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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여신찾기

<여신모임 1기 : 10> 여성의 인생주기 안에 나타나는 여신원형들 살펴보기 본문

내 안의 여신찾기/여신모임 1기 2017 가을

<여신모임 1기 : 10> 여성의 인생주기 안에 나타나는 여신원형들 살펴보기

고래의노래 2018. 12. 12. 09:35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 10점
진 시노다 볼린 지음, 조주현.조명덕 옮김/또하나의문화


 

 이번 모임에서 우리는 관계지향적인 세 여신, 헤라, 데메테르, 페르세포네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 여신원형들이 우리 삶에 영향을 끼쳤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세 여신들은 저자가 '위대한 여신원형'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만큼 강력한 에너지를 지녔고, 우리의 성격보다는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이 여신들은 여성의 인생주기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결혼 전 부모님의 딸이었던 처녀시절(페르세포네), 결혼 후 아내의 역할(헤라), 임신, 출산 후 갖게 된 엄마라는 역할(데메테르). 이렇게 여성 인생의 주요한 시기들을 대변하는 여신들이다 보니, 처녀여신 유형때와 달리 나와 동떨어지게 느껴지는 여신 유형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강력한 에너지로 우리의 행동을 지배했기에 이 여신 유형의 영향력은  우리 삶의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다를 바 없는 이 세 여신에 대한 이야기에 깊이 몰입하여 빠져들었지요. 



우리 안에 있던 세 여신들


 헤라는 결혼의 수호신으로 남편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결혼에 대한 남편의 태도에 따라 한없는 충족감을 느끼기도,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여성의 자아실현이 더 이상 결혼이 아닌 시대에 살기 때문에 헤라 원형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엔 거의 공감을 못하거나 나와는 전혀 다른 원형이라며 쉽게 넘겨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모두 헤라여신 원형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결혼적령기가 되었을 때 남자친구가 없다는 것에 매우 불안해했고, 결혼을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도 일단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온 이후엔 서로에 대한 충실함에 매우 깊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에 대한 배신을 상상하기만 해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평가에 우리 스스로를 대입시키기도 했지요. 또한 우리가 남편에게 정서적으로 또, 생활의 여러 면들에서 실제적으로 의존하고 기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감정적인 소통을 통한 충만함을 남편에게서 기대하고 기계관련 일이나 사회적인 계약 관련 일들을 일임하고 있기도 했지요. 전업주부의 경우 경제적인 면을 완전히 의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정서적, 실제적 의존상태는 관계 안에서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그 갈등을 겪으며 남편과의 정서적 분리과정을 거친 경험들을 나누었습니다. 동일한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남편이 타인이라는 것을 인지했던 경험, 정서적 공감이라는 나의 끝없는 요구에 남편이 느끼는 좌절감을 알게되면서 그것이 남편의 능력밖임을 인정하고 기대를 내려놓게 된 경험, 독박육아의 상황 아래에서 남편에게 기대와 실망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자연스럽게 독립하게 된 경험들이 오갔습니다. 


 이런 감정적인 분리가 되었을 때 우리는 한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했고, 한편 우리가 기대한 바대로 꿈꿀 수 없다는 사실에 공허해지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경제적으로도 독립하길 바라는 우리 내면의 욕구를 바라보기도 했지요. 


 데메테르는 모성의 여신이고 배려과 돌봄의 원형입니다. 

보살핌의 대상은 비단 아이 뿐 아니라 다른 존재일 수 도 있고, 심지어 어떠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보살핌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키우고 살리며 애정을 쏟는 일이지요. 대부분 보살핌은 스스로의 희생마저 감수하는 헌신적인 사랑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대변되지만, 불안과 두려움에서 기인한 보살핌은 건강한 관계를 해치게 됩니다. 과한 보호는 보살핌 대상의 자율성을 해치고 스스로 독립하지 못하게 하며, 대상의 요구에 무조건적으로 응하여 경계를 자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관계에서 오는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방전시키며 수동적인 공격을 하게 하지요. 이럴 때 내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데메테르가 되어 자신을 가치있는 존재로 여기며 보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잠깐의 쉼과 여유를 허락하는 작은 시도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엄마인 현재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데메테르가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많은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었고,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이 육체적 정서적 고갈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일으키는 수동적인 공격을 해왔던 모습을 자각하기도 했지요. 다행히 그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시도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데메테르 원형과 아르테미스 원형이 충돌하는 경험도 있었는데요. 사회변화를 요구하는 엄마들의 정치적 움직임들이 사회정의 차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좁은 시각에서 출발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데메테르 원형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엄마들을 떠올렸습니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고, 우리의 행동에 가이드를 제시하는 엄마의 모습이 결혼 이후에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결혼한 이후에도 엄마들은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감을 찾았고,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우리를 비난하기도 했지요. 보살핌이 자신의 존재과 능력, 자존감을 확인시키는 조건의 관계가 되었을 때 오는 삐걱거림을 우리는 삶에서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와의 정서적으로 독립해가는 과정 중에 있었지요. 



프리다 칼로에게서 보는 여신의 힘



 관계에서 오는 상처들을 입은 세 연신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디에고 리베라와의 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입었었던 프리다 칼로가 떠올랐습니다. 프리다는 디에고와의 안정적인 결혼 관계를 원했으나 디에고는 끊임없이 외도를 했지요. 그리고 아이를 원했지만 사고로 인해 망가진 몸 때문에 임신을 했음에도 여러번의 유산을 겪으며 결국 아이를 얻지 못했습니다. 프리타 칼로는 1970년대에 페미니즘의 우상으로 여겨질 만큼 자신의 가치관이 뚜렷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주체적인 여성이었으나 디에고와의 관계에서만큼은 그렇지 못했지요. 아마도 그녀는 헤라여신의 원형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칼로 몇 번 가볍게 찌르기>라는 위의 작품은 그녀가 디에고에게 받은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나타내고 있네요.



 세 여신들은 고통이 깊은 만큼 거기에서 오는 에너지도 크지요. 특히나 헤라같은 경우는 분노 에너지가 대단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헤라원형의 분노를 창조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헤라의 아들인 대장간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화산같은 분노를 무기와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처럼, 헤라도 그림, 글 또는 일로 그 에너지를 승화시킬 수 있으며 그것이 그녀를 그 부정적인 힘으로부터 구원해줄 것이라고 하죠. 프리다 칼로는 바로 그 힘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입니다. <우주, 대지,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이라는 이 긴 이름의 후기 작품에서 그녀는 아기 디에고를 안고, 대지의 여신은 그녀를 안고, 우주는 또 그 모든 것을 안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자기자신을 고요히 바라보며 디에고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처한 상태로부터 한계를 느끼는 동시에 자신을 관통하는 거대한 힘이 자기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도 자각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남편과 엄마에게서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것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그 분리의 과정에 있었습니다. 이 여신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일상의 여러 면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올라오기도 하고, 친정엄마의 말 한마디에 발끈하기도 했지요. <여성의 몸>에서 이야기했듯이 감정은 무의식이 보내는 메세지입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우리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원가족, 남편과 갈등이 생기는 그 순간이 무의식이 우리에게 온전함의 기회를 전하는 때일 것입니다. 한 원형에 종속되는 것을 넘어 온전함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내가 부정하고 싶은 내 모습을 인정하고 내가 내키지 않는 시도들을 하면서 시야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고통이 주는 성장


 원형의 충동적 욕구와 내면의 지혜가 전하는 소리를 구분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나누었죠. 일이 힘들다고 내 욕구에 따라 퇴사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페르세포네적 유약함에서 오는 힘듦이라면 견디는 경험을 통해 극복해야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죠. 박사과정 중인데 데메테르의 출산 욕구가 올라오기도 하듯 여신원형은 우리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이 미묘한 조율을 할 수 있는 자아가 단단히 서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모두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마음들에 모두 의식적으로 반응해야한다는 과제로 느껴져서 불편함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그 불편함을 나누며 모두에게 충족된 조언이라는건 없고, 경험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관계적 갈등이든 감정적 불편함이든 우리가 부정적이라 여기는 경험들이 우리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려고 온다는 것은 확실하겠지요.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신화는 고통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데메테르 여신과 마찬가지로 데메테르 여성은 인간의 계절적인 변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이런 여성은 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다양한 인간 경험이 유형을 지니고 연결되다는 것을 깨달아,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행복과 희생, 고통, 그리고 회복의 경험을 거치는 여신의 이야기는 인생주기에 따라 우리가 겪을 관계 속에서의 고통과 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관계에서 오는 갈증과 상처는 우리를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었지만, 결국 그 어둠을 통과하여 우리는 분리를 경험하고 자유로워지고 있습니다. 



당신으로부터의 따뜻한 독립


 의식이 분산되어 있고 관계 지향적인 여신들은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아기 모임벗들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책 내용에 깊이 몰입하여 할 이야기가 많았던 엄마 모임벗들은 아기들을 돌보느라 이야기 듣고 나누는데 힘드셨지요. 할 이야기가 많은데 아기가 아파서 모임에 나오지 못하셔서 매우 속상해하신 모임벗도 계셨어요. 마치 저자가 이야기하는 분산된 의식을 현실로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자신의 심리 상태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 역시 계발될 수 있다...자신에게 더욱 친절해지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낄 때 필요하다. 많은 여성들은 이런 느낌을 갖는 시기가 단지 일시적인 것이며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야,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다시 활동적이고 창조적인 자신으로 돌아가는 치유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생주기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 엄마라는 역할 속에선 자신을 내려놓는 선택을 할 필요도 있지요. 하지만 이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정'이며 이 경험을 통해 오히려 우리는 자신에게 나아갈 수 있게될 것입니다. 

 마음이 통하는 관계만큼 충만감을 주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관계 안에서 사랑과 책임을 다하되 스스로도 보살피며 관계로부터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찾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쌀쌀하고 차가운 분리가 아니라 당신을 이해하고 인정하기에 벗어날 수 있는 건강한 독립, 따뜻한 독립말이죠.



다음 주는 책의 마지막까지 읽고 만납니다. 관능의 여신으로만 알고 있던 아프로디테를 '창조하는 여신'으로서 우리 안에서 찾아볼까요.



* <여성의 자아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 는 서울 세곡동 <냇물아 흘러흘러>(https://band.us/@natmoola)라는 공간에서 현재 6명의 모임벗들과 함께 3권의 여성주의 책을 읽으며 내 안의 힘을 찾아가는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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