 이혼고백서 中)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이었더니라." (- 신생활에 들면서 中)
"내가 조선의 여권운동자 시조가 될지 압니까."(- 영미 부인 참정권 운동자 회견기 中)

 호랑이랑 만나보고 싶어서 밤중에 골목을 돌아다니기까지 했던, 타고난 탐험가요, 모험가였던 나혜석.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 사랑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탐험을 놓지 않았던 그는 사는 동안 내내 '나혜석' 자신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읽었던 문정희 시들은 '네 안에 잠든 너를 깨우고 들여다보라!'고 문학이라는 도끼로 우리를 찍었었지요. 나혜석은 나혜석이라는 삶으로 '너 자신을 믿으라!'고 우리를 흔들었습니다. 나혜석이라는 사건은 '스스로를 믿은 여자'의 탄생이었습니다.

 다음 번에는 좀 더 옛날로 돌아가봅니다. '선녀는 왜 나뭇꾼을 떠났을까'를 함께 읽고 옛이야기 속에 드러난 여성과 여성성에 대해 함께 살펴보아요. 인류가 세월로 빚어낸 지혜 속의 여성은 어떤 모습일까요?

 

* '글로 만나는 여성의 삶, 나의 삶'은 다양한 문학 장르 안에서 여성의 삶을 만나고 나를 비춰보는 여성주의 책모임입니다. 서초구 양성평등기금 지원을 받아 밸류가든에서 진행되며 무료로 참여가능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_Q86KhSCfDyWpal_BTt6eNOH5SxqV2zJOeLnCt0lYdBsl0g/viewform?usp=send_form

 

2019 밸류가든 여성주의 문화예술 아카데미

여성주의는 밸류가든이 늘 관심을 갖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실험하고, 실행해 온 주제입니다. 올해는 서초구 양성평등기금의 후원을 받아 '여성주의 문화예술 아카데미'를 진행합니다. 인문학적, 예술적 경험을 통해 여성주의를 이야기하고 우리의 삶과 연결지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함께 요리하고 식사를 하는 밥상 모임을 통해 나를 존중하고 환대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고, 책과 영화 속의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언어를 읽고, 보고, 들으며 공감하는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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